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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ul 05. 2024

나는 기다립니다. 나도 기다립니다.

같은 작가의 그림책이라고?

지난 글에서 정말 웃긴 그림책으로 다비드 칼리의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을 소개했다. 이번에도 다비드 칼리의 다른 책 한 권을 소개하려 하는데, 두 책을 함께 읽어보면 '같은 작가가 쓴 책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 기억에는 우리나라에서 다비드 칼리의 책이 유명해진 건 지금 소개하는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책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예쁜 빨간색 털실을 따라 한 사람의 일생이 펼쳐지는데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만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과 닮은 책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기다릴까? 지금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기다리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불행한 걸까? 행복한 걸까?     


어렸을 적 퇴근이 늦은 아빠를 기다렸을 때가 있었다. 아빠가 늦게 퇴근할 때면 아빠의 손에는 누런 종이 봉지에 담긴 닭튀김이 있거나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물론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학력고사를 치르고 발표를 할 무렵 전화를 통해 합격 여부를 확인했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몇 초는 정말 길었다. 살면서 즐겁고 스릴 넘치는 기다림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마면 다 공감할 이야기다. 군대 갈 날을 받아놓고 제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시간이 흘러가지를 않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헛된 기다림은 현실이 되고 다시 26개월이 빛에 속도로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지금 난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봄을 기다린다. 어렸을 때에는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봄이 기다려진다. 빨리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차 한잔 같은 공기를 마시며 꽃향기를 맡고 싶다.  

        

3학년 아이들과 나는 기다립니다를 읽고 무엇을 기다렸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책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소망에 대해 표현을 한다. 그리고 나도 많은 것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공감한다.     


그 이후 아이들 눈에 다비드 칼리의 나는 기다립니다는 다른 책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른들은 마음에 묵직한 울림이 있지만, 아이들은 처음에는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마음이나, 손자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마음.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적고 나면 책에 대한 공감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좋은 책 책 한 권이 마음에 다가오게 된다. 독후 활동을 독서를 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한다는 개념을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활동이 책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어른의 머릿속에 있는 틀을 먼저 깨야 한다. 책에 대한 공감이 우선이다.     


한 아이는 한 살 아기가 되어 생각해 본다.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나를 더 봐주었으면 하고 기다렸을 거라고 말한다. 발레를 좋아하는 아이는 발레 콩쿠르에 나가 멋진 무용을 선보이길 기다린다. 한 아이는 나는 기다립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좋기를 이라고 썼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새 학년에 만날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 일지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한다고 반달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도 초등학교 때 그랬던 기억이 났다.     


또 다른 아이는 키가 크기를 기다린다는데, 키가 크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 작은 그림에 그대로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책의 끝에는 이 끈은 비극의 끈일까, 행운의 끈일까? 하는 문장으로 2편을 기다리게 하는 센스도 보여주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간절히 여름휴가를 기다린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여름휴가를 기다리며 습한 제주의 공기와 푸른 바다 앞에서 편한 의자를 펴놓고 시원한 맥주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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