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프(Soup)_매월이 (4)
해방 이후 곳곳에서 만세가 울려 퍼졌소.
별의별 나쁜 짓을 저질렀던 일본인들이 전쟁에서 지고 헛간에 몰래 숨어든 도둑놈처럼 도망쳤단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했지.
하지만 일본의 패전을 반가워하지 않은 조선인들도 있었소. 나 같이 일본인들에게 아첨해 그들이 흘린 부스러기를 핥아 먹고 살았던 놈들 말이요.
난 당시 솔직히 일본의 패전을 믿을 수 없었다오. 어안이 벙벙했지. 내게 있어서 일본은 정말 완전무결한 부자 나라였으니까.
그런 나라가 미제한테 졌다니. 나는 내일이라도 일본에서 승전가가 들려오고 마쓰다 어르신과 그 식솔들이 저택으로 돌아올 것 같았소. 아니, 그렇게 굳게 믿었지.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내 예상과 정반대였소. 큰 폭탄이 떨어지고 일본 본토가 초토화가 됐다더군. 마쓰다 일가가 무사한지 기약 할 수도 없었소. 난 그때서야 뒤늦게 살 궁리를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소이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미군과 인연이 있는 미국인 선교사를 알게 됐소. 그는 한국에 예수교를 알리는데 정말 열성적이었지.
난 정말 신실한 신자인척 접근해 그의 환심을 샀소. 신지 도련님에게서 배운 토막 영어도 나름 도움이 됐지. 난 매일 기도를 핑계 삼아 그에게 달라붙어 영어를 배웠소.
믿음이니, 구원이니 하는 건 추호도 관심도 없었소이다. 나는 그냥 일본이 망했으니, 대신 미국의 편에 붙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요. 박쥐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도 상관없소. 난 그냥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단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늘자, 나는 선교사의 추천으로 미국 군부대에 취직했소. 내가 하는 일은 그냥 자질구레한 심부름이 전부였지만 어찌 끼니는 이을 수 있었지. 미군 군부대에서 일하면서 종종 받는 통조림이나 술 같은 걸 시장에 내다팔아도 나름 벌이가 짭짤했다오.
그렇게 미군 군부대에서 일한지 몇 달 정도 지났을까, 군부대에서 받은 부식을 내다 파려고 시장에 나왔는데 어째선지 저잣거리가 떠들썩한 거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빙 둘러 모인 채 욕을 퍼붓고 소리를 지르느라 정신이 없더군. 난 슬쩍 호기심이 동해 발걸음을 옮겼소.
거기엔 웬 넝마주이를 걸친 남자가 주저앉아 펑펑 울고 있었다오. 오랫동안 굶은 것인지 삐쩍 마른데다 수염이고 머리고 헝클어져서 꼴이 말이 아니었지.
누가 돌이라도 던진 건지 머리엔 피까지 흐르고 있었소. 그런데 가만 보니 어째 낯이 익은 거요. 곧 바로 온 몸이 소름이 돋았소.
그 남자는 다른 아닌 신지 도련님이었소. 신지 도련님은 자신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에게 악을 썼소.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저는 제 아내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냥 아내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매월아! 매월아! 어디 있느냐! 내가 왔다! 매월아! 다들 비켜! 어서! 매월이가 날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매월아! 매월아!”
반쯤 실성한 얼굴로 매월이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모습은 애절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소.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못 본 사이에 몇 십 년은 팍 늙어버린 것 같았지. 하지만 시장 사람들은 가차 없었소.
“여기가 어딘지 알고 와! 썩 일본으로 꺼져!”
앞장서서 신지 도련님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오. 평소 마쓰다 어르신의 시종 노릇을 하던 작자였소.
아첨하는 솜씨 하나는 탁월했지. 가족들도 무시하는 신지 도련님에게 낯부끄러울 정도로 깍듯이 존댓말을 썼을 정도였다오. 그런 사람이 앞장서서 신지 도련님을 다그치고 있다니. 어찌 보면 퍽 웃긴 광경이었지.
