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8
t.40 마치는 다음과 같은 경우 종료된다.
- 한 선수가 15뚜슈에 이르렀거나; 또는
- 경기의 실제시간인 9분이 다 지나갔거나.
대한펜싱협회, <2023 대한펜싱협회 경기규칙서>, 2023, 22p
빨아서 걸어두었던 펜싱복을 걷었다. 굴러다니는 페트병들을 재활용 봉투에 던져넣었다. 미뤄왔던 설거지를 반쯤 끝낸 뒤 슬슬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하수구를 정리했다. 상한 메밀면 냄새를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묶었다. 손이 더러워진 김에 쓰레기를 1층 분리수거장에 몽땅 내놓고 왔다. 갔다 와서는 싱크대를 깨끗이 하고 옆으로 치워놨던 남은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손을 닦으러 화장실을 자꾸 드나들다 보니 보이지 않던 물때가 보였다. 쭈그려 앉아 다 쓴 칫솔로 물때를 지웠다. 입고 있던 옷이 땀범벅이 되었다.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놓고 나뒹굴던 옷 몇 벌과 함께 소량 빨래를 돌렸다. 일주일 내내 펜싱을 하느라 잠시 미뤄왔던 일들을 끝냈다. 주말에 있었던 펜싱대회가 이제야 끝난 느낌이 들었다.
이번 펜싱대회는 참 열심히 준비했다. 일주일에 여섯 번 펜싱을 했다. 그동안 설거지를 미루고 쓰레기를 쌓았다. 펜싱할 때 입는 바지 세 벌을 빨고 말리는 것 정도만 가까스로 해냈다. 월요일에는 졸업한 대학교 펜싱부를 찾아갔고, 화요일에는 요즘 레슨을 받는 펜싱클럽에 갔다. 수요일에는 지난 대회에서 잘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펜싱클럽에 원데이 클래스로 놀러 갔다. 목요일에는 친구 따라 다른 대학교 펜싱부에 놀러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연습경기를 했다. 금요일에 다시 졸업한 내 학교 펜싱부로 돌아와 가볍게 경기를 뛰었고, 토요일에는 컨디션 조절차 펜싱을 쉬었다. 펜싱대회가 열리는 보은에 하루 미리 도착했다. 가기 전에는 괜히 집 앞 코인 빨래방에 있는 안마의자를 썼다. 기본 16분의 안마를 받고도 10분을 추가 결제했다. 그렇게 대회를 준비했다. 일요일 아침, 보은에서 일어나며 옆 친구에게 내가 이번 대회를 꽤 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일어나서 이번 주 최악의 펜싱을 했다. 이길만한 상대한테 지고, 질만한 상대한테 졌다. 예선부터 탈락 위기를 맞이했다. 같은 조에 정규가 있었다. 정규가 봐도 내가 크게 애를 먹고 있었나 보다. 정규는 내게 먼저 다가와 조언을 건넸다. 내가 평소에 비해 지금 어떤 것들이 안 되는 것 같고, 어떤 걸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줬다. 나와 정규가 경기를 뛰기 직전이었고, 정규도 예선에서 패배를 꽤 쌓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게 더 잘 뛸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 주는 정규가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하필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규를 1점 차로 이겼다. 나는 겨우 예선 탈락을 면할 수 있었으며 정규는 예선 탈락 위기에 놓였다. 나는 정규의 예선 탈락이 걸린 마지막 경기를 내 경기보다 간절하게 지켜봤다. 다행히 정규는 마지막 경기를 이겼고 둘 다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을 받고도 거기까지였다. 본선 첫 경기 64강에서 바로 떨어졌다. 내 경기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격도, 수비도, 자세도 최악이었다. 그렇게 졌다. 적당히 못 해야 피드백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마음이 든다. 적당히 못 해야 예선 조 편성 탓을 하고, 심판 탓을 하고, 상대와의 상성 탓을 하고, 내 영상을 보면서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탓을 한다. 그냥 뭔가에 홀린 듯 경기를 하고 나왔다. 본선 15점 내기에서 13대 11쯤으로 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역전할지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이 경기가 끝나고 아쉽다며 주변에 징징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몇 번의 대회에서 내 생각보다 일찍 떨어졌다. 대회 내내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벌써 떨어졌다고 말이 안 된다며 징징거렸다. 그렇게 한껏 징징대고 집에 갈 때 내 모습이 추해 보였다. 이번 대회에 펜싱은 이미 추하게 했다. 더는 추해지지 않았으면 했다.
