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생선 요리_하얀 인어 (1)

by 심해해삼

8. 생선 요리(Fish)_하얀 인어 (1)






“실로 재밌고 이색적인 기담이었습니다.”


세라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 사장이 감탄조로 말했다.

자신의 기담이 칭찬 받자 세라는 헤헤 웃어보이기만 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누구한테도 말 못했던 이야기였는데, 여기서 말하게 되네요.”

“당연하죠. 지금은 기담 만찬회를 여는 중인 걸요.”


사장은 자리에 앉은 모두를 빙 둘러보며 이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무슨 기담을 이야기하든, 절대 토를 달지 말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부드러운 어조로 일렀다.


“다음으로 생선 요리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에피타이저와 스프, 샐러드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식사에 들어갈 차례인 모양이었다. 샐러드를 풀떼기라고 운운하며 툴툴 댔던 광열은 노골적으로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제야 먹을 만한 게 나오네.”


곧 웨이터가 하얀 접시를 날라 왔다.

접시에는 곱게 저며진 생선살과 감자튀김이 층을 이룬 채 쌓여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하얀 소스가 위에 뿌려져 있었는데, 새콤하니 어딘가 식욕을 자극시키는 냄새가 났다. 그 위로 검은 발사믹 소스가 마치 붓글씨처럼 길게 흩뿌려져 있었다. 구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뤄 꼭 한 폭의 작은 그림을 연상시켰다.


“구운 도미에 말린 자두가 들어간 사워소스로 맛을 냈습니다. 얇은 감자튀김을 얹어서 폭신한 도미의 식감과 어울리도록 배치했죠. 입맛에 따라 함께 나오는 발사믹 소스를 곁들여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사장이 공손하게 요리에 대해 설명했다. 동우는 설명대로 감자튀김과 도미요리를 함께 잘라 입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바삭, 하는 감자튀김의 식감과 함께 농후한 도미 살의 맛이 입 안에 퍼졌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사워 소스 특유의 톡 쏘는 향이 뒤따라와 자연스럽게 혀에 감돌던 풍미를 잡아끌었다. 놀라운 점은, 생선이라는 식재료가 가질 법한 비릿한 짠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군. 도미에서 비린내가 하나도 않아. 거기다 부드러워서 이가 약한 사람도 먹을 수 있겠어.”


민욱 역시 동우랑 비슷한 감상평을 내놨다. 그러자 사장이 자부심 섞인 어조로 답했다.


“몇 시간 정도 도미를 우유에 넣어 두는 것이 비결입니다. 염분이 빠지면서 짠 맛이 중화되고, 덩달아 비린내도 사라지죠.”


확실히 이번 코스는 생선 요리라기보다는 조그맣고 하얀 케이크를 잘라 먹는 기분이었다. 도미를 이렇게도 요리할 수 있구나. 동우는 접시를 비우며 홀로 감탄했다.


“그래서 다음 기담은 누가 하실 건가요?”


그렇게 식사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 사장이 은근히 눈치를 줬다. 식사를 맛보았으니, 이제 기담을 이야기 하라고 슬쩍 보채는 것 같았다. 그러자 조용히 도미 요리를 먹고 있던 광열이 팔을 번쩍 들었다.


“내가 하지.”


사장은 의외라는 투로 물었다.


“선생님이요?”

“내가 하자고 한 기담 만찬회인데, 남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수는 없잖아.”


광열은 씹고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더니,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생선 요리를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난 말이요, 진짜 인어를 본 적 있수다.”



* * * * *


나는 여수에서 먹고 살고 있지만, 탯자리는 제주도요.


우리 어머니도, 친아버지도 제주도 출신이지. 하지만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얼굴도 모르요. 내가 태어나고 한 일주일인가, 이주일인가 배타고 나가서 못 돌아왔거든. 제주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어.


어머니는 그래도 재가를 하지 않으시고 나를 10살 때까지 혼자 키웠지. 해녀셨는데, 어린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하루 내내 바다 속에서 물질을 하셨지.


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 엄마는 언제 오나, 하면서 문간에 서서 기다리는 게 일과였어.

하지만 여자 혼자 사는 게 좀 어려워?


대가리가 좀 커지고 앞가림을 할 줄 아니까 보다 못한 외할머니가 억지로 선 자리를 만들었어. 여수 사는 홀아비인데, 아내를 젊었을 적에 잃고 혼자 쭉 살아왔다 그러더라고. 딱히 자식도 없다는 거야.


