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 ~ 2019.02
t.16 경기대는 지면이 수평하고 평평하여야 한다. 경기대는 특히 빛으로 인하여 양쪽 선수의 어느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해서는 안 된다.
대한펜싱협회, <2023 대한펜싱협회 경기규칙서>, 2023, 16p
2015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펜싱부에 들어갔다. 처음 펜싱부에 합격했을 때 펜싱부가 흔히 매체에서 그려지는 한국 운동부의 이미지일까 봐 걱정했다. 마초적인 분위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신입생들과 한두 명의 선배가 같이 운동하던 송도캠퍼스 첫 운동에서 그 생각이 깨졌다. 신입부원들이 큰 체육관을 가볍게 돌며 몸을 풀었다. 그해 그 공간에서 운동할 신입부원은 10명이 조금 넘었는데, 남자로 보이는 것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나머지 신입부원 중에는 브라질에서 온 신입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잘 모르지만 마초적인 분위기는 아닐 것 같았다. 처음부터 도망칠 필요는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술에 대한 걱정이 남아있었다. 운동부의 뒤풀이는 어떤 모습일지 걱정됐다. 술을 강제로 먹이고 퍼마시는 건 아닐까. 막 술 문화를 접하기 시작하던 나는 조그마한 기대와 많은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첫 운동 날 나는 당연하다는 듯 운동 뒤 시간을 텅텅 비워뒀다. 그러나 운동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었다. 선배가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나도 인사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이건 또 아닌데?’
그때 송도캠퍼스에서는 두 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송도에서 펜싱 수업을 하시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교수님이 있었고, 싱가포르에서 온 2학년 펜싱부 선배가 있었다. 교수님은 술을 먹지 않아 콜라를 드셨다. 2학년 선배는 싱가포르에서 이제 막 대학교를 위해 한국에 왔었다. 한국의 운동부나 동아리의 문화가 정착할 수 없었던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뒤풀이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운동 열심히 몇 시간쯤 하고 나서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기숙사에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너무 고요했다. 펜싱부에 들어오기 전부터 서로 친했던 신입부원들 몇 명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으나 유달리 건물이 큼지막하던 송도의 큰 체육관을 떠들썩하게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아, 스무 살의 나는 그냥 운동 몇 시간 하려고 동아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몇 번의 운동이 지나고 내가 먼저 뒤풀이를 하자고 말을 꺼냈다. 운동 중간중간에 숨 막히는 적막을 견딜 수 없었다. 물 마시러 가는 길에 떠들고 싶었다. 운동이 끝날 때쯤 말했다. 같이 놉시다. 이야기도 하고 친해져요.
나는 친해질 자신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한 번의 뒤풀이로 충분했다. 내 어떤 친구는 그때쯤 나보고 어디서 만난 사람이건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 평은 펜싱부에서도 적절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이 저 신입부원은 뭔데 저렇게 나서냐고 미워하면 어떡하지?’ 하는 정도의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다들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그동안 왜 뒤풀이를 안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게 놀았다. 나는 그 이후로 물을 마시러 가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부터 펜싱부가 이상한 공간이라고 느꼈다. 내게 펜싱부는 친절하지 않은 이상한 공간이었고 동시에 내가 어떤 짓을 해도 크게 간섭하지 않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펜싱부를 시작했다.
