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엄마의 비타민이자 아빠의 희망

맏이인 나의 책임감

by 김무인


여러분은 부모님께 어떤 존재이신가요? 저의 존재는 제목 그대로 엄마의 비타민이자 아빠의 희망입니다. 발랄하지만 무거운, 그렇지만 또 긍정적인 오묘한 직책이죠.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린 시절부터 제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관계라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동생을 챙기란 책임감과 맏이니 뭐든 잘해야 동생들이 잘 된다는 책임감은 어린 '나'에게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집에서 먼 곳에 갔습니다.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데 부모님은 표현할 방법을 모르셨을 뿐, 제게 사랑의 신호를 꾸준히 보내고 계셨습니다.


엄마의 비타민이란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친구분을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비타민 왔네"라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저를 보러 서울에 갔다 오면 얼굴이 좋아져 있다고 합니다. 물론 들뜬 엄마의 얼굴을 보면 서울에 놀러 온다는 기분과 일상에서의 해방감에 기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봐서 좋아한다니. 아, 물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순 있지만 경상도 맏이로서 아쉽게도 그렇게 까지 생각이 닿지는 못했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사랑한 만큼 제 날것을 보여주게 되고, 자주 바늘을 엄마의 가슴에 꽂습니다. 잘 지내다가도 차갑게 숨어버리는 자식이라 미안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자신의 현실에 너무 좌절한 나머지 주변을 보지도 못하고 저만 보기에 편협한 시각 속에 빠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히게 되나 봅니다. 가장 힘든 순간 가장 가까이 나를 봐주고 걱정해 준 것이 엄마인데, 그걸 깨닫기가 오래 걸렸을까요.



아빠는 제가 어릴 때부터 맏이인 너는 희망 둘째는 자신감 셋째는 젊음 이란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3형제인 저희는 아빠에게 각자 사랑받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는 것을 20대 후반이 되어서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이란 것을 몰라. 책임감에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부끄러워 희망이라는 또 다른 사랑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요.


아빠와의 사이는 생사 확인을 엄마와 하는 정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배달을 시킬 일이 있어 아빠께 부탁드렸는데, 배달 외에 먹고 싶은 음료수도 보낼 테니 말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말한 음료를 40개나 받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빠한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투덜거린 못난 맏이입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40개는 먹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다 시간이 흐르고 이만큼 나를 사랑해서 좋아하는 음료수 먹으며 잘 지내란 의미를 깨닫습니다.



왜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늦는 걸까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부모님의 사랑은 일 년 내내 떨어지지 않는 명란젓과 냉장고 한 칸을 다 차지하는 40개의 음료수입니다. 그리고 제게 비타민과 희망이라는 사랑의 이름을 붙여주셨죠. 무겁지만 충분한 사랑을 받는 이름입니다. 그걸 알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보다 더 그들의 첫 자식인 맏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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