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경이었다. ㅂㄱ도서관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에는 날씨가 맑았으나, 12시 가까이 되면서 구름색이 짙어져 갔다. 다행히 내가 버스에 탄 후에 토도독 빗방울이 부슬부슬 빗줄기가 되어갔다. 거리에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갔다. 혹시 몰라 가져온 가방 속 우산이 듬직해졌다. 운행 거리가 늘어갈수록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젖은 우산을 동반했다.
버스에 앉아 있었던 20~30분 사이에 나는 다정한 영웅 한 명을 만났다. ㅂㄱ고입구 정류장에서 탑승했던 한 무리의 학생들로 인해 빈자리는 사라지고 버스 안의 습도도 급상승했다. 미량의 불편감을 느낀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의 개수를 세는 데만 집중했다. 갑작스러운 비에 승객들도 놀란 가슴을 진정이고 있는 건지 약속이나 한 듯 실내는 조용한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한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기사가 승객에게 던진 말이 유독 귓속으로 박혀 들어왔다.
“학생~ 우산 없지?”
교복을 입은 승객이 앞문으로 내리자 버스 기사가 그에게 한 말이었다. 우산 있다는 대답에도 기사는 버스에서 성큼 내려와 단우산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지. 방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이 아름다운 광경은 무엇이지? 버스 운행은 바로 재개되었지만, 내 시간은 정지되었다. 나라면 과연 저런 선행을 베풀 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손을 뻗었을 때 상대가 거절하면 나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런데 기사는 굳건히 우산을 챙겨주었다. 내 갈길이 바빴던 나는 ‘저 우산 있어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가방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기사의 행동은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분명했다. 과연 나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을까.
버스 기사의 연배로 봤을 때, 최소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남자 같았다. 물론 자녀가 독립해 손주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학생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으리라. 이것이 어른의 통찰력인가? ‘이 정도 비는 끄떡없어’라고 하는 사춘기의 허세를 간파하는 나이 든 자의 노련함이 내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우산이 없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학생이 버스에 탔을 때 우산이 없어서 걱정했던 말이나 행동을 본 것일까. 버스를 운행하는 노하우가 쌓이면 비 오는 날 승객 한 명 한 명의 상황까지 입력이 되는 건가. 자주 그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이어서 안면이라도 익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대가 없이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여유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비를 맞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보다 키도 컸을 고등학생을, 돌봐야 하는 어린아이 바라보듯 볼 수 있는 시선도 내가 배워야 할 점 같았다.
그 12번 버스 기사의 앞날에 건강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202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