펜싱부는 그 이후로도 친절하지 않았다. 기존 선배들이 운동하고 있던 신촌도 마찬가지였다. 신촌 운동에는 내가 먼저 뒤풀이를 가자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자연스럽게 뒤풀이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풀이는 ‘뒤풀이’라기 보다는 ‘펜싱하느라 밥을 밤 10시까지 먹지 못해서 배고픈 사람들끼리 밥을 먹고 헤어지는 일’이었다. 신촌 펜싱 정규 운동시간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였다. 보통 6시부터 7시까지는 몸을 풀고, 체력 단련을 하고, 기본 스텝 연습을 했다. 7시부터 8시까지 몇몇은 두 명씩 짝지어 칼을 쓰는 연습을 하고, 몇몇은 코치님이나 선배들에게 개인 레슨을 받고 연습경기를 뛰었다. 그렇게 8시가 되면 정규운동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펜싱부의 펜싱은 끝나지 않았다. 펜싱장이 있는 학교 건물이 잠길 때까지 당연한 듯 연습 게임을 뛰었다. 학교 건물은 밤 10시에 닫혔다. 그때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서 조금이라도 더 하려다가 문을 닫으러 온 보안요원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대부분이 밥 먹고 펜싱하면 속에서 올라온다며 공복으로 펜싱을 했다. 저녁을 안 먹은 채로도 어떻게든 더 오래 펜싱을 하고 싶어서 10시까지 버티고도 ‘조금 더’를 외치던 사람들이었다. 신촌 운동의 뒤풀이는 그렇게 밥도 안 먹고 오래 몸을 격하게 움직이다 문이 닫혀서 쫓겨난 사람들의 뒤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펜싱을 하느라 밥때를 놓쳐 주린 배를 채우는 게 목적이었지 술을 먹거나 친목을 다지거나 하는 것들은 펜싱부 뒤풀이의 주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일정은 신입부원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아직 연습 경기를 뛰지 못하는 신입부원들은 정규 운동시간이 끝난 8시부터 10시 뒤풀이까지 두 시간의 공백을 기다려야 했다. 선배들은 신입들에게 경기를 구경해도 좋고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툭 던져놓고 책임을 다한 듯 자기들끼리의 경기에 열중했다. 선배들끼리 신나서 자기들의 속도로 펜싱 경기를 하는 것은 아직 펜싱 규칙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신입부원이 두 시간 내내 지켜볼 만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몇몇 신입부원들은 친해지고 싶어서 혹은 펜싱을 더 잘해보고 싶어서 기다렸다. 하지만 끔찍이도 할 일이 없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집에 가곤 했다. 펜싱부는 그런 일들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애초에 신입부원을 펜싱부원으로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펜싱부에는 ‘패션 펜싱’이라는 말이 있었다. 펜싱을 열심히 하지도 않는 사람이 카카오톡 프로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는 펜싱 사진을 올려서 패션처럼 자신을 꾸미는 데 펜싱을 사용하는 걸 일컫는 말이었다, 펜싱의 독특하고 힙한 이미지를 이용하면서도 막상 펜싱부 운동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낮춰 불렀다. 그런 단어가 생길 정도로 신입부원들이 펜싱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나와 같이 펜싱부에 들어왔던 동기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는 첫 학기에 송도 체육관에서 내가 가자고 부추겼던 몇 번의 뒤풀이를 다른 일정과 겹쳐 오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 누나는 운동에 조금 덜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 나오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에 빠졌다. 그 누나는 한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펜싱부에 얼굴을 비췄다. 그게 이번 학기에는 친해져 보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했었다고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꽤 나이 차이가 나는 펜싱부 선배님이 본인이 연출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 펜싱부 재학생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 누나가 한동안 펜싱은 안 나오다가 갑자기 이 모임에 나왔었다. 몇몇은 이 누나가 운동은 안 나오면서 이런 모임에 나오는 걸 의아해했다. 펜싱은 안 하면서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챙기려는 것인지 의심받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중에 그 누나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누나는 그런 기회에서라도 친해져서 이번 학기는 펜싱부를 열심히 나와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펜싱부 사람들은 운동은 안 나오면서 이런 행사에 나온 누나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누나는 펜싱부 사람들과 그때도 친해지는 데에 실패했다. 언젠가부터 그 누나를 펜싱부에서 볼 수 없었다. 펜싱부 운동에 먼저 진득하게 나와야 마음을 여는 펜싱부 사람들이 있었고, 어느 정도 친해져야 운동을 나올 수 있는 신입부원들이 있었다. 나는 그 둘이 그렇게 엇갈리는 이야기가 슬펐다.
