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셔벗_뚱보에게 바치는 수식 (2)

by 심해해삼

12. 셔벗(Sherbet)_뚱보에게 바치는 수식 (2)





앞서 말했지만, 목성의 궤도에는 결함이 있었어요,


저도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비몽사몽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수밖에요. 능통한 기술자들은 갑자기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대강 훑어보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구나’라고 예측하잖아요. 저도 이와 비슷했어요. 하염없이 목성을 보다가 그 움직임에서 문제를 직감적으로 알아 낸 거예요.


목성은 위성이 아주 많아요.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다 합치면 70개가 넘어요. 이 위성들은 각자 목성을 빙빙 돌고 있어요. 그런데 목성의 이상 현상과 위성들의 공전 궤도가 미묘하게 겹쳤어요.


전 여기에 뭔가 있다고 직감해서 계산에 들어갔죠. 몇 날 며칠 고심해서 궤도를 관측하고 계산한 결과, 위성들의 공전 궤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그리고 그 영향이 목성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게 이번 이상 현상의 원인이라는 건 확실했죠.


비유하자면, 목성은 무거운 짐을 잔뜩 든 채로 휘청거리는 뚱보와 같은 상태였던 겁니다.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짐의 무게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위태로운데, 자기 몸도 무거우니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고만 있는 거죠.


처음에 이 발견을 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기뻤어요. 그 누구도 아닌 제가 우주의 비밀 하나를 풀었잖아요. 신나게 이와 관련해서 논문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만약 저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요.


이번에도 의문은 불현듯 찾아왔어요. 꼭 거대하고 절대적인 무언가가 제 귓가에 속삭인 것 같았죠. 곧 이 생각을 가진 채 의문에 빠졌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했어요. 꼭 하나의 기계처럼 온갖 수치를 머릿속으로 조작하길 반복했죠.


그러다 답을 찾았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간단했어요. 특정 질량을 가진 위성이 어떤 위치에 있기만 했으면 됐거든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짐을 하나 더 얹어서 균형을 다시 맞춰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계산에 불과했습니다. 아닌 말로 제가 무슨 수로 위성을 그 자리에 얹어두겠어요? 저는 거대한 목성에 비교하면, 그냥 거인의 팔에 달라붙은 먼지 조각밖에 되지 않는 걸요. 이건 말 그대로 저도 이해 못 할 이상한 집착이 낳은 결과에 지나치지 않았죠.


그렇게 계산이 끝난 후에, 저도 모르게 만족감이 들더군요. 그리고 쌓인 피로감 때문에 푹 쓰러져서 꼬박 한나절 동안 잠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일어나 보니, 제 연구 자료가 몽땅 사라져 있더군요. 깜짝 놀라 다른 연구원들을 닦달했어요. 혹시 그들이 뭣도 모르고 제 연구 자료를 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요.


하지만 연구원들은 그 누구도 제 연구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했어요. 혹시 몰라 CCTV까지 돌려 봤지만, 제 연구실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청소부조차 들어오지 않았어요.


이때 저는 저를 시기하는 어떤 학자가 노련한 도둑을 고용해서 제 연구 자료를 훔친 게 아닐지 추측 했어요. 한동안 학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도둑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죠.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제 연구 자료는 찾을 수 없었어요. 말 그대로 그냥 휙 하고 증발해버린 거예요,


그러다 며칠 뒤, 목성에서 새로운 위성이 발견 됐다는 뉴스를 접했답니다.


다른 연구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워했죠.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새롭게 나타난 그 위성은 제가 구상했던 위성과 모든 것이 똑같았거든요.


크기, 질량, 위치, 중력……모두 다요!


제가 구상했던 수치와 모든 부분이 일치했어요. 꼭 맞춤 제작이라도 해서 정확한 위치에 올려놓은 것 같았죠. 더 믿기 힘든 건, 이 새 위성이 발견된 이후로 목성의 이상 현상은 사라졌다는 겁니다. 또 이것 때문에 한동안 학계가 떠들썩했죠.


혹시 신을 믿으시나요?


종교 권유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개인 생각을 여쭙는 거예요.


전 과학자입니다. 종교는 없고, 신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없어요.


그래요. 모든 것은 우연이죠. 우리 지구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전부 갖춘 것도, 그리고 목성이 알맞은 자리에 위치해 지구를 위협할 소행성을 붙잡아 주는 것도, 그리고 지구에 있는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해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계산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도 전부 우연이에요. 여기에 다른 의견을 달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해요. 이 우주가, 빅뱅이라는 거대한 폭발이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대체 그 ‘우연’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복잡한 계산을 대신하기 위해 컴퓨터를 발명했듯이, 어쩌면 이 우주의 법칙을 조정하는 그 ‘우연’이라 불리는 존재도 자기를 대신해 생각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우리를 만든 게 아닐까요? 저를 압도했던 호기심이나, 일련의 계산 과정 역시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는 아닐까요?


사라진 제 연구 자료는 아직도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제 와서 찾을 생각은 없어요. 새롭게 발견된 목성의 위성도 제 위치에서 잘 돌고 있죠. 그래도 저는 매일 같이 목성을 관측하고, 또 관측하고 있어요.

만약에 이번에도 또 문제가 생기면, ‘우연히’ 그 문제를 해결할 호기심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 말이죠.




* * * * *



현아는 여기까지 말하고서 셔벗용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접시는 먹다 만 셔벗이 실내의 온기에 바스락거리며 녹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끝?”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광열은 다소 허망하다는 투로 물었다.

그 말에 현아는 가볍게 긍정을 표했다.


“네, 끝이에요.”


이렇다 할 추가 구성 하나 없는 간소한 대답이었다.

나름 우주라는 거대한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 만큼, 색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현아는 푸념조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뭐야, 허무하잖아요.”

“원래 우주의 이야기란 그래요. 광활하지만, 그만큼 공허하죠.”


현아가 단호함 서린 어조로 일렀다.

그 말을 들은 철헌은 어련히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담이에요. 뭔가……우리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가 말꼬리를 흐리자, 잠자코 경청하고 있던 사장도 맞장구를 쳤다.


“저도 썩 괜찮은 기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웨이터에게 눈치를 줬다.

웨이터는 즉시 군더더기 없는 손짓으로 셔벗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사장이 감탄조로 말을 이었다.


“광활한 우주와 뚱뚱한 행성, 그리고 우연히 떠오른 수식까지. 결말 부분까지 뚜렷하지 않아 여운이 많이 남아요. 때로는 길고 복잡한 기담 대신, 이런 깔끔한 짧은 이야기가 더 깊이가 있는 법이죠.”


진심어린 품평에 현아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박한 평가가 신경이 쓰이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곧 천장 위를 힐끗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위에 있는 우주라는 세계는 정말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넓어요. 거기서 일어나는 일의 규모나 시간은 감히 인간이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많죠. 아마 지금도 우리가 생각하는 기담 그 이상의 일들이 우주에서는 수시로 일어나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자부심 섞인 미소가 가득했다.


“제가 우주에 빠져 천문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랍니다.”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11화11. 셔벗_뚱보에게 바치는 수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