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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ul 23. 2024

할머니 지갑이 텅 빈 이유

아이들의 글쓰기, 표현력이 중요하다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먼저 사람의 기억력이란 게 한계가 있으니 기억해야 할 것들을 오랫동안 남겨두려면 기록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목적에는 기록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에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 바로 소통과 공감이다. 글은 쓰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하는 셈이다. 그런데 말을 할 때 생각 없이 말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보시라. 엉뚱한 말을 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이 없는 글은 생각이 없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소리냐 문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글을 쓰고자 한다면 먼저 깊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정리했다면 이제 문자로 표현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 글을 보며 항상 하는 잔소리가 있다.

"표현력" 


표현력이 좋은 글은 읽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온다. 그러니 글쓴이의 생각에 호감을 느낄 확률이 높다. 하물며 자기소개서에도 표현력을 잘 발현하여 자신을 어필하면 일단 면접관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대할 것이다. 그런데 뻔한 내용과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자기소개서는 읽고 싶지도 않을 거다. 그러면 운이 좋아 면접까지 왔다고 해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는 없다. 

    

아이들이 글을 쓸 때, 표현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우선이다.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다음 자신만의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의 맛있다는 느낌이 다 같을 수 있겠는가? 나한테 맛있다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연습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글을 볼 때, 그저 깔끔하게 쓴 문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감 없는 솔직한 표현인지, 생각이 반영되었는지가 우선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행이다.     


거미 아난시라는 그림책에는 아난시의 아들들이 등장하는데, 이름이 재미있다, 방석이는 몸이 푹신푹신하여 방석이고, 강물 다 마셔란 이름의 아들도 있다. 각자의 장점을 이름에 반영한 재미있는 표현이다.     


4학년 아이들에게 거미 아난시를 읽어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거미 아난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우리 가족의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름을 정해 보는 건 어떤지 제안했다. 그냥 소개할 사람 앞에 수식어를 붙여도 좋다고 했다. 

     

한참 고민하던 아이들의 입에서 가족들의 특징이 나오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표현들도 많았는데, 한 아이는 할머니를 소개하면서,     


'모든지 사, 지갑 텅텅 휴~ 할머니'라고 했다. 아이에게 할머니의 소개를 부탁했다.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겠지만, 손녀가 얼마나 예쁠까? 그래서 할머니는 손녀를 보면 옷을 많이 사주신단다. 그래서 좋은 게 보이면 다 사주시고, 지갑이 텅텅 비면 "후우~."하고 한숨을 쉬신다고 한다.     


짧은 문장 안에 아이가 말하고 싶은 할머니의 특징, 그리고 손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누가 흉내 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아이의 설명을 듣기 전에 "모든지 사, 지갑 텅텅 휴~ 할머니"란 표현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즐겁게 쇼핑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읽는 이가 충분히 상상하며 상황을 알게 한다. 그리고 할머니와 손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호감지수가 높아진다.     


아이들의 글을 잘못 지도하면 아이는 과장된 표현을 할 때, 글을 잘 쓴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를 쓸 때 주의해야 한다. 실제 아이가 주변 어른들에게 과장된 표현이 들어간 글을 보여주고 칭찬을 들어, 그런 글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른들이 조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나와 주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억지 표현을 하게끔 해서는 안 된다.     


얼핏 생각해 보니 아이의 할머니와 나의 엄마는 비슷한 나이일 것 같았다. 어머님께서 이제 여든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의 할머니와 나의 엄마의 모습이 닮아 이 표현이 더 나를 웃게 만들었던 것 같다. 좋은 표현력의 문장 한 구절이 다양한 역할을 한다.     


나도 함께 아이들과 가족 소개를 해보았는데, 난 내 어머니를 "지치지 않는 건전지 엄마"라고 소개했다. 여든의 나이에도 나의 어머니는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하루에 4~5시간씩 탁구를 친다. 그리고 각종 동호회 활동도 하신다. 

엄마를 롤모델 삼아 탁구를 시작했을 때, 엄마는 내가 쓸 탁구 용품을 손수 사 오셨다.


모든지 사 지갑 텅텅 엄마다. 오래전 아빠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엄마가 내 옆에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모든지 사고 싶은 것은 사시고 지갑이 텅 비어 "휴우"하고 한숨을 쉬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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