지난주 펜싱을 열심히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펜싱하는 사람들끼리는 늘 묻는 말이 있다. “펜싱 얼마나 하셨어요?” 나는 최근 들어 웃으며 나를 낮춘다. 저번 주도 그랬다. “오래 하긴 했는데, 오래 한 만큼 잘하지는 못해요.” 그렇게 끝내지 못하고 여러 말을 더 붙였다. 2015년부터 펜싱을 했는데, 대회는 많이 안 나가다가, 동아리에서 하다 보니 신입 가르치는 데에 집중하다가, 코로나 때는 못 했고, 대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사실, 다른 거 많이 하다 보니 열심히 기간은 사실.
펜싱은 기본동작을 수련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앞뒤로 움직이는 걸 잘하는 데에 1년 정도 걸린다. 마치 가위바위보를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까지 오래 걸리는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신입 부원을 가르칠 때 항상 보여주는 게 있다. 그냥 그대로 찌르면 찔리는 자세에서 손을 미세하게 틀어서 찌른다. 정자세에서 작은 각도 몇도 정도만 틀어도 칼이 몸 옆으로 어림도 없게 빗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선 모든 과정을 다 잘해도, 마지막 찌르기가 1도 빗나가면 실패하는 게 펜싱이다. 상대방이 보자기를 내겠다고 정확히 예측하고 가위를 내려고 해도 가위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 패배한다.
보자기를 자르지 못하는 무딘 가위라도, 가위에 잘려 나가는 연약한 바위라도, 바위를 감싸지 못하는 보자기라도. 그 완성되지 못한 무언가라도 낼 수 있게 되는 데까지 오래 걸린다. 아 그래도 저게 가위를 낸 거구나 하는 것들을 펜싱 경기에서 꺼낼 수 있게 되는 때까지 말이다. 그 임계점을 지나야지만 그 뒤로 펜싱을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상대에게 가위를 낼지 바위를 낼지 이지선다 문제를 내기도 하고, 가위를 내는 척 바위를 내기도 하고, “이제는 가위를 내겠지?” 할 때 바위를 내보기도 한다. 상대가 보자기를 내게끔 한참 유도해 놓고 막상 내가 가위를 내서 이길 때의 기분은 짜릿하다.
펜싱 1년 차쯤, 나는 이 지점에 도달했다. 딱 이 지점을 지나갈 때, 펜싱이 참 재밌다.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영상도 찾아보기 시작한다. 탐욕스럽게 새로운 기술을 찾는다. 가위를 날카롭게, 바위를 단단하게, 보자기를 빠져나갈 수 없게 다듬는다. 이 지점에 막 도달한 사람들이 다른 것을 제쳐두고 펜싱만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학교 펜싱부 부원이 같은 날 공강 시간에도 펜싱을 하고 저녁에도 펜싱을 해서 일주일에 8번 펜싱을 한다는 이상한 소리도 들어봤다. 평소에도 원 없이 펜싱하던 애가 오늘 진짜 원 없이 했다고 인스타 스토리를 올려 도대체 몇 시간을 했냐고 물어보니 8시간 동안 펜싱했다는 답을 들어본 적도 있다. 지루한 기본기의 벽을 넘어버리고 마주한 수많은 도전과제에 잔뜩 신나 허겁지겁 펜싱을 찾아 먹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재밌는 기간부터 펜싱 실력 단련이 아니라 대학교 펜싱부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실력이 특정 지점을 넘어간 사람들이 다 펜싱에만 열광하다 보니 펜싱부에는 신입부원을 챙길 선배가 적었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선배들도 코치님의 레슨을 받을 때, 나는 신입부원들을 맡아 기본자세를 가르쳤다. 내가 펜싱부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선배들이 펜싱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신입부원들에게 눈길을 안 주는 것 한 가지만 빼면 펜싱부는 내게 너무 좋은 곳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채우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신입부원과 누구보다 친해질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매 학기 새로운 사람들과 계속 친해질 수 있었다. 그게 내게 펜싱부였고 펜싱이었다. 펜싱부 선배들은 나를 신기하게 봤다. 선배들은 내가 그렇게 어렵게 그 지점을 넘어놓고 펜싱을 열심히 하지 않는 걸 아까워했다. 펜싱부는 열심히 나오지만, 자신의 펜싱을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러니 “오래 하긴 했는데, 오래 한 만큼 잘하지는 못해요.”