그때쯤부터 나는 친절하지 않은 펜싱부에 친절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었다. 1학년이 끝나고 2년 차에 주장을 맡았다. 8시에 정규운동을 끝난 신입부원들을 데리고 10시까지 단체 레슨을 혼자 도맡아 했다. 신입부원들에게 경기를 뛰는 법을 알려줬다. 경기에서 져 속상해하는 부원이 있으면 달려가서 상담을 해줬다. 그동안 열심히 나오지 않았던 펜싱부원이나 오랜만에 나오는 펜싱부원이 있으면 시간이 뜨지 않게 딱 붙어서 레슨을 해줬다. 경기를 뛰지 못하는 실력이면 옆에서 경기를 해설해 줬다. 모든 걸 하다 보니 게임은 거의 뛰지 않았고 레슨도 받지 않았다. 펜싱부 선배들은 당황해했다. 어차피 안 나올 사람들한테 레슨해주면서 네 시간 쓰지 말라는 선배도 있었다. 나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면서 어떻게 그러냐고 그 조언을 무시했다. 선배들은 펜싱부 운동에 와서 본인 운동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2학년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내 펜싱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점차 펜싱부에 애정을 가지고 남는 펜싱부원들이 늘었다. 동아리도 조금 더 활발해졌다. 펜싱부 선배들은 그런 동아리를 보며 내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제 막 펜싱을 한참 재밌게 하며 실력이 늘 시기에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니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내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네가 지금까지 펜싱 해둔 게 아깝지 않냐고 걱정하는 선배도 있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만 받고, 미안한 마음은 받지 않았다. 나는 희생하지 않았다. 펜싱부가 나쁜 사람들만 모인 곳이라 친절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펜싱부를 나갔을 것이다. 펜싱부가 가지는 불친절함은 펜싱부의 관심이 사람보다 펜싱에 향했던 것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런 무관심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런 펜싱부를 사랑했으며 내 공간으로 생각했다. 내가 펜싱부에 친절함을 채워주려는 행동들은 내 공간을 가꾸는 일이었지 희생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친절과 관심은 그 몽글몽글한 이름의 느낌과 다르게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않는다. 신입생 때 내 학과에는 소위 ‘잘 노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몇몇 선배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 특정 선배들이 많이 들어갔던 동아리가 하나 있었다. 자기들 기준에 ‘잘 놀 것 같은’ 신입생들에게 계속 그 동아리를 하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친구가 계속 거절했는데도 그 동아리에 대해 좋은 점을 말해주면서 우리 누구누구는 이 동아리 해야지 같은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막상 그 동아리에 관심이 있다고 찾아가던 신입생들에게는 시큰둥하게 응대하면서 말이다. 그 선배들이 누구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투명하게 느껴졌다. 그런 선배들의 관심은 햇빛처럼 주위를 모두 밝히는 광원이라기보다는 주연과 배경을 구분하는 무대 조명처럼 작용했다.
나는 늘 주연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때도 선배들의 관심이라는 조명에 들어가려고 애썼다. 새내기 배움터에서는 과 새내기들이 우스꽝스러운 짧은 연극을 올려야 했다. 나는 주도적인 광대 역할을 하며 여러모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짜 올렸다. 1학년 1학기에는 새내기 대표를 맡았다. 과 행사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신입생들을 탓하는 과 회장 선배의 말을 그대로 동기들에게 옮겼다. 생각이 끊긴다는 점에서 죽음과 비슷하다고 느껴 블랙아웃을 무서워했었다. 하지만 술을 먹어야 분위기가 살 것 같아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어 대학 첫 수업을 듣기도 전에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좋아하는 노래는 인디밴드 노래지만 과 뒤풀이 노래방에서는 흥을 띄운다며 간드러진 트로트를 불렀다.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무대의 조명을 쫓아다녔다. 조명이 비추는 대로 나를 재단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지쳤다. 돌아보면 그 과 문화에 굳이 종속될 필요도 없었다. 그 몇몇 선배들의 문화가 과 문화의 전부도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끌려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막 미성년자를 벗어났던 그때는 그 문화가 성년 문화의 전부인 줄 알았다. 점점 여러 문화의 가능성을 알게 되며 다른 광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특정 과의 문화를 접하고 굉장히 부러워했다. 내가 만난 그 과의 신입생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재단되지 않은 톡톡 튀는 성격을 그대로 피워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늘 없는 모습이었다.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가보지 않은 그 친구들의 과 행사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의 과 행사에는 핀 조명 대신 어떤 곳도 그늘지지 않게 모든 곳을 비추는 태양 빛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는 핀 조명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나도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과 신입생들이 무대의 조명을 따라 본인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바랐다. 대학교 1학년에게 과의 분위기와 과 회장이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학년이 될 때 과 회장을 했다.
