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ㅂ도서관에 갔을 때다. 2층 종합자료실에서 CD를 찾다가 사서가 있는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게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을 선사했던 천사가 거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ㅂ도서관은 먼 거리라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개설된 성인 프로그램에 관심이 생겨 오랜만에 이 도서관에 왔는데 웬 횡재인가 싶었다.
이 사서와의 인연은 ㄱ도서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때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어느 날. 그즈음 나는 학부모들의 고충(?)을 옆에서 지켜봤다. 학교 수업을 zoom으로 진행하니 어른들도 낯선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다자녀 부모라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한 대 더 장만하느냐 마느냐 등 소위 멘붕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아이가 미취학인 나는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장 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 상태였던 것. zoom 활용은 유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서관의 유아 대상 프로그램들도 비대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평소 도서관에서 기획하는 유아 수업을 즐겨 수강했기 때문에 나도 비대면 수업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 문제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렵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스마트폰의 QR 코드 사용도 버벅거리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ㄱ도서관에 갔을 때 내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였다. 내 아이가 수업 대상에 해당하는 나이라서 처음에는 반갑고 설렜다. 대개는 홈페이지로 신청하는데, 마침 방문신청이 가능해서 사서 데스크로 갔다. 서류에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도 적었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내가 zoom 수업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급기야는 담당 사서에게 “선생님, 사실 저 zoom 수업 처음이고 컴맹이라 접속 못 할 수도 있어요”라며 미리 결석을 예고해 버렸다.
그러자 예상 못 한 반응을 얻었다. 담당 사서는 한 가정이라도 더 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도해 보고 수업 입장이 안 되면 전화해도 된다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갑자기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생겨났고 담당 사서에 대한 신뢰가 치솟았다. 그 믿음을 안고 조심스레 수업 개강일을 기다렸다. 도서관이 폐쇄돼 건물을 출입하지도, 책을 대출하지도 못할 때 비하면 zoom 수업으로라도 강사를 만나는 게 어디냐. 비대면 강의의 개설 자체가 고맙기만 했다.
내가 신청한 비대면 강의는 지정된 책을 다 같이 읽고 독후활동을 하는 4회 차 프로그램이었다. 내 인생, 아이 인생 최초로 노트북 화면에 앉아 강사를 마주했다. 강사가 말하는 내용은 잘 들렸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강사는 학습자와의 소통을 유도했다. 음소거를 해제하고 발언할 것을 기다리는 눈치다.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아, 5세 OOO 어머니 목소리가 안 들리네요. 그럼 종이에 글씨를 써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이렇게 최초의 zoom 수업은 종이와 펜이 필수품이 된 채 마무리됐다.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던 담당 사서에게도 전화로 지시를 받아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무위로 끝났다. 안타까움을 가슴에 품고 zoom 창을 닫고야 말았다.
실망감에 우울해지려는 찰나, 담당 사서의 책임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학습자의 소리 송출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으니, 노트북을 가지고 ㄱ도서관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참스승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담당 사서가 공학박사라도 되는 양 시키는 대로 약속 시간을 잡고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와 나는 zoom 창을 켜고 나란히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사서는 본인의 폰으로 검색하면서 학습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방법을 시도했다. 폰으로 zoom을 열었다가 노트북으로 열었다가, 폰을 가지고 강의실 밖을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몇 번 시도하더니 이제 잘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가한 후 다음 수업을 기다렸다.
ㄱ도서관에서는 성공했는데 집에서는 여전히 내 목소리가 전송이 안 됐다. 다음 zoom 수업에는 기필코 목소리를 내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또 사서를 찾아 나섰다. 그때만 해도 메신저로 대답할 수 있는 기능을 몰랐다. 여차저차해서 마이크가 달린 이어폰도 사용해 보고, 아이와 나 두 사람 모두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도록 Y형 젠더(이어폰 분배기)도 구매해 봤다. 이쯤 되니 수업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해 준 사서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결국 이 수업에서는 음성을 들려주지 못했다. 노트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창고 구석에 있는 오래된 옛 노트북을 꺼내서도 시도해 봤다. 그런데 낡은 노트북은 영상이 켜지지 않았다. 지금 사용 중인 노트북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토로했더니 여러 사람을 거쳐 문제점을 파악해 왔다. 노트북에 내장된 마이크 자체가 훼손돼 있었던 거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USB로 연결할 수 있는 외장 마이크 하나를 샀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이것으로써 비대면 수업에 대한 장벽이 무너졌다. 유아 대상 수업이든, 성인 대상 수업이든 관심 있는 분야라면 자유자재로 수강 신청 버튼을 눌렀다. 유아 대상 제빵 수업을 들었을 때는 내 아이가 손으로 만드는 일에 한창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수업 하나를 수강했을 뿐인데 아이의 성격이나 기질을 더 잘 알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뻤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ㄱ도서관 사서에게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이 일의 교훈은 무엇일까. 어머니란 대단하다? 2년이 지난 후 ㅂ도서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그 사서를 우연히 만났다. 포기하지 않고 애면글면 애써준 사서에 대한 고마움은 그대로였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전했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반가움이 너무 커 형식적인 안부 인사만을 전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간단한 간식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이름을 몰랐다. 일단 ㅂ도서관 종합자료실을 다시 찾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근무 중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 낯선 사서에게 특정 사서에게 고마움을 전할 일이 있으니 꼭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만나고 싶은 그 천사의 외모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층 자료실로 불러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세상에.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서가 2~3분이나 있으셨다. ‘TV는 사랑을 싣고’도 사람을 찾는데 이렇게 헤맸을까.
드디어 천사 사서를 상봉했다. 가지고 온 편지와 초콜릿 선물도 전했다. 여한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성함도 여쭤봤다. 2년 전 그에게서 나는 직업적 소명 의식을 눈으로 확인했고 잊을 수 없었다. 내 일처럼 팔 걷어붙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직업인을 과연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ㅂ도서관으로 근무지가 옮겨졌다면 몇 년 후에도 전근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도서관으로 로테이션 안 오나? 기다려진다. 천사 사서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도서관을 더 부지런히 다니고 싶다. 아 참, 천사의 이름은 박둘희였다. 2023.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