어쨌든 마쓰다 어르신에게 당한 게 있는 사람들은 신지 도련님에게 신나게 욕설을 퍼부었고, 마쓰다 어르신에게 굽실거리던 사람들은 행여 자신들의 과거가 추궁될까 무서워 더 큰 목소리를 냈소. 신지 도련님은 앉아서 맥없이 오는 돌을 정면으로 맞기만 했지.
그런데 갑자기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더군. 그리고 반가움에 겨운 얼굴로 말하는 거요.
“츠기오! 너 츠기오 맞지? 나다, 신지! 제발 나 좀 도와다오. 츠기오야!”
나를 츠기오라 부르며 목청을 높이자 갑자기 손발이 덜덜 떨렸소. 그도 그럴게 시장판에서 내가 츠기오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독립을 했어도 그 시절 이름을 잊지 않고 나를 츠기오라 더러 부르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소.
신지 도련님이 나서서 내 이름을 부르자 주위에 있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로 향하더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소.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도망쳤지. 그런 내게 신지 도련님의 목소리가 애달프게 내리꽂혔소.
“츠기오야! 너까지 나를 두고 가느냐. 나는 매월이를 한 번 보고 싶어서 왔는데, 대체 왜 나보고 사람들이 이러는지 모르겠다. 제발 매월이, 내 매월이를 한 번 만 보게 해다오. 응? 너라면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어서 매월이한테 서방이 여기 왔다고 좀 말해다오! 제발!”
신지 도련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저 앉아서 매월이의 이름만 부르며 펑펑 울기 바빴다오. 나는 뛰고 또 뛰었소. 만약 그랬다간 나도 저 자리로 끌려가 같이 조리돌림을 당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거요.
죄책감이나 그런 건 물론 아니었소.
신지 도련님이 애타게 찾아 헤매는 그 매월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매월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조선 땅에 나와 신지 도련님뿐이었소. 그때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더군.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지 않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여기 목포까지 빈손으로 왔을 리가 없단 생각이 들었지.
신지 도련님은 매월이란 그림 하나를 다시 보기 위해 여기에 온 만큼 누가 됐든 그걸 가져다주면 비싸게 살 게 분명했소.
그렇소. 나는 그 그림으로 신지 도련님과 흥정할 계획이었소.
글을 가르쳐준 고마움? 감사?
그런 건 없었소.
그냥 두툼한 지폐 다발이 저절로 굴러들어왔단 생각만 들었다오.
나는 그날 밤 머리에 망태기를 뒤집어쓰고 오랜만에 마쓰다 저택을 찾았소. 혹시 몰라 조그마한 칼도 챙겼지.
마쓰다 어르신이 도망친 후 하인들도 떠난 저택은 몇 달 사이 반쯤 폐허가 되어 있었소. 돈 될 만한 물건들은 이미 죄다 빼돌려진지 오래였기 때문에 죄다 횡 해서 어딘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더군.
혹시 누가 볼 새라 잰걸음으로 별채로 숨어 들어갔소.
과연 그림이 아직도 제자리에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한 번 확인해 봐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오.
다행히 별채는 가구 몇 개가 사라진 걸 빼고는 생각보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오. 나는 숨을 죽이며 안방으로 향했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붉을 밝히지 못해 별채 안은 어두컴컴했다오. 나는 기억에 의지해 더듬더듬 문고리를 잡아 당겼지.
그러자 묵은 공기가 쏴하고 밀려오더군. 신지 도련님이 떠난 이후로 누가 방 안으로 들어온 적 없던 것 같았소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마침 번져오는 달빛 사이로 병풍의 윤곽이 보였소.
하지만 매월이는 거기에 없었다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매월이는 거기에 없었소.
물론 병풍 속 그림은 그대로였소. 가지를 드리운 꽃나무와 그 위에 앉은 새까지 모두 화폭 안에 그대로 있었지만, 그 아래 앉아 있어야 할 매월이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소.
처음부터 매월이는 그려져 있지 않았던 것처럼 그저 텅 비어 있었지. 그림 속 꽃나무의 그늘만 가만히 뻗어 있을 뿐이었다오.
