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셔벗(Sherbet)_뚱보에게 바치는 수식 (1)
“인상적인 기담이었습니다.”
광열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사장이 감탄조로 덧붙였다.
“기승전결이 완벽해요. 거기다 군더더기 하나 없죠. 이런 기담은 참 오랜만인 것 같군요.”
사장의 평가에 광열은 심드렁한 어조로 일렀다.
“믿든 안 믿든 알아서 해. 나는 그냥 내가 겪은 일을 솔직히 말했을 뿐이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기담에 어쭙잖은 현실을 들이대는 건 무례죠. 무엇보다 지금은 기담 만찬회를 열고 있지 않습니까.”
사장은 모두의 동의를 구하듯이 주위를 빙 둘러보면서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런 광열 편을 들려는 것인지 철헌이 슬쩍 덧붙였다.
“실제로 여수에는 ‘신지께’라는 인어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요. 어쩌면 진짜 신지께를 만나신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한 편의 기담이 마무리 되자, 사장이 흡족한 얼굴로 일렀다.
“다음 요리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웨이터들은 능숙하게 생선 요리가 담긴 접시를 치우고는, 다음 코스 요리를 날라 왔다. 손바닥 정도 크기의 오목한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크림 비슷한 것이었는데, 감귤류 특유의 톡 쏘는 신 냄새가 났다.
“이건 뭐지?”
민욱은 유리잔 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이 가만히 설명을 곁들여다.
“생선 요리와 메인 요리 사이에 먹는 셔벗(Sherbet)입니다. 차갑고 상큼한 맛으로 입가심을 해주는 용도죠.”
광열은 노골적으로 투덜댔다.
“추워 죽겠는데, 차가운 걸 또 먹으라고?”
“이냉치냉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러지 말고 드셔보시지요.”
사장은 미소와 함께 셔벗을 권했다.
그 말을 들은 동우는 조심스럽게 유리잔 옆에 놓인 스푼을 들어 올렸다. 스푼을 가져다 대자 셔벗 위의 살 얼음이 깨지며 투명한 조각이 보였다. 작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담으니, 셔벗 알갱이가 녹으면서 서늘한 감촉과 함께 상큼한 단맛이 뒤따라 왔다. 셔벗은 입 안에서 이내 차가운 주스가 되어 가볍게 목구멍을 훑어 내려갔다.
“감귤 주스와 레몬즙을 9대 1비율로 섞은 다음, 생강즙을 살짝 추가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제주도에서 배달 온 감귤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신선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장은 자랑하듯이 셔벗에 대해 설명했다. 입가심 용도라는 말 그대로 확실히 차가운 음식을 먹으니, 입가에 맴돌던 생선의 맛이 사라지고 어딘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맛있네요!”
세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사장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셔벗은 저희 레스토랑 자랑이기도 하지요. 본격적으로 메인 요리를 먹기 전에 지친 여러분의 혀에게 잠시 휴식을 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우가 보기에 이번에도 다들 만족한 얼굴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 고작 몇 숟갈 밖에 안 될 만큼 적다는 것 뿐. 하지만 사장의 말대로 원래 셔벗은 쉬어가는 코스니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서 나 다음은 누구요?”
그렇게 모두가 셔벗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무렵, 광열이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순간 일대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새로운 코스 요리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누군가 기담의 바통을 잡아야 했다.
“제가 하죠”
그러던 중 현아가 선뜻 나섰다.
그녀는 새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기담이라고 해야 할지, 단순히 제 착각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현아는 셔벗용 스푼을 내려놓으며 사뭇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은 목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 * * * *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 반지름이 지구의 11.2배, 부피는 1,300배가 넘는 거대한 행성. 대기 성분은 주로 헬륨과 수소로 이루어진, 어쩌면 태양을 이어서 두 번째 항성이 됐을지도 모를 외행성. 표면 중력은 지구의 2.5배, 공전 주기는 12년. 아마 과학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목성이 태양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아주 많은 소행성이 있는 소행성대가 있어요. 이 소행성들은 목성의 중력권에 매여 있어서 우리가 사는 지구까지 오지 못하고, 목성 위주를 빙빙 돌고 있죠.
만에 하나 목성이 사라진다면 이 소행성들은 풀려나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갈 거예요. 그중 하나라도 우리 지구에 직격할 경우 지구는 일격에 쪼개질 겁니다. 여러모로 우리 지구인들은 목성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인거죠.
이렇게 중요한 목성에서 몇 달 전 이상 현상이 발견됐어요.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목성의 공전 궤도에 조금 문제가 생겼죠.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목성이 갑자기 비틀거리기 시작했거든요. 전에 없던 가스 분출까지 관측됐고요. 이런 목성의 문제의 이상 현상 때문에 한동안 학계가 떠들썩했어요.
저 역시 그런 목성의 이상 현상에 관심을 두고 있던 학자 중 하나였어요. 매일 같이 목성을 관측하고, 또 관측했죠. 이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에요. 혹시 천체 망원경 너머로 우주를 본 적 있나요?
우주라고 하면 아름다운 별이 반짝이는 황홀한 공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우주는 공허로 꽉 채워진 망망대해 같은 곳입니다. 나락과도 같은 어둠이 끝도 없이 채워져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별은 그 위에 떠 있는 작은 테니스공과 같은 크기입니다. 어두운 밤바다 위에 테니스공 하나가 떠다니는데, 그걸 하염없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봐요. 지루하기 짝이 없죠.
무엇보다 끝없이 우주를 보고 있자면, 두려움이 왈칵 몰려옵니다. 저 넓은 공간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거든요. 저란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 숨을 못 쉴 정도예요.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크기에 질려서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목성을 관측하느라 잠도 못 잤거든요. 과연 저게 왜 저러는지, 그리고 이 짓은 언제까지 해야 할지, 밀려드는 회의감 속에서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무리 우리 연구실에서 쓰는 천체망원경의 성능이 좋다고 해도 밀려오는 울적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하염없이 목성만 바라보는데, 불현듯 뭔가 뇌리를 스치더군요.
현재 목성의 궤도에는 사소한 오류가 있다, 라고요.
* * * * *
“오류요?”
잠자코 듣고 있던 세라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현아가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기계적 결함을 눈치 챈 거죠.”
광열이 황당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우주에도 그런 게 있담?”
그러자 현아가 단호하게 일렀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체계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현대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우주랍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저 같은 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죠.”
철헌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직 인류에게 우주는 미지의 세계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현아는 잠시 말을 쉬더니, 셔벗을 입에 우물 거렸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차가운 식감에 그녀의 몸이 옅게 떨렸다. 현아는 입 안에 감도는 새콤한 단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진짜 기묘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