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생선 요리_하얀 인어 (3)

by 심해해삼


10. 생선 요리(Fish)_하얀 인어 (3)





“끝인가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아가 슬쩍 물었다.

광열은 피식 웃더니 농담조로 물었다.


“왜? 여수에서 듀공 만난 이야기가 꽤 재밌었나보지?”

“음, 그건 아닌데요……”


현아가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아까 인어에 대해 듀공을 잘못 본 게 아니냐고 타박했었지만, 실은 광열의 기담에 잡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광열은 자신 몫의 도미 요리를 우물거리면서 덧붙였다.


“물론 끝일 리가 있겠나. 사실 그 뒤로 인어를 한 번 더 만났어.”



* * * * *


그 날은 하늘에 티 한 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맑은 날이었어.

햇빛도 쨍쨍했고, 불어오는 바람도 잔잔했지. 정말 고기 잡기에는 안성맞춤인 날씨였어.


양부는 새벽부터 나를 두들겨 깨웠어. 당연하지. 어느 미련한 어부가 그런 날을 허비하겠어? 양부는 어서 가서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면 다른 놈들한테 선수를 뺏긴다고 성화였어.


어머니는 양부에게 얻어맞아서 시퍼렇게 된 눈덩이로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과 양부가 마실 술 한 되를 싸줬지.


나는 어머니가 싸준 음식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기잡이에 쓸 어망을 들고 배 위에 올랐어. 양부는 게으름 피우면 죽을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고는 바다 한 가운데로 배를 몰았지.


정해진 지점에 도착하자 양부는 예의 술을 진탕 마시고 곯아 떨어졌어. 나는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멸치잡이에 열중했지. 평소보다 적게 잡으면, 양부가 이따가 일어나서 나를 쥐 잡듯이 두들겨 팰 게 분명했거든.


그렇게 얼마나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저 멀리서 찰박이는 물장구 소리가 들리는 거야.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 상체를 물 밖에 빠끔히 내놓고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어망을 놓칠 뻔 했지. 물에 빠져 죽은 시체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가만 보니 그 사람이 방실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는 거야. 어째 낯이 익기까지 했지. 난 그때서야 그게 지난 날 구해준 인어라는 걸 알았어.


인어는 끽끽 거리면서 배 주위를 맴돌았어. 나 역시 반가워서 따라 웃었지. 무엇보다 건강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거든.


낮에 본 인어는 밤에 봤을 때 보다 더 아름다웠어.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다고 해야 할까. 피부가 얼마나 곱고 희던지 상아를 깎아 만들어 놓은 것 같았지. 인어가 바다로 자맥질 할 때 마다 꼬리지느러미가 튀어 나왔는데, 푸른 비단처럼 반짝였어. 인어는 파도 위를 마치 제 집 마냥 이리 저리 오갔지. 숨을 쉴 때 마다 목 언저리에서 아가미 비슷한 것이 보였는데, 그게 꼭 멋진 볏을 목에 두른 것 같았어.


그런데 그때, 뒤에서 불호령이 들려왔어.


“야, 이놈아! 어디서 요령질이냣!”


그리고 무언가가 뒤통수를 찰싹하고 후려치더군. 눈앞이 번쩍했어. 뒤를 돌아 보니 양부가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 거리고 있었지. 술에 취해 뻗어 있다가 잠시 깨서는 내가 한 눈을 팔고 있던 걸 본 모양이었어. 양부는 내 멱살을 잡고 불처럼 화를 냈지.


“내가 너희 거렁뱅이 둘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는 줄 알아! 그런데 감히 손을 놀려? 개만도 못한 잡놈 새끼!”


양부는 늘 그랬듯이 술에서 깨자마자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기 시작했어. 한 번 폭력이 시작되면, 눈을 질끈 감고 이 폭력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 나는 연신 입으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고 빌면서 주먹질을 견뎠어. 그렇게 한참을 두들겨 패던 양부는 분이 풀렸는지 남아 있던 술을 죄다 들이키고는 다시 잠에 빠졌지.


나는 눈물을 닦으며 인어가 있던 곳을 다시 살폈어. 하지만 인어는 온데간데없더군. 어찌나 먹먹하던지. 양부에게 맞은 것보다 인어가 사라진 게 더 서글펐어. 꼭 이 넓은 바다에 나만 두고 가버린 것 같았거든. 그런다고 울고 있을 짬은 없었지. 만약 이대로 손을 또 놀리고 있다간 양부가 가만두지 않을게 뻔했으니까. 나는 애써 일에 집중했어.


그러다가 점심 무렵 쯤 됐으려나. 한참 일하고 있는데, 어째 부는 바람이 조금 심상찮은 거야. 방향도 바뀐 데다 어딘가 끈적끈적하기까지 했지.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 바다에 심상찮은 일이 있겠구나 싶었어. 나름 바다에 끌려 다니면서 익힌 감이 있었거든.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나는 양부를 깨우려고 잠시 몸을 틀었어. 양부는 배에 대한 욕심이 엄청 나서 키를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거든. 그래서 배를 아주 사소하게 움직이는 것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했지. 만약 폭풍이 몰려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그 전에 양부를 깨워 배를 돌려야 했어.


