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메인 요리(Main Dish)_아득하고 거룩한 도서관에서 (5)
동우는 여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숨을 골랐다.
긴 이야기를 하느라 목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이야기가 멈추자 일대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겨울바람에 창가가 덜컹거리는 소리만 일대를 채울 뿐이었다.
그러다 현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외계인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렇죠?”
동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그런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비슷한 눈치였다.
대강 분위기를 읽은 동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도 이 이야기가 황당하다는 건 알아요.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다 비슷한 표정을 짓더군요.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여기는 ‘기담 만찬회’잖아요?”
동우가 너스레를 떨자, 레스토라 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만찬회의 묘미죠. 무엇보다 우주는 넓습니다. 어딘 가에 우리와 다른 외계인이 있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죠.”
사장 까지 그렇게 나서자 현아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문학자인 그녀가 외계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따지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저는 재밌는걸요? 외계인을 만나다니! 꼭 영화 같아요.”
세라는 밝은 어조로 동우 편을 들었다.
광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는 곳이라면 꼭 가보고 싶네. 작가 양반들만 그런데 가는 건 조금 불공평해.”
이쯤 되자 얼어붙었던 방금 전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민욱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지 동우를 은근히 재촉했다.
“그렇게 어떻게 됐소? 그 네모난 외계인과는 계속 만난 거요?”
“당연하죠. 외계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걸 저버릴 수 있나요.”
동우는 모두의 눈초리 속에서 스테이크를 썰면서 마저 기담을 이어갔다.
“저와 네모 씨는 그 이후로 규칙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 * * * *
네모 씨와 저는 한 가지 규칙을 세웠어요.
첫 번째, 알 수 없고 아득한 도서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공유할 것.
두 번째, 하루에 일정 시간은 만나서 서로가 아는 것을 공유할 것.
세 번째, 아무리 배고파도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것.
참고로 말하자면, 마지막 조건은 네모 씨가 직접 제시한 거예요. 네모 씨 종족은 오로지 태양광으로 인한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거든요. 네모 씨는 다른 생물체를 먹어 열량을 얻는 저희의 식습관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죠. 몇 번 설명해줘도 경악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 뿐이었어요.
제가 입과 치아를 보여주면서 이걸로 음식을 씹어 먹는다고 했을 때는 경기까지 일으켰어요. 네모 씨 종족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상상 속에서나 나오는 괴물들이나 하는 짓이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저는 네모 씨에게 있어 끔찍한 세상에서 온 괴물이었던 셈이죠.
<아무리 배고파도 정말 나를 섭취하지 않을 거냐?>
네모 씨는 겁에 질려 몇 번이나 묻기까지 했어요. 어처구니가 없었죠.
“몇 번을 말해요? 제가 생물체를 먹어 에너지를 얻긴 하지만, 아무거나 먹지 않아요. 무엇보다 우리는 친구잖아요? 설마 배고프다고 친구를 잡아먹을까요.”
<그래도 나는 두렵다. 네 구강 구조는 매우 단단하고 날카롭다. 네가 달려들면, 내 몸은 순식간에 찢겨나갈 것이다.>
확실히 네모 씨의 몸은 말랑말랑한 젤라틴 제질이라 저에 비하긴 약하긴 했어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제가 힘껏 물어 뜯으면 금세 뜯겨나갈 정도였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외계인을 잡아먹겠어요? 무엇보다 여기에는 먹을 게 언제 어디서라도 튀어나오는 걸요.
이쯤 되자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더군요.
“네모 씨네 행성에서는 저희 같이 무언가를 잡아먹는 생물은 하나도 없나요?”
<그런 괴기스러운 진화를 이룬 존재는 없다. 내 고향 행성의 존재들은 모두 은혜로운 항성의 빛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네모 씨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행여 그런 끔찍한 존재는 자신의 고향 행성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 같았죠.
그쯤 되니 왜 네모 씨 종족의 몸이 말랑말랑한지 이해도 됐어요. 자신을 노리는 천적이 딱히 없으니, 우리처럼 거칠게 진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거겠죠.
“지구에 오면 경악하겠네요. 지구에는 서로 먹고 먹히는 게 일과거든요.”
<그래서 두렵다. 우주에 그런 끔찍한 곳이 있다니!>
네모 씨는 촉수를 통한 전류로 자신의 두려움을 여김 없이 표현했어요.
그렇게 저희 둘 사이에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이 있긴 했지만, 제법 친해졌어요. 약속대로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규칙적으로 만났거든요.
몇 시간 씩 만났냐고요?
