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메인 요리(Main Dish)_아득하고 거룩한 도서관에서 (2)
“메인 요리가 나왔습니다.”
웨이터의 목소리가 갑자기 비집고 들어왔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동우는 반사적으로 입을 멈췄다. 그러자 기담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장이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기담이 끊겼군요.”
그러면서 그는 웨이터에게 책망의 눈빛을 던졌다. 기담을 하는 동안은 끼어들지 말라고 무언의 질책을 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메인 요리를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 하죠.”
동우는 그런 사장을 달랠 겸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곧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 앞으로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가 놓이기 시작했다. 막 구워낸 것인지 스테이크에서는 훈훈한 열기가 올라왔다.
“잘 익혔네. 육즙이 살아 있어.”
광열은 자신 몫의 스테이크를 큼지막하게 자르며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칭찬을 들은 후에야 마음이 풀린 듯, 사장이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희 주방장이 불 조절 하나는 잘 하나거든요.”
그 말을 들은 동우는 자신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바라봤다. 막 구워낸 것인지 스테이크에서는 훈훈한 열기가 올라왔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특유의 불 냄새에 자연스럽게 식욕이 자극됐다. 앞서 다른 코스 요리를 맛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둘러 달려들어 한 조각을 크게 잘라먹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소스가 맛이 독특하네요.”
세라가 같이 나온 소스에 스테이크를 푹 담그며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했다.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육즙에 레드 와인을 넣은 다음, 폴그레인 머스타드와 허브를 뿌려 함께 졸였습니다. 곁들여 드시면 좋을 겁니다.”
아무래도 소스도 특별한 조리법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확실히 어딘가 새콤하면서도 옅은 향신료 냄새가 나는 걸 보니 평범한 시판용 소스가 아닌 건 확실했다.
“가니쉬로는 아스파라거스와 미니 당근, 그리고 감자인가요?”
현아는 스테이크보다는 함께 나온 가니쉬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사장은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때로는 평범한 게 좋을 때가 있으니까요.”
확실히 이번에 나온 스테이크는 앞서 나온 코스 요리와 비교했을 때 다소 평범하긴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테이크’라는 음식의 의의에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동우는 나이프를 들고 가볍게 칼질을 했다. 나이프가 미끄러지듯 고기 안으로 들어가며, 채 빠지지 않은 육즙이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겉 표면을 단기간에 빠르고 강하게 구워내 육즙을 안에 가둬 놓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기대감 속에서 크게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바삭하게 구운 겉 표면이 으깨지며, 채 빠져 나가지 못한 육즙이 흘러 나와 천천히 입안을 채웠다. 동우는 그 맛에 취해 몇 번을 우물거렸는데, 얼마 씹지 않았는데도 스테이크가 녹듯이 스르륵 풀어져 사라졌다.
“음, 맛있네요!”
동우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소 평범한 모습에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스테이크의 맛은 훌륭했다. 이런 저런 복잡한 기교 없이 오직 고기의 맛 그 자체로 승부를 보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칭찬에 사장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군요.”
“그, 그러게요.”
동우는 괜히 자신이 호들갑을 떤 것 같아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세레가 그런 그녀에게 보채듯이 물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아무래도 식사 때문에 끊어진 기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 그거요?”
동우는 입에 남아 있던 스테이크 조각을 마저 씹어 삼켰다.
그리고 마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 * * * *
제일 먼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이었어요.
처음에는 어두우니 불을 켜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습관처럼 벽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았죠.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닿지 않는 거예요.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뒤늦게 누워 있는 바닥의 감촉이 침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어요. 분명 잠들 때만 해도 푹신한 침대 위였거든요. 하지만 잠에서 깨고 보니 딱딱한 카펫 바닥에 누워 있었죠. 그제야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낡은 탁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어요. 탁자 위에는 낡은 타자기 하나가 놓여 있었죠. 그 위에는 작은 백열등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빛이 워낙 적어 탁자 주위만 간신히 밝힐 정도였어요. 그 주위에는 이렇다 할 가구 하나 없이 그저 어두컴컴하기만 했죠. 이렇다 할 안내 문구나 지시 사항은 전혀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주위 풍경이 달라지지 않는 거예요. 무엇보다 살에 닿는 감촉이 ‘이것은 꿈이 아니라 실체다’라고 확연히 말해주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잠들어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진 거였죠.
