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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ul 19. 2024

나이 50이 넘었는데 아빠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이상권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뵌 적이 없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나들이 가듯 자식들을 데리고 할머니 산소에 갔다. 할머니 산소는 시흥에 있다. 지금은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에 몇 대 안 되는 버스를 놓치면 10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 산소에 갈 때, 시간을 못 맞추어 버스를 놓쳤으면 하고 속으로 빌곤 했다. 날씨가 좋을 땐 시골길을 아빠, 엄마, 형과 걸아가는 게 재미있어 그랬던 것 같다.     


시골길에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호기심이 가는 풀이나 예쁜 식물을 볼 때면 아빠한테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아빠는 신기하게도 세상의 모든 식물과 동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길가에 풀을 뽑아 피리를 불기도 하고, 꽃 속에 있는 꿀을 쪼옥 빨아먹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도 이제 그때 아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내 눈에는 길가의 풀들은 그저 '온갖 잡초'일 뿐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종류와 상관없이 '온갖 잡새'일 뿐이다. 아빠와 달리 어려서부터 도시에서 자란 나는 나이가 먹으면 저절로 어린 시절 아빠처럼 유식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무식하다.   

 

 

생태 동화 작가로 유명한 이상권 선생님은 전원주택에 사시면서 들판의 동물들과 풀들에 애정 어린 글을 쓰시는 분이다. 인연이 있어 선생님 댁을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선생님 댁 마당은 정글 같았다. 그리고 가끔 풀 사이로 뱀들도 다닌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선생님은 인위적으로 꾸민 마당보다는 자연 상태 그대로가 좋아 그렇게 놔두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 마당에는 닭도 있었고, 토끼도 있었는데 녀석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은 우리 땅에 있는 들풀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히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아니다. 그 이상의 재미가 있다. 우리말로 된 들풀들의 이름의 숨은 뜻을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그래서 우리말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들풀과 들꽃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때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따뜻하다. 책을 읽고 나도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았다. '개망초'라는 이름에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고, 물 위에 떠다니는 개구리 밥이 올챙이들의 좋은 먹잇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사실 개구리 밥이 왜 개구리 밥인지는 정말 궁금했다. 내가 아는 개구리는 파리와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 데 말이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은 옛날 한 며느리가 밭일 중 너무 배가 아파 응가를 했는데 시 어머니께 마무리(?)를 하려고 콩잎을 따다 달랬는데, 고약한 시어머니가 이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풀을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착한 며느리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참고 마무리를 해야 했다는...... 그래서 이름이 며느리밑씻개이다.


진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며느리의 고달픔이 너무 고단해 내려오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들풀의 이름에도 사람 사는 아픔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니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들꽃 사전이지만 읽는 즐거움이 많은 책이다.     


이 글의 제목을 '아빠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라고 써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아빠의 모습이 떠 올랐다. 시골길을 걸으며 아빠가 들꽃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 추억이 떠 올랐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내 나이는 이제 50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다. 아마도 생전 자식들에게 다정하고 친구 같은 그런 아버지여서가 아닐까. 그래서 난 '아빠'라는 호칭이 좋다.  

건강했던 아빠의 모습이 그립다. 이젠 영원히 아들에게 들풀과 들꽃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 함께 들길을 걷던 아빠의 모습은 생생하다. 다시 한번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책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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