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해서는 안 됐다. 7년 동안 펜싱을 어떻게 하면 잘할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펜싱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걸 그렇게 자랑스러워했었는데 지금은 7년 한 것치고 펜싱을 못 한다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펜싱을 한 7년 동안 펜싱 실력만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것들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른 것에 자존심과 아집이 섞여 들어온 줄은 몰랐다. 펜싱을 잘하려고 노력한 기간이 7년이 아니면서, 마치 7년 동안 펜싱 실력 단련에 모든 걸 바친 사람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이번 대회 전에 위례에서 단체전 대회가 있었다. 나는 첫 경기의 첫 선수로 나갔다. 나는 점수를 하나도 따지 못하고 돌아왔고 자진해서 교체되었다. 우리 팀은 그 첫 경기에서 그대로 탈락했다. 나는 그날 내내 팀원들에게 내가 못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함을 전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양의 계속된 사과였다. 미안함을 전달하려는 사과가 아니라 불안정한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사과였다. 그날 돌아가면서 단체전 팀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대회장에서 사과를 위한 사과를 한 게 아닌 것 같다고, 징징댔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 펜싱대회에서 13 대 11로 지고 있을 때 위례 대회를 떠올렸다. 아무 대비 없이 이 경기를 끝내면 또 인정받고자 징징댈 것 같았다. 최근 연습 때 잘하지 않았냐고 일주일 동안 같이 펜싱했던 이곳저곳의 선수들에게 물어볼 것 같았다. 여기서 진 게 내 실력에 억울한 일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 펜싱부 친구들에게 투덜거릴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말의 형태만 다를 뿐 그런 질문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나 오늘 한 것보다 원래 펜싱 잘하는데, 맞지? 나 펜싱 7년 했잖아.” 상상 속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실점한 15번의 상황과 득점한 11번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상상을 했던 점수가 13대 11이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기억에 남았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걱정을 먼저 시작한 덕분인지 나는 그날 지고 나서 투덜거리지 않았다.
일요일에 대회를 끝내고 월요일은 피곤하다며 모든 것을 미뤘다. 화요일에는 대회 준비기간 동안 더러워진 집을 치웠다. 그리고 다니던 펜싱클럽에 연락했다. 펜싱을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돈을 두 배 더 보태 개인레슨으로 전환했다. 목요일에 첫 수업을 나갔다. 개인 레슨은 꽤 마음에 들었다. 코치님은 레슨을 통해 내가 더는 추한 펜싱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줬다. 펜싱을 잘하면 펜싱장에서 추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막상 대회에서 했던 고민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펜싱 경기가 채 끝나지 않은 13점 대 11점에서는 경기가 끝나고 추하게 징징대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했다. 펜싱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추한 펜싱을 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했다. 어느 하나 제때 용기를 가지고 마주한 것이 없었다.
-2024년에 독립출판 한 펜싱 에세이 <칼을 구부리는 일>의 첫번째 에세이입니다. 브런치북에서는 앞부분의 일부 에세이와 외전 성격을 띄는 글들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몇몇 독립책방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구매는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linktr.ee/bin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