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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Sep 10. 2023

<그린북>의 차별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1982년 방학이 끝난 직후였다.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장기자랑대회를 열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불려 나왔는데 난 마음의 준비 없이 나와서 아주 직관적으로 "Ebony and Ivory"라는 노래를 선택했다.


검은색과 흰색.

이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면서 함께 살지요.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에서도.

오, 주여,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 걸까요.


뒤늦게 본 <그린 북>을 보며 세 번 놀랐다. 1960년대 유색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의 현실을 보고 놀랐고, 극 중 피아노 연주자인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의 수준급 피아노 연주에 놀랐으며,  <반지의 제왕> 아라곤을 맡았던 비고 모텐슨의 극 중 보기 드문 먹방까지.


첫 번째, 제목이 '그린 북'인 이유다. 세상에 니그로를 위한 여행안내서가 따로 있었다니. 물론 <히든 피겨스>에서도 유색인종을 위한 음수대나 화장실이 따로 있었던 걸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호텔과 음식점에 발도 못 붙이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백인들이 직접 초청해서 연주를 즐기며 환호하는 장소(venue)에서 조차 연주자들이 백인들과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도 한참 역설이었다. 결국은 한 명의 연주자라기보다는 테크니션으로 봤다는 거 아닌가. 겉 다르고 속 다른 백인들, 여전히 그런 부류가 남아있는 건 비극이다.



두 번째는 극 중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를 연기한 마허샬라 알리의 피아노 연주다. 실존인물인 셜리는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재능을 발견한 후견인에 의해 레닌그라드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운다. 하지만 백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클래식 연주세계에 들어가기 어려운 현실을 인지하고 크로스오버를 연주하며 인기를 모았다.  피아노 연주장면에서 건반 터치가 다른 사람이겠거니 하고 보는데 줌아웃 하니 알리다. 놀랍다. 물론 우리 귀에 들리는 연주는 크리스 바우어라는 연주자가 했지만 알리는 실제로 영화 연주에 나온 곡들을 열심히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싱크로가 실시간이다. 놀라웠다. 플러스알파, 백인보다 훨씬 고상한 단어와 우아한 악센트를 쓰는 셜리 연기는 그가 왜 오스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극 중 셜리의 보디가드이자 운전기사 토니역을 맡은 비고 모텐슨의 먹방이다. 우선 사전지식 없으면 누군지 분간이 어렵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라곤의 눈동자와 마주칠 때 관객은 혼란스럽다. 우째 이런 일이. 그는 핫도그 먹기 경연대회에서 26개를 먹어치우는가 하면 켄터키에 들르자 "켄터키는 KFC!"라며 한 바구니를 차에서 우물거리며 뜯어먹는다. 그걸 보며 우아한 셜리는 어떻게 포크 없이 먹냐고 하다가 토니의 유혹에 빠져 과감히 닭날개를 뜯어먹기 시작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피자 한판을 두 번 접어서 샌드위치처럼 먹는 장면.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와 "내겐 너무 가벼운 당신", "미 마이셀프 아이린" 등 성인코미디물을 만든 감독 피터 패럴리는 관객의 감정선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꿰뚫고 있다. 남을 웃겨 본 사람은 남을 감동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알아요,

당신이 어디에 가든지 모두 똑같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요.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고,

각자에게 주는 것도 배우게 되지요.


다행히 가사를 틀리지 않고 불러서 친구들이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가 불러 빌보드 1위를 7주간이나 차지했던 '검은건반과 흰건반' 노래가 나온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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