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메인 요리(Main Dish)_아득하고 거룩한 도서관에서(1)
불어오는 바람에 레스토랑 창문이 덜컹거렸다.
눈보라가 더 심해지려는가 보구나. 동우는 홀로 이렇게 생각했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하얗고 하얀 세계를 보고 있자니, 꼭 음식 냄새와 훈훈한 온기로 가득한 레스토랑 안이 말 그대로 뚝 떨어진 별개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이제 메인 요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사장의 목소리가 일대의 공기를 울렸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어지는 미식의 행렬에 알게 모르게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았다.
“메인 요리는 뭔가요?”
세라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굽기는 다들 어떻게 준비해드릴까요?”
그 말을 들은 광열이 중얼거리듯 답했다.
“소고기는 핏기가 있는 게 좋지.”
“그럼 레어로 구워드리겠습니다.”
민욱 역시 그에게 턱짓을 하며 일렀다.
“나도 레어로 해주게.”
세라가 팔을 번쩍 들더니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웰던이요.”
그 말을 들은 광열이 가볍게 핀잔을 줬다.
“고기 먹을 줄 모르네. 소고기는 바짝 익히면 맛없어.”
“제가 비위가 약해서 날것은 잘 못 먹거든요.”
세라는 머쓱한지 헤헤 웃어 보이기만 했다.
“저는 미디엄이 좋겠어요.”
“저도요.”
현아와 철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사장은 지금까지 주문 사항을 수첩에 꼼꼼히 적더니, 슬쩍 동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어떻게 할지 묻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와 닿는 시선에 동우는 잠시 움찔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저도 미디엄으로 구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은 빠르게 모두의 주문을 적어 내려갔다. 곧 웨이터가 주문 목록을 가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처럼 절도 있었다.
“메인 요리가 준비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데요. 그 사이에 기담을 나누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도 사장이 먼저 나지막이 기담을 권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제 누구 차례지?”
광열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세라가 뒤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대를 훑었다.
“흐음, 어디보자…….”
그들의 시선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동우에게 멈췄다.
동우는 자신에게 닿은 눈초리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차례 인가요?”
철헌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저부터 할까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동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내심 기다리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그녀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신기하긴 해요. 기담 만찬회라니. 꼭 재가 가진 이야기를 털어 놓으라고, 누군가 등이라도 떠민 것 같아요.”
그러면서 슬쩍 사장에게 눈길을 던졌다.
여기에 왔을 때부터 달라붙던 기묘한 기시감.
분명하다.
그곳에서 느끼던 것과 닮았다.
“사실 이 레스토랑에 들어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요. 분명 처음 온 곳이긴 한데, 꼭 예전에 와본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이런 것을 데자뷰라고 하던가요?”
사장은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물었다.
“언젠가 저희 레스토랑과 비슷한 곳에서 식사라도 하셨던 모양이죠?”
“비슷하지만 달라요. 제가 머물렀던 곳은 레스토랑이 아니었거든요.”
동우는 이렇게 말하고서 슬쩍 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지만, 사장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오히려 흥미 어린 얼굴로 조용히 그녀의 기담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건가.
동우는 이 생각을 곱씹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약 4개월 정도 실종된 적이 있어요.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제 실종에 대한 이야기에요.”
동우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설마 실종에 대해 동우가 먼저 말을 꺼내 놓을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 동우는 그런 분위기를 무시한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는 털어 놓은 적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죠. 그 이후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경찰에게는 그냥 섬에 들어가서 쉬었다고 둘러 댔죠.”
거기까지 말하고서 동우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차분하면서도 명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그 동안 어딘가에 갇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은 민욱이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갇혔다고? 범죄에 휘말리기라도 건가?”
“음,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저도 어쩌다 거기에 가게 됐는지 모르거든요.”
이렇게 말하며 동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책임한 대답이긴 했다.
“대체 어디에 있었는데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현아가 재촉하듯 묻자, 동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저는, 저는……위대하고도 아득한 도서관에 갇혀 있었답니다.”
* * * * *
위대하고도 아득한 도서관은 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에요.
사실 그곳의 진짜 명칭은 몰라요. 혹시 몰라서 하는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종교시설은 더더욱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1년 전에 3개월 정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 있어요. 사라지기 전날, 나름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 받았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출판사 직원이랑 거하게 마셨고요. 그 다음, 저는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어요.
그 이후로 저는 완전히 증발해버렸고, 3개월 간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죠. 나름 인기를 끌던 소설가가 그대로 증발해버렸으니 세상은 아주 난리가 났고요. 금전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것도 없고, 원환 관계도 딱히 없던 지라 온갖 추문이 뒤따랐죠.
아무튼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제가 실종되었던 3개월에 대한 이야기에요.
사실 지금까지는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어요. 비웃음을 사거나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까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모두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죠. 제가 입을 딱 다물고 있자 어느 순간에 이르러 관심은 식었고, 이제는 다들 소설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탈이었을 뿐이라고 넘겨짚을 뿐이죠.
아무튼 제가 사라졌던 3개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실종되었던 날로 돌아가야 해요. 당시 저는 거하게 마신 뒤 집에 가기 위해 택시에 탔어요.
참 만감이 교차하던 날이었어요, 문학상을 받으면서 작가로 살면서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것에 기뻤고, 동시에 다음에는 얼마나 더 대단한 작품을 써야 할지 불안하기도 했죠. 거기다 이런 소식을 함께 나눌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외롭기도 했어요.
저는 비혼주의자에요. 배우자도 자식도 없죠. 마지막 연애도 5년 전이라 그 흔한 연인도 없어요. 형제도 없고,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죠. 아무리 기쁜 소식이 있어도 그걸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그날따라 서글퍼지더군요.
그래서 일까요? 갑자기 부모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저를 반겨주는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요. 어머니는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아버지는……제가 5살 때 실종되셨어요.
슬픈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워낙 어렸을 적 이야기라 기억도 안 나거든요, 무엇보다 이제는 담담해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으면서 길거리를 헤집는 건 어렸을 때나 하는 일이죠.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무런 감정도 안 들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죠.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저를 혼자 키우셨어요.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면서 이사도 하지 않았죠. 돌아가시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지를 찾았어요. 오죽했으면 유언이 ‘너희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르니, 절대 집을 팔지 마라’였을 정도니까요.
아무튼 당시 저는 왠지 모를 외로움에 택시를 돌려서 제가 살던 곳이 아니라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향했어요. 청승맞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여기에 있으면 외로움이 조금 가시지 않을까 싶었죠.
어머니가 떠난 집은 싸늘했어요. 사람의 온기가 없으니 당연하겠죠.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그냥 오늘만큼은 여기에 있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술에 취한 채로 어머니가 쓰던 침대에 누웠어요. 입으로는 연신 엄마, 엄마를 찾으면서요. 참 웃기지 않아요? 다 큰 성인이 돌아가신 엄마를 그렇게 찾아 헤매다니.
아무튼 저는 그렇게 옷 위에서 잠들었어요.
눈을 떴을 때, 저는 처음 보는 낯선 곳에 누워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