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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an 29. 2024

책은 책장에 꽂아 놓는 것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방법

오늘은 라떼로 글을 시작해 보아야겠다.

"라떼는 요즘처럼 동네마다 시설 좋은 도서관도 없었고, 어린이에게 책을 사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학교에 있는 도서관 또한 책을 빌려주거나 책을 읽는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서실의 기능에 가까웠다. 그저 자율 학습을 하는 공간이었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학생은 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요즘은 동네 도서관에서 신간들도 어렵지 않게 대출해 책을 볼 수 있으니 참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책을 너무 좋아하셨던, 그래서 방학 기간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책을 읽곤 하셨다. 심지어 굳이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도 읽을 책을 들고 학교에 가곤 하셨다.


덕분에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어도 책장에 책이 차고도 넘치는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책장의 책이 넘쳐날수록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어머님 또한 예전에도 지금도 독서광이시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밤을 세워 책을 읽으시고, 수시로 내 책을 빌려가기도 하신다. 얼마 전에는 재미있는 책을 달라하시길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빌려드렸다. 일주일이 지나, 어머니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에코의 다른 소설은 없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어머님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는 이렇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 아버지는 박봉으로 가정을 꾸려야 하셨고, 자식으로서 장남의 노릇도 하셔야 했다. 그러다 보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이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포장 이사를 하니 이사를 한다고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 시대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중간한 거리는 온 가족이 손수레로 짐을 날라 이사를 하던 시절이니, 이사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손수레에 그 무거운 책을 박스에 담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책장에 가득한 책들을 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잦은 이사 중에 눈물을 머금고 버린 책들도 있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책이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이었다. 10권이 조금 넘는 두껍고 누런 종이로 되어 있는 그 책은 아버지가 방학 때마다 골똘히 읽던 책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연려실기술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만약 지금도 내가 아버지가 읽던 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번은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학생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 한 권의 책으로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급적이면 책을 사서 자기 책으로 책을 읽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특히 난이도가 높은 책이나 독서의 과정에서 많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는 경우, 책을 충분히 깊이 있게 읽지 안을 때가 잦다.


좋은 책은 책장에 꽂아두어야 한다. 좋은 책은 한 번 읽었다고 해서, 폐지가 되는 게 아니다. 한 번 읽을 때보다 두 번 읽을 때 더 울림이 크기도 하고,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던 책도 어느 순간 큰 느낌으로 내게 다가올 때도 있다.


좋은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지금 당장은 읽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책을 읽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아이가 좋은 책에 지속적을 관심을 두기를 원한다면 책장에 좋은 책을 꽂아두어야 한다. 


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중에 책을 읽고 의문이 생기면, 혹은 이해가 잘 안 되면 수시로 카톡을 주는 아이가 있다. 얼마 전까지는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제는 어린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청소년 기의 학생들에게 어린 왕자를 20대에도 한 번 읽어 보고, 30대에도 읽어 보고, 훨씬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 또한 청소년 때 읽었던 어린 왕자보다 지금 읽는 어린 왕자의 울림이 더 크다.


어린 왕자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여,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곧 아이의 답변이 왔다.


"어른이 되었을 때... 너무 후회하면서 공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난 한 번도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어린 왕자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의 답변을 듣고 보니 이 친구와 같은 생각을 하며 어린 왕자를 읽었으면 나에게 더 선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의 스승인줄 알았는데, 어제만큼은 아이가 나의 스승이었다.


만약 이 친구의 책장에 어린 왕자가 없었다면 아이와 지금과 같은 대화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미 읽은 어린 왕자를 성년이 되어 다시 읽을 시도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여가 활동이다. 


하지만 쉽게 비용을 치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환경이 때로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책은 일회용 소비재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책은 일회용품이 아니다, 특히 유년기 어린이, 청소년에게 좋은 책 한 권은 좋은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좋은 친구는 아이의 곁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님이라면, 좋은 책을 책장에 꽂아주세요. 그리고 그대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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