“누구야?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친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 못된 장난을 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출판사 직원이나, 친구, 혹은 제 악질적인 팬이 몰래 카메라라도 하는 줄 알았죠. 물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순순히 어울려 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사람 잘못 봤어.”
저는 씩씩 거리면서 곧장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바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통화도 되지 않고, 인터넷도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액정에는 무심하게 ‘통화권 이탈’이라는 안내 문구만 깜빡일 뿐이었어요.
혹시 누군가 나를 전파도 닿지 않는 외딴섬으로 납치해 온 것은 아닐까.
불현듯 이 생각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마침 얼마 전에 변태적인 욕구를 가진 부자가 사람들을 납치해 섬에 몰아넣고 가학적인 게임에 억지로 참여시키는 영화를 봤었거든요. 어쩌면 내게도 이런 그런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떠오르자 두려움이 와락 몰려왔어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상대방을 자극해봤자 좋을 것 없을 것 같았기에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어요. 제가 고분고분 굴면 상대 쪽에서 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화 안 낼 테니까, 이야기 좀 할까요? 일단 뭘 원하는지는 말해줘야 저도 장단을 맞추죠.”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렸지만,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말을 걸었어요.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죠. 이쯤 되자 절박해졌어요.
“약속할게요! 경찰에 신고도 안 하고, 화도 안 낼게요! 정말이에요! 그냥 저한테 원하는 게 뭔지 말해주기만 하면 돼요!”
어둠을 향해 얼마나 애원했는지 몰라요. 어디서든 나를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동정심이 생기길 바랐죠. 소리도 지르고, 흐느껴 울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대화도 걸어 봤어요.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어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자연스럽게 갈증과 허기가 찾아오더군요. 어젯밤 술을 진탕 마셨기 때문에 특히 더 심했어요.
“가둬 뒀으면 먹을 거라도 줘야 될 거 아냐.”
기다림에 지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숙취 때문인지 해장국 한 그릇이 절실했거든요.
그 순간, 포근한 음식 냄새가 풍겨오는 거예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탁자 위에 시원한 물이 담긴 병과 따뜻한 해장국 하나가 놓여 있지 뭐예요? 분명 방금 전까지는 낡은 타자기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갑자기 나타난 음식을 보고 당시에는 혼란스럽기만 했어요. 갓 준비한 것 같은 이 음식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거든요. 이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사람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음식이 나올만한 구멍이 있던 것도 아니었죠. 말 그대로 탁자에서 솟아난 것 같았어요.
수상쩍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제게 음식 냄새는 강렬했어요. 도저히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음식을 먹어 치웠어요. 저를 상처 하나 없이 데리고 왔던 만큼 음식에 딱히 독이 들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맛은 훌륭했어요. 그렇게 맛있는 해장국은 처음이었죠.
배가 부르고 나니, 오히려 머릿속이 냉정해지더군요. 그래서 차분히 앉아서 상황을 점검했어요. 우선 저는 어딘가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넓은 공간 어딘가에 외따로 있었을 뿐이죠.
저를 납치한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은 해칠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랬다면 이렇게 밥을 차려주지도 않았겠죠. 이쯤 생각이 드니, 긴장이 풀리더군요.