그런데 끼익 거리는 거슬리는 소리가 갑자기 나를 막아섰어. 몇 번인가 들어본 적 있는 인어의 울음이었지. 나는 양부를 깨우려던 걸 잊고 허겁지겁 갑판 가장자리로 뛰어갔어. 역시 인어가 상체만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 하지만 인어의 눈빛은 아까와는 다르게 뭔가 진중했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 꼭 뭔가를 경고하는 것 같았어.


인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도리질치는 거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내 행동을 막으려고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 인어는 서둘러 갑판 끝을 가리켰어. 어서 저기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지. 나는 왜 인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인어의 표정이 무서우리만큼 단호한 손짓에 거의 떠밀리듯 시키는 대로 갑판 끝으로 향했어.


바람은 점점 심해졌어. 물살의 흐름도 심상치 않았지. 나는 갑판 가장 자리를 손으로 꽉 붙들었어. 내가 타고 있던 조각배는 물살을 따라 점점 망망대해로 밀려갔지. 몇 번인가 철썩거리는 파도가 뱃머리를 후려쳤어.


인어는 조용히 배를 뒤따랐어.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멀리 가지 않고 배 근방을 꾸준히 맴돌았지. 덕분에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 그런데 조금씩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는 거야.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까지 했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폭풍의 징조였어. 바다도 방금 전과는 궤를 달리 할 정도로 거칠어져 갔지.


“이, 이게 뭐야!”


그 즈음 양부도 이상함을 눈치 챘는지 잠에서 일어나더군. 양부는 술기운에 벌개 진 얼굴로 주위를 살폈어. 그리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어투로 나에게 소리쳤지.


“이 놈아! 이 지경이 됐는데 뭘 하고 있었어!”


평소였다면 아마 양부한데 한 대 얻어 터졌을 거야. 그런데 때 마침 집 채 만한 파도가 밀려와 배를 덮쳤어. 배 위에 있던 나는 물론 양부까지 흠뻑 젖었어. 양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채고는 후다닥 키를 잡더군. 양부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두려움을 가득했어.


나 역시 바다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어.

하지만 쉬지 않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비치는 인어가 있어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안심이 들더군.

뭐라 말로 설명하긴 힘든, 어렴풋한 확신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인어가 옆에 있으니 나에게 행여 무슨 일이 있겠냐는 이유 없는 안심까지 들었어.


배는 물살을 타고 빠르게 바다 구석으로 향했지.


아주 순식간이었어. 양부는 낑낑거리며 키를 움직였지만, 파도가 너무 강했어. 하나 둘 떨어지던 빗방울도 어느새 굵어져 장대비가 되어 내렸지.

옆에서는 바닷물이 철썩이고,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우두두 떨어지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몰라. 그 와중에서도 배는 파도를 따라 요동치고 있었어.

그러던 중에 어렴풋이 저 멀리 거무튀튀한 게 보이는 거야.

처음에 뭔가 했는데, 가만 보니 바닷가 위로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온 암초였어.

눈앞이 아찔하더군.

만약 저기에 부딪쳤다가는 이 배는 종이짝 찢기든 부서질 게 분명했으니까.


끼익, 거리는 소리가 다시 배아래서 들려왔어.


인어였지. 인어는 여전히 얼굴만 바다 위에 내놓은 채 가만히 손가락을 뻗었어. 새하얀 손가락이 향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양부가 붙들고 있는 키였지. 난 순간 내 눈을 의심했어.


인어는 재촉하듯이 손가락을 까딱였어.


그때까지 갑판을 죽자 살자 붙들고 있던 나는 인어가 지시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아챘지. 평소라면 꿈도 못 꿨겠지만, 이상하게도 옆에 인어가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거야.

꼭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뒤늦게 서야 해치우려고 마음을 먹은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고함을 지르면서 힘껏 양부에게 달려갔어. 그리고 양부가 쥐고 있는 키를 온 힘을 다해 암초 방향으로 틀었지.

평소였다면 먹히지 않았겠지만, 양부는 그날 술을 진탕 마신 상태였던지라 악력이 떨어져 있던 상태였어. 무엇보다 설마 내가 나서서 그런 짓을 할 거 라고 생각을 못했었겠지.

키가 움직이자 배는 허망하리만큼 쉽게 암초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갔어. 양부는 분노와 경악이 섞인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지.


하지만 배가 암초에 부딪친 게 먼저였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배는 암초에 부딪쳐 그대로 조각났어. 시커먼 바닷물이 콸콸거리며 쏟아져 들어왔지.


배가 기울자 양부는 균형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고꾸라졌어.


그 상태에서도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를 붙잡으려고 버둥거리더군. 눈에 핏발이 선 채 연신 몸을 뒤트는 그 모습은 꼭 한 마리의 괴물 같았지. 나는 양부를 피해 갑판 가장자리로 기어 올라갔어. 연거푸 밀려온 파도가 연신 양부를 뒤흔들었어.