나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지금도 그 염원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그 마음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았다. 페미니즘 학회를 만들었다. 몇백 명의 다양한 과를 가진 신입생들 앞에서 장애인권 세미나를 했다. 과 회장을 하면서 술 없는 뒤풀이를 만들었다. 과 회장이 특히 힘들었다. 술자리에서 게이를 웃음 코드로 삼아 “위험해” 같은 말들을 하며 실실 웃는 분위기를 없애려고 했다. 병신샷을 외치면서 장애인을 욕으로 사용하고 있는 술자리 문화를 바꾸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잘 노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안락할 수 있는 과 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과 문화가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분위기로 만들려 애썼다. 여러 성과와 실패가 있었다. 어떤 신입생들은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를 놀리려다가 나를 떠올리며 그 행동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놀리는 걸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내 영향이 알게 모르게 많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신입생들은 내 뒷담화를 했다. 어떤 한 친구가 특히 내 뒷담화를 많이 한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서로 많이 취한 날 그 친구한테 “너 내 뒷담화 하고 다닌다며?”라고 대뜸 물어봤었다. 그 친구가 “아니야, 나 형 페미니즘 하는 거 존경해”라고 바로 대답했다. 뒷담화가 어떤 내용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내 뒷담화가 어떤 내용인지 다 아는 채로 말하는 그 친구의 말을 그저 허허 웃어넘겼다. 언제는 동기 누나가 선배들 사이에서 내 뒷담화가 퍼져서 나를 변호해 줬다고 자랑스레 말해줬다. 속으로 짐작만 하고 있던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서 차라리 말해주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분명 내게 자랑스러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하면서 무서움과 불안감을 가슴 한편에 안고 살았다. 나는 아직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대 조명을 철거하며 햇빛이 비추는 곳을 만들고자 하면서도 무대 조명으로 나를 쑤셔 넣던 내 성정이 어디 가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익명의 이름을 가지고 내 곁에 있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럴 때 바쁘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번 찾던 펜싱부가 큰 힘이 되었다. 펜싱부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만큼 대체로 그런 이슈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들에 관심이 없다는 것에 서운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무섭고 불안해질 때는 그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펜싱부의 무관심은 나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무관심함이었다. 내 삶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와중에 펜싱부만큼은 변치 않는 공간이었다. 펜싱부는 내가 얼마나 여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회의 위험 분자인지보다 그래서 이제 펜싱에 더 자주 나올 건지에 관심을 가졌다. 내가 무엇이 옳은지 남에게 의심받고 스스로 의심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그것과 별개로 나를 지탱해 줄 공간이 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펜싱부는 왁자지껄한 뒤풀이 문화가 중심인 신촌 한구석에서 밤늦게까지 펜싱하는 곳이었다. 친해지는 데에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 은은하게 친해지는 곳이었다. 술 게임을 하고 주량을 내기하며 친해지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일주일에 세 번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로 번호조차 없었다는 것에 놀라면서 펜싱에서 매일 보니 번호가 필요 없었다며 웃을 수 있는 곳이었다.
무관심이 안아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펜싱부에서는 술을 잘 먹지 못하는 대학생이어도, 한국말에 서툰 사람이어도, 인간관계를 맺는데 시행착오를 갖는 사람이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런 일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들의 관심은 펜싱을 향하느라 바빴다. 그저 일주일에 몇 번 펜싱을 나오는지가 주요한 궁금증이었다. 면접에서 사람 여럿 모이는 과 행사를 싫어하고 과 문화에서 겉돈다고 말하면 과 행사가 주로 있는 금요일에 펜싱을 나올 수 있겠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왼손잡이라고 하면 어렸을 때 왼손으로 밥 먹으면 안 혼났냐는 상투적인 물음을 묻는 것이 아니라 왼손잡이가 펜싱에 유리하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관심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다른 곳보다 덜 재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펜싱부는 그런 공간이었다.
-2024년에 독립출판 한 펜싱 에세이 <칼을 구부리는 일>의 두번째 에세이입니다. 브런치북에서는 앞부분의 일부 에세이와 외전 성격을 띄는 글들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몇몇 독립책방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구매는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linktr.ee/bin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