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민호 Jul 26. 2024

여름방학에 데미안을 읽어보세요

중고등학생이라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 방학과 휴가가 시작되었다. 겨울 방학이 길어진 관계로 여름 방학은 짧아졌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달디달지 않을까.


나도 곧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허니님께서 '꽃으로 말해줘'라는 작품을 소개해 주셔서 이번 휴가 때 읽을 책 중 하나로 결정했다. 휴가를 앞두고 푸른 파도를 보며 읽을 책을 정하는 루틴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나는 비록 나이가 들어 읽었지만, 이 책을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후회하는 책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난 학력고사 세대이다. 수능에 익숙한 요즘, 학력고사라는 말 자체가 응답하라 1988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릴 테다. 학력고사는 사지선다형 문제로 된 평가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공부 방법으로는 암기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무는지, 학생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책상에 앉자 있는지에 사활을 걸던 시대였다. 그러니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책을 읽는다는 건 경을 칠 일이었다. 논어를 읽던, 플라톤을 읽던 상관이 없었다. 책은 참고서와 문제집 푸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이러한 교육 방식에 큰 저항(?) 없이 적응을 했고, 그 덕분인지 결과물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학력고사를 본 다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학교 도서관이었다. 그 넓은 도서관에 책이 가득한데, 그 책을 공짜로 빌려 볼 수 있다는 건 동네 도서관이 거의 없던 시절에 대학생만의 특혜로 느껴졌다.

내가 데미안을 읽은 건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군대를 26개월 꽉꽉 채워서 갔다 온 다음이었다. 되돌아보면 여전히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기존의 가치관 속에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지만, 곧 새로운 현실과 고통을 맛본다. 그 과정 속에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은 혼란이 되고, 가치관의 혼란은 주인공을 고민하게 하고 방황하게 한다.

그런데 나는 싱클레어처럼 혼란을 겪지도 고민을 하지도 방황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때 나는 그저 정해진 질서에 적응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평생을 혼란과 방황을 피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을 볼 때 그때의 나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적응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10년 전, 의대를 가고자 하는 중학교 3학년 아이와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학교 성적도 좋았고, 똑똑했다. 그래서 가족들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정말 여린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동물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피가 약간 나오는 장면을 볼 때도 책상 밑에 숨는 아이였다. 주로 실험을 하는 과학 학원을 다니면서도 곤혹스러워하던 아이였다. 이 아이가 정말 의대에 가면 행복할까 하는 걱정이 됐다.

중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진로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기 앞서 데미안을 천천히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내 인생이 시인으로, 관인으로, 혹은 범죄자로 끝장 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으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다......"    











이전 10화 할머니 지갑이 텅 빈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