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가 탈 없이 자라는 모양. 순우리말 ‘도담도담’의 뜻이다. 결혼한 후 이 단어를 우연히 알게 됐다. 그때만 해도 7년간 내 일상에 이 말이 자리 잡을지 상상도 못 했다. 그냥 단어의 어감이 좋았고, 아이와 관련된 말이라는 게 신선했을 뿐이다. 그러다 신혼집에서 5시간 거리의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됐다.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은 OO 역이다. 처음 OO 역에 내렸는데 개찰구 정면에 ‘도담도담 장난감월드’라는 큰 간판이 보였다. 이름처럼 어린이 장난감을 대여해 주는 곳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곧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아기를 키우려다 보니 모르는 것이 많아 당황했다. 신생아의 발달 전반을 혼자 처리해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다들 육아용품에 목을 매는구나 이해가 됐다. 4개월짜리 아이도 세워 놓을 수 있는 ‘쏘서’, 6개월부터 태울 수 있는 ‘점퍼루’ 등 이름부터 생소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육아용품을 시기별로 다 사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카시트나 유아차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은 나도 기쁘게 장만했지만, 어디까지가 필수품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부모 대부분은 중고로 되팔 것을 염두에 두고 새것을 구매했을 것이다. 당근마켓에 가입도 되어 있지 않은 나는 가장 먼저 ‘도담도담 장난감월드’(이하 도담도담)을 떠올렸다. 알고 보니 도담도담은 전국(각 지역)에 있는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장난감대여 서비스 이름이었다. 처음 도담도담 OO 점에 방문했을 때 범보 의자가 갖춰져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5개월쯤 된 아이는 혼자 앉을 수 있을 만한 허릿심이 없었다. 보조도구로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심지어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아이를 범보 의자에 앉혀 놓고 차례를 올릴 수 있어서 절묘했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구매한 식탁 의자에 앉히기 전까지 두 달 정도 짧게 범보 의자를 대여했다. 만족도는 어마어마했다. 2주 간격으로 물품을 반납하고 다시 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오히려 색상별 종류별 다양하게 경험하는 재미까지 있었다. 그때부터 도담도담은 내 절친이 되었다.
아기 체육관, 러닝 홈, 에듀테이블, 보행기, 붕붕 카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 번거로울 정도로 도담도담에는 생소하고 다양한 완구들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도담도담에 부지런히 다녔다.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오늘 대여할 것 말고,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부피가 꽤 큰 트램펄린(일명 방방이)를 봤을 때는 가슴이 뛸 정도였다. 연회비 고작 1만 원으로 이 많은 제품을 이용해 볼 수 있다니…….
몇 개월 대여해 보고 나니 이용자들의 패턴이 보였다. 이 도시에 거주하거나 직장이 있으면 누구나 도담도담을 이용할 수 있다. 직장인 부모들이 주로 금요일에 완구를 반납했다고 하면, 토요일에 일찍 방문만 한다면 인기 있는 제품을 내가 낚아채 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느덧 나는 토요일 오전 10시 오픈런(run)을 노리는 이용자가 되어 있었다.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토요일 아침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아이의 발달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오픈 시간에 맞춰 방한용품까지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 지금 가야 ‘득템’할 수 있다고 나는 열을 올렸다. 그즈음 나는 한창 걸음마 보조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소리 나는 부분이 하나라도 고장 나 있지 않고, 아이가 지난번에 사용해 보지 않은 장난감이어야 했다. 그렇게 브이텍, 리틀타익스, 피셔프라이스 등 완구회사별 장단점까지 파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묘하게 흐뭇했고, 뿌듯했다. 영유아 발달 검사 때마다 또래보다 대근육 발달이 잘 이뤄져 있다는 결과를 보면 걸음마 보조기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아이가 만 3세가 되기 전까지 보육 기관에 보내지 말고 가정 보육을 해보자는 나의 다짐은 도담도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난감만 대여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주 한 번은 도담도담 OO 점 놀이실을 이용했다.(코로나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전이다.) 놀이실로 꾸며져 있는 방에서 1시간 이상 아이와 상호작용 할 수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일반 키즈카페처럼 주방놀이나 블록 쌓기 등을 할 수 있어서 내 기준엔 충분한 보육 환경이었다. 놀이실에서 만난 동네 친구와 놀이터에도 가고 문화센터도 같이 다녔다. 나처럼 적극적으로 도담도담을 활용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싶다. 하여간 내게 도담도담은 절실한 육아도우미였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앞뒀을 때였다. 도담도담에서 산타 초청행사를 마련해 주었다. 각 가정에서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준비해 오면 산타 할아버지 차림을 한 남자가 안아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산타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른이라 치면 오로라를 보는 것 정도의 영광스러움이 얼굴에 나타났다. 아이의 머릿속 첫 산타를 도담도담이 선사해 줬다고 생각하니 새삼 고마움이 느껴진다.
좀 더 자란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도담도담에 가는 걸 좋아했다. 크기가 큰 중장비차, 경찰차, 소방차 등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는 즐거움이 있었나 보다. 내가 새로 사 준 로봇이나 장난감도 아주 많은 데 젖먹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추억을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로서는 자주 대여해 간 (영어)동요 사운드북을 들으면서 인지능력까지 커가는 게 보여서 도담도담을 끊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글자도 다 모르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열창하곤 한다. 대견하다고 해야 하나, 웃기다고 해야 하나.
[1월 회비 만료] 재가입 대상자입니다. 필요 서류: 등본 최근 3개월
해가 바뀐 어느 날, 징~ 하고 문자메시지가 왔다. 나 재가입 대상자 아닌데? 도담도담에서 문자가 잘못 온 것이다. 담당자한테 전화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데 선생님 얼굴도 보고 싶고 외출할 때 한번 들려야겠다 마음먹었다. 며칠 후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이제 다시는 도담도담에 갈 일이 없다. 7살(12월)까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담도담 대여 서비스 덕분에, 도담도담이라는 단어 덕분에 아이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자란 것만 같다. 아이는 영유아 발달 검사(기간)도 진즉에 종료되었겠다, 올해도 과연 산타의 존재를 믿으려나? 지금까지 ‘도담도담’ 커 줘서 고맙다. 계속 그렇게 무탈하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