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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01. 2023

서문-영화로의 질주

<허공에의 질주>의 오역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이 미국이라면 학생들이 이렇게 정치적 투쟁을 하진 않았을 텐데. 그저 안온하게 야구나 즐기면 되었을 젊은 날에 우린 너무 치열한 거 아닌가. 그러다가 우연히 비디오방에서 본 영화하나가 내 생각을 뒤집었다. 제목도 특이했다 - 허공에의 질주.



배경은 1988년. 미국이 경제호황의 끝을 달리던 그야말로 안온하기 딱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 가족의 삶은 아주 특이했다. 거의 6개월마다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건 좋은데 이름과 머리색까지 바꿔야 했다. 17살 대니(리버 피닉스)와 10살 남동생 해리는 그런 삶에 능숙하다. 알고 보니 아빠 아더와 엄마 애니가 대학생 때 극렬한 학생운동가였다. 두 사람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가 대량살상 무기로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분개하여 네이팜탄 제조 연구소에 폭탄을 투척한다. 분명히 연구소 안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경비원 한 명이 폭탄으로 인해 실명하는 일이 벌어져 이들은 수배되고 FBI는 이 두 사람을 계속해서 추적한다.


그런 삶이 1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아들 둘을 낳고 두 아들은 부모와 원팀이 되어 서로를 아끼며 살아간다. 아더 포프(주드 허시)는 원래 유대계 러시안 집안이다. 그는 급진적인 신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애쓴다. 위장취업으로 핵폐기물 투기를 막는 일을 도모하고, 요리사로 일하면서는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는 등 사회운동을 지속한다. 엄마 애니(크리스틴 라티)는 명문가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한 물리학자이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그녀 역시 음대에서 재능을 뽐내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부모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리버 피닉스(1970~1993)와 시드니 루멧 감독(1924~2011)


영화를 연출한 시드니 루멧 감독은 나오미 포너의 탁월한 각본을 그저 현실감 있게 수놓았을 뿐 감정을 덧입히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거장의 손길은 그런 것이다.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낸 골조의 설계와 부드러운 스토리라인으로 그는 모든 정황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판단은 관객몫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실제 연인이었던 마사 플림턴과 리버 피닉스


대니는 열일곱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기주장을 편 적이 없다. 왜냐고? 그 역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조직원이니까.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make a difference) 일에 관여하고 있으니까. 물론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고 효자였기에 그런 것이지만. 어린 동생 해리는 그걸 태생적인 유머코드로 잘 받아넘기지만 진지한 대니는 그저 소리 나지 않는 휴대용 나무건반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며 고민을 삭힌다. 그런 그가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로나(마사 플림턴)와 만나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 궁금해진다. 더욱이 음악선생인 필립스(에드 크롤리)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간파한 후 줄리어드 음대 입학을 권유하자 그는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대학진학은 가족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그는 진학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러자 로나가 오열한다. "왜 부모님의 짐을 네가 져야 해?"


대니가 줄리어드 오디션에서 브람스를 연주한 후 평가위원으로부터 "당신은 훌륭한 재능이 있네요."라는 말을 듣자 너무나 기뻐서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오는 장면에서 나도 가슴이 뛰었다. 자기도 몰랐던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삶을 힘 있게 고양시켜 주는 동력이다.




필립스 선생은 진로에 대한 답변이 늦어지자 엄마 애니를 찾아가서 줄리어드 음대 진학에 대해 문의한다. 속 깊은 아들은 진학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에야 용기를 내어 십수 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간다. 철없던 학생 때 아버지를 비열한 제국주의자라고 욕하고 떠났던 딸이 느닷없이 열일곱 살 아들을 맡아달라는 요청이다. 그것도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10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이 전부였다. 자기가 마치지 못했던 줄리어드 음대에 아들이 진학하게 되는 기막힌 인생유전.


영화를 견인하는 일등공신은 음악이다. 첫 음악수업 때 필립스 선생님은 마돈나의 'Lucky Star'와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며 학생들에게 두 음악의 차이가 뭔지를 질문한다. 학생들은 마돈나의 노래 말고는 무슨 음악인지 모른다. 그때 대니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베토벤은 춤추기엔 적합하지 않죠."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고 선생은 흐뭇해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 그에게 피아노를 쳐보라고 한다.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는 대니의 모습은 이후의 스토리를 가슴 떨리게 예감하도록 이끈다.


로나가 대니 엄마의 생일에 초대되어 함께 조촐한 가족파티를 하는 날. 제임스 테일러의 'Fire and Rain'에 맞춰 온 가족이 춤을 추는 장면은 내 인생의 씬이다. 로나가 대중음악을 따라 부르는 걸 보며 아더는 농담한다. "얘가 필립스 선생딸 맞아? 산부인과에서 바뀐 거 아니니?"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 주제곡은 토니 모톨라의 피아노 피스다. 이 곡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며 관객의 누선을 자극한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선 대니. 그의 앞에는 fire도 있고 rain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의 삶을 통해 몸으로 습득한 "좋은 세상 만들기"는 어떻게든 진행되리라 믿는다.


미국에서 60년대에 벌어졌던 반전 사회운동이 지하에서 계속 이어져 왔던 사실을 알게 만들어주는 이 영화는 어쩌면 미국의 저력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선 80년대 이후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비록 속도는 느려도 애니와 아더처럼 자신들이 속한 영역에서 조심스럽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허공에의 질주>의 원제목은 Running on Empty. ‘힘이 바닥난’, ‘역부족’이란 뜻으로 기름이 바닥난 상태의 자동차를 비유한다. 다시 말해서 ‘허공에의 질주’는 오역이다. 그런데 허공을 향해서라도 질주하겠다는 그 결기가 가슴을 치는 것은 왜일까. 오역치고는 성공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도 오역이었다. 고교시절 막연히 영화감독을 꿈꿨던 나는 현실의 벽을 넘어설 용기가 없었다. 대안으로 적성과 무관한 학과에 진학하면서 오랜 불협화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적성에 안 맞는 일이란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인생을 배웠고, 조용히 파묻혀 수많은 논문을 쓰는 연구자로 30년을 살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은 때론 다르기도 했다. 차선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늘 마음 한편이 헛헛했다. 중년이 되어 내 삶을 돌이켜 보니 정작 내가 사랑했던 영화는 이력서에 없었다. 그래서 십 년 전부터 시작한 게 글쓰기였다.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위해 영화를 정주행, 아니 질주했다. 영화를 보면 반드시 글을 썼다. 리뷰는 삼십 분, 길어야 한 시간 이내로 완성되었다. 키보드로도 질주한 셈이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소명이라면 이제 소명에 응답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허공에의 질주가 아닌 영화로의 질주. 어쩌면 이 제목 역시 오역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좀 어떠랴. 인생은 원래 오역투성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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