그 말 듣고 외할머니는 이 사람이다 싶어서 바로 우리 어머니를 떠밀었지.

그 사람이 바로 내 새아버지, 그러니까 양부 되는 사람이야.


어머니는 솔직히 재가를 내키지 않아 하셨지. 그래서 새아버지와 선을 보러 갈 때 일부러 나를 데리고 갔수다. 애 딸린 과부라는 걸 알면 그 쪽에서 당연히 싫어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셨거든.


아직도 그 때가 머릿속에 생생허요. 난 그렇게 큰 사람을 그날 처음 봤당께. 팔이고 다리고 얼굴이고 어찌나 수염이 수북하던지.


삼국지의 장비 알지? 그 장비를 고대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면상이 무시무시했다니까.


우리는 제주도 한 다방에서 만났지.

어머니는 처녀 때 이후로는 입은 적 없다던 분홍색 한 복을 곱게 차려 입고 그 놈과 만났어. 그 놈은 어머니 얼굴을 보자 뭐가 그리 좋은지 어머니 얼굴을 보자 생글생글 웃는 거야. 한 눈에 반했다나 뭐라나.


어울리지 않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얼마나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냐면서 아양까지 덜었다니까. 그러면서 나한테 주려고 사왔다며 과자까지 쥐어줬어. 난 그 사람이 준 과자에 홀딱 넘어갔지.


사실 나도 어린 마음에 애비 없는 새끼라는 소리를 듣긴 싫었거든. 다른 놈들이 아버지 손잡고 가는 것도 부럽기도 했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덥석 아버지라고 그 놈을 불렀어. 이렇게 힘이 센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자일 거라고 생각도 했지.


이쯤 되자 어머니도 갈팡질팡 하셨어.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차마 그러지를 못하신 게지. 그 놈은 내 마음을 샀다고 생각한 건지 본격적으로 어머니를 꼬드기기 시작했수다.


그 놈 말에 의하면 자기한테 배가 있다더군. 이걸로 한 가족 먹여 살릴 정도의 돈은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거야.


그 뿐이야? 나를 책임지고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했어.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만 제대로 마쳐도 먹물 좀 먹은 놈 취급을 받았거든?


그런데 대학이라니.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귀가 번쩍 뜨인 거야.


우리 어머니는 혼자되신 후로 나를 끔찍하게 아끼셨어. 여자는 서방 없어도 자식 보고 산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항상 나한테도 자기 몸이 부서지더라도 돈을 벌어서 학교 보내줄 테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곤 하셨어.


그런 나를 대학까지 보내준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횡재한 기분이었겠어?

돈도 많아, 딸린 자식도 없어, 나를 대학까지 보내 준다고 해.

이쯤 되니 어머니도 슬슬 마음이 동했어. 결국 양부의 제안에 승낙하고 재가하기로 마음을 굳히셨지.


어차피 둘 다 두 번째로 하는 거니 식은 간소하게 하기로 했어. 그 날로 우리는 양부가 산다는 여수로 가기 위해 짐을 꾸렸지.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재가 한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하셨어. 여자 혼자 살기는 힘들었던 때니까 당연하겠지.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어. 당연하지. 어머니는 사실 친아버지를 잊지 못하셨거든. 외할머니에게 비밀이었지만, 몇 번인가 아버지가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항구를 손잡고 찾아가기도 했어.


두 분은 그 시절에 드문 연애결혼을 했는데, 어머니가 친아버지를 좋아해서 쫓아다녔다는 거야.


몇 번이고 두 분의 연애 이야기를 되풀이 하셨지. 언젠가는 고기 잡으러 간 친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고기잡이 하는 배까지 헤엄까지 쳐서 갔다는 거요.


처녀 총각이 정분나면 손가락질 받던 시절에 그리 유난을 떨었을 정도니, 대략 두 사이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가쇼? 그렇게 옛날이야기 하다가 어머니는 울고, 나도 따라서 울고. 모자 둘이서 껴안고 울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청승맞았는지 몰라.


어찌됐든 우리 두 모자는 보따리를 꾸리고 여수로 왔지. 양부, 그러니까 내 새아버지가 산다는 동네로 왔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더군.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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