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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ul 16. 2024

슴슴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

권정생의 훨훨 간다 그리고 님아 그 강물을 건너지 마오

벌써 10년 전이다. 독립 영화 한 편이 예상을 깨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인기 있는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고,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은 영화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나도 극장에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는 강원도 횡성의 작은 마을에서 76년을 해로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았으면 뭐 그리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데 할아버지는 소년처럼 짓궂은 장난을 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난을 웃으며 받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또 할머니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새로운 장난을 친다. 


영화를 보며 할아버지가 눈에 안 보일 때, 아플 때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난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남은 할머님의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까.......


이 영화가 생각나는 책 한 권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리란 생각이 든다. 권정생 선생님의 훨훨 간다 이다. 사실 훨훨 간다는 재미난 해학이 담긴 옛이야기 같은 그림책이다. 책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재미난 이야기 한 자리를 얻기 위해 할머니가 준 무명 한 필을 가지고 군말 없이 시장에 나간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를 얻은 할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이좋은 노부부를 보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올랐다. 다소 엉뚱한 나만의 생각일 테지만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도 훨훨 간다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림책을 보면서도 애잔함이 느껴진다. 이야기만큼이나 그림이 주는 정감도 좋은 그림책이다.


자극적인 이야기와 콘텐츠로 넘쳐나는 세상에 되었다. 아이들이 뉴스와 신물을 볼까 걱정해야 하는 시대이다. 심지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도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뿐이랴? 아이들은 마라탕을 먹고 디저트로 탕후루를 먹으며 생크림으로 가득한 음료수를 들고 다닌다.


자극적인 맛에 내 혀가 너무 길들여져 버리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자극적인 맛에 길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너무 어렸을 때에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다면 슴슴한 평양냉면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슴슴한 맛은 자극적인 맛은 결코 가져다주지 못하는 은은한 기쁨을 준다. 아이들이 자라서 가끔은 자극적인 맛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지만, 때로는 슴슴한 맛이 주는 감동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너무 일찍 자극적인 이야기와 어른들의 세상에 익숙해지면, 슴슴한 이야기의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 이왕이면 다양한 맛과 다양한 이야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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