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샐러드_내 안의 우주가 보내는 진동 (1)

by 심해해삼

6. 샐러드(Salad)_내 안의 우주가 보내는 진동 (1)






“스프 정말 맛있었어요!”


세라가 헤벌쭉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감상평을 들은 사장도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저도 첫 번째 기담이 참 각별했답니다.”


마치 자신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기담을 맛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뭐가 나온다고 했지?”


광열이 입에 묻은 스프를 닦으며 물었다. 사장이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샐러드입니다.”


그 말을 듣고 광열이 대놓고 실망한 티를 냈다.


“풀떼기는 별로 안 좋아 하는데.”

“그래도 드셔보시죠. 분명 입에 맞을 겁니다.”


마침 웨이터가 새로운 음식을 가져왔다. 먹기 좋게 썰린 샐러드였다.


“샐러리와 양상추를 메인으로 새싹 채소 약간과 주방장 특제 키위 드레싱을 뿌렸습니다. 새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입맛을 돋워줄 겁니다.”


사장의 설명대로 샐러드가 식탁에 오르자 일대가 싱그러운 과일 향으로 차올랐다. 그냥 맡는 것만으로도 그 맛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며 입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럼 드셔보시지요.”


이 말만 남기고 사장은 뒤로 물러섰다. 오로지 음식과 손님, 이렇게만 마주하도록 배려해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곧 레스토랑 가득 채소가 씹히는 규칙적인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동우 역시 키위 드레싱 특유의 새콤한 맛에 취해 연신 샐러드를 우물거렸다. 아삭거리는 식감 덕분인지, 추위 때문에 가라앉았던 식욕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기담을 이야기 할 건 누구요?”


그렇게 모두가 샐러드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민욱이 넌지시 물었다. 자신이 포문을 열었으니 어련히 다음 타자가 순서를 이어 받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저요, 제가 할게요!”


세라가 팔을 번쩍 들고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민욱이 그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가씨가?”

“저도 꼭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세라의 얼굴에는 두근거리는 흥미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기담을 이야기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사장이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더니, 선뜻 그녀에게 일렀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세라 씨가 기담을 이야기 하시죠.”

“우히히히히. 좋아요.”


세라는 웃으면서 입에 씹고 있던 샐러드를 꿀꺽 삼킨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저를 한 번 자세히 보세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녀는 그러면서 보란 듯이 상체를 빼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광열이 시큰둥한 어조로 일렀다.


“딱히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세요! 정말 모르시겠어요?”


세라가 날선 목소리로 재촉했다.

곧 그녀의 머리가 작고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걸 본 민욱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뭔가 방금 머리가 움직인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미세한 진동이었다.

허지만 확실히 세라의 머리는 무언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라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요. 얼마 전부터 이래요. 제 머리가 흔들리고 있죠.”


그러자 현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기담이랑 무슨 상관이죠?”


그러자 세라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상관있죠. 왜냐하면 이건 제 머릿속에 있는 ‘우주’ 때문이니까요.”



* * * * *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 그러니까. 며칠 전 부터인가, 제 머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약한 진동이긴 하지만요.


물론 병원이야 가봤죠. 그런데 거기서도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체 내 머리가 왜 이러는지 고민을 해봤는데, 솔직히 한 가지 짚이는 게 하나 있어요.

진동이 시작되기 전에, 제가 잠깐 불면증에 시달렸었어요.


아무리 자려고 누워도 잠은 안 오고, 괜히 자리만 뒤척이곤 했죠. 분명 몸도 피곤하고, 눈도 뻑뻑한데도 말이에요.


물론 자려고 별의별 방법은 다 써봤죠. 병원에서 수면제도 받아오고, 따뜻한 목욕도 하고, 우유도 데워 먹어봤어요. 잠이 온다는 노래도 실컷 들었죠.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잠은 더 오지 않더군요. 발버둥 치면 칠수록 오히려 그 잠이라는 놈이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언젠가 들은 적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예요. 누워서 방대한 상상을 하면 뇌가 그걸 감당 못 해서 쉽게 잠이 든다나요? 과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에 잠겼어요. 제가 상상력 하나는 좋거든요.