그때, 새하얀 팔이 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왔어.

맞아. 나를 여기까지 인도한 그 인어의 팔이었어.


인어는 양부의 목을 자신의 팔로 힘껏 휘감았지. 그리고 바로 몸을 꺾어 바다로 뛰어들었어. 양부는 인어에게 붙들린 채 허망하리만큼 쉽게 바다로 끌려갔지. 양부의 모습은 순식간에 바다 깊숙이 잠겨 사라졌어.


우리가 타고 있던 배 역시 암초에 조각나 곧바로 양부의 뒤를 따랐지. 인어의 모습도, 양부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었어.


나는 튕겨나간 배의 조각을 붙들고 혼자 바다에 남겨졌지. 그런데 그 즈음 다시 한 번 더 커다란 파도가 내 위로 몰아쳤어. 바닷물에 휘감기자 숨이 턱하고 막히더군.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어.



* * * * *



“얼마 후에 나는 해안가 근방에서 정신을 차렸어. 나를 구해준 사람의 말에 따르면, 내가 얕은 해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더라고. 잘은 모르지만 어찌 어찌 운이 좋게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떠밀려 온 모양이야.”


광열은 씹던 음식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쓰러진 내 옆에는 부서진 배의 파편이 떠밀려와 있었어. 누가 봐도 내가 타고 있던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나는 갑자기 폭풍에 휘말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댔지. 다들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어줬어. 뭐, 솔직하게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겠지만 말이야.”


밤중에 곤란에 처한 인어를 만나 도움을 줬는데, 그 인어가 다시 나타나 폭력적인 양부를 끌고 바다로 들어 가버렸다.

누구라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설사 광열이 진실을 말해준다 한들 사람들은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헛소리라 여길 게 분명했다.


“폭풍에 휘말려 조각배가 좌초하는 일은 가끔가다 일어나는 일이긴 했어. 그래서 사람들도 어련히 이번 일도 그와 비슷할 거라 넘겨짚었지. 나는 대강 굴러가는 상황을 눈치 채고는 배를 제대로 몰지 못할 정도로 아버지가 술이 취하긴 하셨다는 말만 덧붙였지. 양부는 당시 포구에서 유명한 주정뱅이로 악명이 자자했던지라 사람들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어.”


확실히 딱히 의심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의심한다 해도 이렇다 할 증거도 없었다. 광열은 차분히 과거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땅을 치면서 ‘내가 그 사람에게 술을 들려 보내는 게 아니었어!’라고 우셨지. 어머니가 정말 양부의 죽음이 슬퍼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하나 뿐인 아들이 죽을 뻔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신 건지 나는 몰라. 중요한 건, 어찌 됐든 난 그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거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광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양부는 어떻게 됐나요?”

“양부는 그날로 실종처리 됐어.”


짧으면서도 단호한 대답이었다.


“나는 사실 양부가 멀쩡히 돌아오지 않을까, 몇날 며칠을 걱정했어. 하지만 다행이 양부는 시체조차 찾지 못했지. 물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폭풍에 휘말리는 바람에 시체도 못 건지는 경우가 워낙 비일비재했거든. 삼대가 고기잡이를 갔다가 영영 못 돌아오는 바람에 빈 관 세 개를 두고 줄초상을 치른 집도 있었을 정도니까. 아무튼 그러다가 결국 양부는 사망한 걸로 처리됐지.”


그리고 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다행인 건, 그 놈이 죽기 전에 자신의 배와 자신의 목숨에 보험을 들어놨다는 거야. 많지는 않았지만, 어찌 어찌 두 모자가 살림을 차릴 정도의 돈은 됐지. 어머니는 그 돈으로 작은 가게를 차려서 나를 기르셨어. 사람들도 졸지에 아버지를 둘씩이나 잃은 나를 동정해서 여러모로 도와줬지.”


바다에게 가장을 두 번이나 빼앗긴 모자. 가만 봐도 한 없이 비극적으로 비친다. 가여운 이 두 사람에게 그날의 사고를 샅샅이 묻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바닷가 특유의 상황이 두 사람에게는 아마 완벽한 변명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비록 광열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우는 대강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짐작이 갔다.


“더 이상한 건 말이야. 내가 그 이후로 여수 바닥을 못 떠나게 되어버렸다는 거야. 거기에 있다 보면 언젠가 그 인어를 다시 만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거기까지 들은 세라가 작게 핀잔을 줬다.


“그런 분이 낚시 가게를 운영하세요?”

“뭘 모르네. 낚시꾼들이랑 친해지면 바다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다 긁어모을 수 있어. 오늘도 잘 아는 낚시꾼이 희한한 것을 낚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던 참이었지.”


광열의 당당한 설명에 사장이 슬쩍 끼어들어 물었다.


“만약 인어가 아니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또 바다 앞에서 기다려야지.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인어가 나타날지 누가 알아? 하하하하하.”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광열의 접시는 어느 센가 말끔히 비워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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