과연 무엇을 위해 납치한 걸까.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뒤따랐어요. 상식적으로 이유 없이 저를 이런 곳에 내던져 놓았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처음에 드는 생각은 저를 일종의 눈요깃거리로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였어요. 어딘가에 숨겨진 카메라로 힐끔힐끔 지켜보면서 제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망가지고 미쳐가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거죠. 세상은 넓으니, 그런 미친놈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괜히 오기가 들었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장난감처럼 보는 건 용납 하지 못할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반항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그게 뭐냐고요?
바로 가만히 있는 거였어요.
저를 감시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지루함을 주기로 마음먹은 거죠. 납치한 대상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분명 지겨워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 일념 하나로 누워서 꼼짝 없이 자리를 지켰어요. 그러다 식곤증 때문인지 스르륵 잠들었죠.
잠에서 깨고 보니, 음식 그릇은 사라지고 없었어요. 잠든 사이에 치웠는지, 탁자에는 낡은 타자기만 놓여 있었죠. 저는 그 상태로 우두커니 앉아 한 번 더 주위를 살폈어요. 그런데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목이 마르더군요. 안 그래도 밥을 먹고 난 뒤에는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입가심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맞아요.
여러분이 생각하신 대로예요.
타자기만 놓여 있던 탁자 위에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유리컵이 나타났어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죠.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어요.
그걸 보니 덜컥 겁이 나더군요. 어쩌면, 아주 어쩌면 저를 납치한 존재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아니고서는 어떻게 제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해 놨겠어요.
무엇보다 저는 작가잖아요? 온갖 불길한 상상은 다 할 수 있죠. 그래서 혹시라도 인간을 연구하는 못된 외계인이 저를 납치해 온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동물을 채집해 유리함에 넣어 관찰하는 것처럼요.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우선 갇혀 있던 공간의 한계에 대해 알아야겠다 싶었어요,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다고 엉엉 울면서 현실 부정을 하거나 안달복달하는 건 오히려 저쪽에서 바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히려 차분히 이 공간에 대해 잘 알아야 나중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었죠.
우선 준비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골똘히 여기에 곁들여 먹을 쿠키 하나를 떠올렸어요. 그러자 이번에도 탁자에 쿠키가 담긴 그릇이 튀어나왔죠. 이후에 케이크,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떠올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무엇을 떠올리더라도 원하기만 하면 음식이 치솟았죠. 반대로 ‘필요 없다’라고 마음먹으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음식뿐만이 아니었어요. 씻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커다란 샤워부스가 튀어나왔죠. 안에는 화장실도 딸려 있었어요. 갈아입을 옷이나 드라이기, 로션 같은 것도 바라기만 하면 어둠 속에서 치솟았어요. 꼭 보이지 않는 만능 하인이 곁에 있는 기분이었죠.
물론 불가능한 것도 있었어요. 시험 삼아 총이나 폭탄, 탱크 같은 것을 염원했지만 그건 나타나지 않더군요. 사람이나 동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까 해가 되지 않는 물건이나 조리 된 음식만 불러낼 수 있었죠.
거기다 외부 소통도 불가능했어요. 전화기나 컴퓨터를 불러낼 수는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통화는 되지 않았죠. 말 그대로 완전히 격리된, 하지만 모든 것이 충족되는 공간이었던 거예요.
규칙을 알고 나니 조금 재밌어지더군요. 이후 시험 삼아 이것저것 불러내 봤어요.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비싼 명품이나 거대한 킹사이즈 침대, 텔레비전이나 책도 나타나더군요. 딱히 할 것도 없었던지라 실컷 책도 읽고 영화도 봤어요.
이쯤 되자 이 어두컴컴한 정체불명의 공간이 편해지더라고요. 솔직히 언제 이렇게 모든 것이 충족되는 공간에 머물러 보겠어요. 낮과 밤의 구분도 없었기에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잤죠. 그래서 언젠가는 ‘혹시 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렇게 온갖 물건과 음식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어요. 하지만 딱 한 가지만큼은 제 바람과 상관없이 자리를 지켰죠.
그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놓여 있던 낡은 탁자와 타자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