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이라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 방학과 휴가가 시작되었다. 겨울 방학이 길어진 관계로 여름 방학은 짧아졌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달디달지 않을까.
나도 곧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허니님께서 '꽃으로 말해줘'라는 작품을 소개해 주셔서 이번 휴가 때 읽을 책 중 하나로 결정했다. 휴가를 앞두고 푸른 파도를 보며 읽을 책을 정하는 루틴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나는 비록 나이가 들어 읽었지만, 이 책을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후회하는 책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난 학력고사 세대이다. 수능에 익숙한 요즘, 학력고사라는 말 자체가 응답하라 1988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릴 테다. 학력고사는 사지선다형 문제로 된 평가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공부 방법으로는 암기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무는지, 학생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책상에 앉자 있는지에 사활을 걸던 시대였다. 그러니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책을 읽는다는 건 경을 칠 일이었다. 논어를 읽던, 플라톤을 읽던 상관이 없었다. 책은 참고서와 문제집 푸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이러한 교육 방식에 큰 저항(?) 없이 적응을 했고, 그 덕분인지 결과물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학력고사를 본 다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학교 도서관이었다. 그 넓은 도서관에 책이 가득한데, 그 책을 공짜로 빌려 볼 수 있다는 건 동네 도서관이 거의 없던 시절에 대학생만의 특혜로 느껴졌다.
내가 데미안을 읽은 건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군대를 26개월 꽉꽉 채워서 갔다 온 다음이었다. 되돌아보면 여전히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기존의 가치관 속에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지만, 곧 새로운 현실과 고통을 맛본다. 그 과정 속에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은 혼란이 되고, 가치관의 혼란은 주인공을 고민하게 하고 방황하게 한다.
그런데 나는 싱클레어처럼 혼란을 겪지도 고민을 하지도 방황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때 나는 그저 정해진 질서에 적응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평생을 혼란과 방황을 피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을 볼 때 그때의 나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적응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10년 전, 의대를 가고자 하는 중학교 3학년 아이와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학교 성적도 좋았고, 똑똑했다. 그래서 가족들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정말 여린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동물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피가 약간 나오는 장면을 볼 때도 책상 밑에 숨는 아이였다. 주로 실험을 하는 과학 학원을 다니면서도 곤혹스러워하던 아이였다. 이 아이가 정말 의대에 가면 행복할까 하는 걱정이 됐다.
중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진로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앞서 데미안을 천천히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내 인생이 시인으로, 관인으로, 혹은 범죄자로 끝장 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으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