그게 조금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도 그럴게 저희 인류는 24시간 체제에 익숙하잖아요. 하지만 네모 씨 종족은 훨씬 시간을 다루는 게 엄격하고 세밀했어요. 행성의 공전 주기에 맞춰 하루를 36시간으로 쪼개고, 그 안을 복잡한 수식과 단위로 체계화 했죠. 가령, 제게 있어 ‘2시간’은 네모 씨의 세계에서 ‘1.5 공전 분기 4분의 1파잔 겸 5의 3분의 딜뭉을 포함한 56번째 어린 시간 분의 선’으로 표현해요. 어렵긴 더럽게 어렵고, 복잡하기는 또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적당히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네모 씨가 어련히 나타나곤 했죠. 처음에는 어떻게든 정확한 시간 약속을 잡아 볼까 했지만 실패했어요. 저희 둘 다 서로의 시간 방법을 이해 못했거든요.
저희는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제법 오래 대화를 이어갔어요. 주로 서로의 고향 행성이나 문화, 풍습, 종교, 존재하는 생물들, 그리고 과학 기술에 대해 이야기 했죠.
<너희 종족은 벌써 행성 바깥의 영역까지 탐험한단 말이냐?>
“그래요. 우리는 그걸 우주선이라고 부르죠. 그걸 타고 지구의 위성을 탐험하기도 했어요.”
<기이하다! 실로 기이하다!>
네모 씨는 특히 저희의 우주 공학 기술에 관심을 가졌어요. 네모 씨의 종족은 아직 과학이 그 정도까지 발달하지 않아 우주를 탐험하는 건 상상의 영역이라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 보다 미개한 건 아니었어요. 네모 씨 종족은 생물 공학과 의학 부분에서는 압도적으로 저희를 초월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죠. 그도 그럴게, 네모 씨 종족의 시력은 엄청난 수준이었거든요.
<우리는 신체 구조의 염기서열을 맨 눈으로 볼 수 있다. 까마득한 이전부턴 이를 응용하여 파손된 신체를 수복하거나, 노쇠한 세포를 다시 역전시켜 젊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활용하고 있지.>
“그러면 잘려나간 신체를 돋아나게 하거나, 영원한 젊음도 가능하겠네요?”
제가 깜작 놀라 묻자, 네모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어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희는 불가능한가?>
“저희에게 있어 그건 꿈의 영역이에요. 무엇보다 저희는 발달된 기계가 없으면 염기서열을 맨 눈으로 보지 못해요.”
이렇게 말하자 네모 씨는 여섯 개의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저를 뚫어져라 보더군요.
<안타깝다. 내 눈에는 네 염기서열의 허점이 보인다. 우리 종족 내에서 몇 개에 간단한 조치를 가하면, 너는 다시 젊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네모 씨 종족에서는 다시 젊어지는 것이 간단한 조치를 가하면 해결할 수 있는 염기서열의 허점에 불과한 거예요. 얼마나 우리와 차이가 나시는지 대략 가늠이 가시나요?
아무튼 네모 씨는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 아니, 외계인이었어요. 호기심이 많았지만, 친절하고 배려심도 있었죠. 겁은 조금 많았지만요.
언제 한 번은 서로 창작을 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어요.
<이것이 우리 종족이 공상 기체를 생성해내는 방법이다.>
네모 씨는 촉수로 자기 몸의 구석을 쥐어짜서 거무죽죽한 액체를 만들었죠. 지난번에 제가 맛보았던 그 초콜릿 맛 나는 액체였죠. 네모 씨 종족은 그것을 커다란 항아리에 담는 것으로 자신이 공상한 내용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했어요.
<공상 기체를 생성한 다음, 이를 전류 신화 시켜서 체액에 섞어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을 신체 표면에 바르면 자연스럽게 흡수하여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
네모 씨는 그러면서 체액을 자신의 표면에 바르는 모습까지 보여줬어요. 이런 식으로 네모 씨 종족은 무언가의 정보를 만들고, 또 공유했던 거죠.
“저희는 이걸 써요.”
저 역시 보란 듯이 종이와 펜을 보여줬어요. 네모 씨는 특히 종이에 호기심을 보여주더군요.
<이게 뭐지?>
“종이라는 건데, 나무를 베어 만든 기록 매체에요. 여기에 글이라는 시각 정보를 기재하고, 하나로 엮어 책이라는 것을 만들죠. 저희는 이걸로 지식을 전달해요.”
거기까지 듣자 네모 씨가 경악해서 묻더군요.
<그렇다면 이것도 생명체의 일부였다는 것이냐?>
“그렇죠?”
제가 별 생각 없이 답하자, 네모 씨는 촉수를 빳빳하게 세우고 어쩔 줄 몰라 했어요.
<으으으으! 너희 종족은 왜 이렇게 끔찍한 짓을 쉬지 않고 저지르는 것이냐!>
“지구에 있는 출판업자들이 그 말을 들으면 섭섭해 하겠네요.”
깜짝 놀랄 때 마다 네모 씨는 촉수를 빳빳하게 세우고 전류를 이곳저곳에 흘려보내곤 했는데, 그 모습이 퍽 재밌어서 자주 웃었죠.
대화할 존재가 없던 이 넓은 공간에서 네모 씨의 존재는 제게 있어 정말 큰 위안이었어요. 거기에 있는 동안 네모 씨와 대화하는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