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샐러드(Salad)_내 안의 우주가 보내는 진동 (2)
처음에는 상상 속의 인간들이 좋았어요.
재밌잖아요.
제가 만든 우주에 사는 인간이라니.
잠이 오지 않아 침대 맡에서 얼떨결에 만든 우주긴 하지만, 일단은 제가 만든 우주를 봐줘서 고마웠죠.
그 이후로 매일 밤 과연 제 머릿속의 우주가 어떻게 변할지 항상 상상하면서 잠들었어요. 별의 위치나, 은하의 흐름, 그리고 녹색별에 사는 인간들이 문명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공상했죠.
어려울 것도 없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지면, 제 상상력이 거기에 맞춰서 변한 모습을 보여줬죠.
거창한 건 없어요. 가령, ‘과연 내 상상 속의 인간들은 백 년이 지나면 뭘 하고 있을까?’라고 상상하면, 자연스럽게 건물을 높이 짓고,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거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상상 속 우주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고 아까 말했죠?
제 상상 속의 인간들이 엄청난 속도로 과학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거예요. 우주 곳곳에 식민 행성도 두고 있고, 불로장생의 비법도 만들어냈죠. 신체 개조까지 해서 산소나 물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됐어요. 제가 상상해서 만든 인간들이긴 하지만,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아무튼 이렇게 끝도 없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다보니 많이 심심했나 봐요.
이미 이룩할 것은 다 이룩해버렸거든요.
그러다 인간들이 어느 날, ‘우주의 끝에 가겠다!’라고 나서지 뭐에요? 그리고 순식간에 우주선을 만들더니 우주 저 끝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벌서 며칠 전 일이에요.
문제는 이것들이 벌써 우주 끝에 도착했다는 거예요.
맞아요. 상상 속 우주를 품고 있는 뇌의 끝부분에요. 자신을 가둔 우주의 한계를 알고 싶은 건지, 제 머리 안 쪽을 쪼아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따끔따끔 한 정도였는데, 지금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커지고 있어요.
보세요, 방금 제 머리가 덜그덕 흔들렸죠?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내 뇌에 어떻게든 구멍을 내보려고 온갖 무기와 폭탄을 퍼붓고 있거든요. 충격이 커지고 있는 걸 봐서는 이제 제 뇌도 상상 속의 인간들을 가두는 데 한계가 온 모양이에요.
솔직히 내 뇌가 구멍 나는 건 무섭지 않아요. 상상 속에서만 보던 인간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요. 다만 걱정되는 건 따로 있어요.
자신들이 고작 제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존재라고 하면 충격을 받진 않을까요?
자신을 만들어낸 신이 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진 않을까요?
제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실망하면 어쩌죠?
역시 서로 어색해지기 전에 그냥 우주를 통째로 멸망시켜버리는 게 좋을까 싶기도 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 *
“멸망시킨다면, 어떻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광열이 물었다.
그러자 세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그야 상상해서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별 거 없어요. 그냥 ‘이 우주가 멸망한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면 그만이죠.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우주는 멸망할 테니까요. 상상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세라의 머리가 달칵, 하고 움직였다. 그리 큰 진동은 아니었지만, 확연히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다.
“음, 확실히 머리가 움직이는 게 보이네요.”
철헌이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세라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죠? 이러다가 곧 뚫리겠어요.”
현아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멸망시키기에는 조금 불쌍하네요. 어찌 됐든……상상 속에서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세라도 그 말에 맞장구쳤다.
“사실 저도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며칠 동안 쭉 상상 속에서 함께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애착도 생겼고요.”
그녀는 푸념하며 남은 샐러드를 아삭거리며 씹었다. 그 때문인지, 머리의 흔들림도 조금씩 격해져갔다. 그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민욱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저 위에 계신 신이라는 작자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놔두고 계실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그런지,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곤 해요.”
이 말과 함께 세라는 힐끔 창 밖 너머를 바라봤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탓에 하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너머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짐작될 뿐.
그녀는 그저 하얗고 하얀 공백의 공간 저 너머에 눈을 마주친 채 가볍게 웃어 보였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도 누군가의 침대 맡 실없는 상상은 아닐까,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