대체 매월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싶어 손으로 그림 화폭을 가만히 쓸었소. 그러자 종이의 감촉이 피부에 와 닿았지. 그 촉감이 문득 소름끼치게 다가오더군. 이유는 모르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소.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과 두려움이 몰려왔소. 나는 비명을 왁 하고 지르며 별채 밖을 뛰쳐나왔다오.
그리고 얼마 안가 신지 도련님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단 말만 남에게 전해 들었소.
* * * * *
“그 뒤로 마쓰다 저택 근처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소. 듣기로는 전쟁 통에 불이 나서 사라져 버렸더군. 나는 6.25 전쟁이 일어날 무렵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민 길에 올랐다오. 그렇게 미국에서 한 10년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집사람을 만났소. 장인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대릴 사위가 되어 그 분의 뒤를 이었소. 덕분에 지금까지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었지.”
긴 이야기를 끝낸 민욱은 쎅쎅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이가 나이인 지라 길게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매월이란 그 그림이 화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말씀이죠?”
묵묵히 듣고 있던 철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민욱은 잠시 말하기를 주저했다. 자신이 말을 하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물론 믿기진 않겠지. 하지만 난 똑똑히 봤소.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선하오.”
민욱은 이야기를 끝내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허무한 이야기뿐이라 미안하게 됐소.”
그러자 세라와 현아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였어요.”
“맞아요. 정말 신기한 기담이었는걸요.”
거기까지 들은 민욱이 대뜸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들 어떤 것 같소?”
그러면서 그는 일대에 앉아 있는 사람은 물론,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장까지 빙 둘러 봤다.
“내 이야기 말이요.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죽기 전에 내뱉은 거짓부렁 같소? 아니면 참으로 있었던 추억 같소?”
식탁에 앉아 있는 모두는 서로를 바라 볼 뿐,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사장이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림이나 조각상에 사랑을 줬더니 살아 움직였다는 이여기는 전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여신의 축복을 받아 조각상이 생명을 얻었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처럼 말이죠.”
거기까지 들은 동우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사장님은 정말 매월이가 살아 움직이기라도 했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자신을 만나기 위해 멀리서 온 남자의 사랑에 감복해 생명을 얻어 병풍에서 걸어 나왔을지도요.”
그러면서 사장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무게감 있는 어조로 덧붙였다.
“무엇보다 기담은 기담일 때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남의 이야기에 어쭙잖게 현실을 들이밀면서 지적하는 건 무례입니다. 그러니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고맙소.”
민욱은 사장의 말을 듣고서는 뜻 모를 감사 인사만 나지막이 건넸다.
“살면서 이런 말을 누구에게 말해본적은 얼마 없소이다. 이런 말을 해봤자 내가 잘못 본 게 분명하다고 타박할게 분명 할 테니 말이오.”
그러면서 그는 창 밖 너머 하늘에 맥없이 눈을 맞췄다. 눈이 몰아치는 하늘은 그저 하얗게 표백되어 위아래 구분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이상하게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고운 얼굴이 잊혀 지지 않더군. 오히려 늙어갈 수록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오. 매월이는 단장을 마치고 꽃나무 아래 다소곳이 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매일 생각하고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아.”
민욱의 얼굴은 회한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에 젖어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매월이를 찾기 위해 온갖 곳을 누볐소.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보고 싶었다오. 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소. 그러다 아까 말했듯이 비슷한 병풍이 한국에 들어 왔다고 해서 찾아가던 참이었지.”
그러자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광열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막상 갔는데, 찾던 그림이 아니면 어쩌시려고?”
“그러면 또 찾아야지. 세상을 전부 뒤져서라도 죽기 전에 매월이를 다시 보고 말거요.”
민욱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엿보였다. 이어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가볍게 중얼거렸다.
“실로 요망한 그림이지. 사내 둘의 마음을 이리도 홀리다니.”
그의 말 한 자락은 식어가는 스프와 함께 레스토랑 안을 옅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