무슨 상상을 했냐고요?


처음에는 고래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상상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생각보다 고래라는 존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제아무리 고래가 크다고 해도 제 상상 속의 존재인데 뭐 그리 대단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래서 이번에는 배경을 우주로 넓혀봤죠. 우주선을 타고 거대한 우주 속을 헤매고 있다고 상상했어요. 그런데 우주선을 타고 은하와 은하 사이를 몇 번이나 왕복해도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오히려 은하라는 존재가 엄청 작게 느껴지는 거 있죠?


그렇게 바다에 이어 은하까지 갔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이유는 간단했죠. 아무리 넓은 세상이라고 해도 상상 속에 있는 한, 내 뇌의 용량 안에 있잖아요. 방대한 상상을 해도 그건 모두 내 뇌가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인 셈이죠.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조금 오기가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내가 감당 못할 정도로 거대한 상상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저는 침대에 누워 몸에 힘을 풀고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내 뇌의 한계 그 이상의 존재를 상상했어요.


그게 뭐냐고요?

바로 ‘우주’예요.


우리 우주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시작했다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저 눈을 감고 머릿속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고 상상했죠. 상상 속의 폭발은 의식 저 넓은 곳까지 퍼지고 퍼졌어요. 이윽고 폭발의 파편 속에서 수많은 별들이 태어났죠.


딱히 복잡하거나 정교한 공식은 필요 없었어요. 이건 오로지 제 상상일 뿐이니까요. 제가 우주가 있길 바란다면, 그건 그저 존재할 뿐이었죠.


그렇게 상상 속의 우주는 커지고 커져서 이윽고 은하와 별 무리를 이루었어요. 제 의식은 조금씩 넓어져 가는 우주 한 가운데에 홀로 있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저절로 잠에 들었어요. 방대한 상상을 하면 잠이 온다는 말이 사실 이었던 거죠. 꿈 한 번 꾸지 않고 달게 잤어요.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어요.


다시 잠에 들려고 누웠는데, 문득 어제 제가 상상 속에 만든 우주가 어떤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도 잠을 청할 겸 눈을 감고 제가 만들었던 우주를 상상했어요. 딱히 힘든 건 없었어요. 그냥 ‘과연 어제 만든 우주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라고 고민하니 저절로 상상이 이어지더라고요.


제 상상 속에 탄생한 우주는 고작 하루 사이였는데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어요. 우리는 상상 속에서 종종 몇 백 년 후나, 몇 천 년 후를 그리곤 하잖아요. 아마 상상 속의 우주도 비슷했나 봐요. 제게는 고작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상상 속 우주에서는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던 거죠.


마침 잠이 안 왔던지라 눈을 감고 또 다시 우주를 상상했어요. 상상 속의 우주는 무척 아름다웠어요. 이 넓은 우주를 저밖에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 뭐예요.


그렇게 무심코 ‘이 우주를 봐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곧 번쩍하고 상상 한 귀퉁이에서 녹색 별 하나가 태어났죠.


녹색별 위에는 저처럼 사고하고, 우주를 관측할 존재가 살고 있었어요.

맞아요, 제가 상상 속의 우주에서 ‘인간’을 탄생시킨 거죠.

저처럼 우주를 보고, 거기에 감탄할 수 있는 존재를 말이에요.



* * * * *



“꼭 신화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철헌이 덧붙였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 내용이 비슷하거든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그냥 심심해서 우주를 창조하고, 그것을 봐줄 존재로 인간을 빚어내죠.”


거기까지 들은 현아가 농담조로 일렀다.


“사실 신화라는 게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에요. 사람들 생각하는 게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 몫의 샐러드를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샐러드가 씹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일대를 울렸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광열이 슬쩍 물었다.


“그게 머리가 흔들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상을 열심히 하면 머리가 흔들리기도 하나?


광열의 질문에 세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기담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흠, 그게 말이죠, 그 후로 문제가 좀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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