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에게
L에게
오늘의 나는 여전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우리 과, 우리 학년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학생으로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너는 처음 나를 봤을 때 무척이나 나를 걱정했던게 기억이 나.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면 그러다 쓰러진다며 말리기도 하고, 번아웃이 와 지쳐보일 때면 가장 먼저 위로해주곤 했지.
세상을 살다 보니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점점 늘어나고, 그만큼 책임은 더 무거워져.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만큼 해내려면 잠시도 쉴 틈이 생기지 않더라. 그런데 나같이 욕심 많은 사람은 서 있는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높이 오르고자 하니 이보다 더 바삐 살아내야 하고 말야.
욕심, 내가 원하는 것들을 욕심이라 칭하는 게 맞는 건진 잘 모르겠어. 물론, 난 늘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며 살고 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지금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뒤에, 조금 더 아래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면, 당연히 그만큼 더 노력을 하는 게 맞는 거잖아?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에서는 붉은 여왕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와. 여왕은 ‘네가 남들보다 빠르게 가고 싶다면, 지금보다 두 배로 빠르게 가면 된다’고 말해. 왜냐하면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올라갈 때처럼, 세상 역시 나처럼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인거지. 난 그게 내 상황과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늘 롤모델을 찾아서, 열심히, 더 열심히. 조금 더 빠르게. 그런 말들로 나를 단련시켜왔어. 마음 한 켠에는 나도 누군가의 본보기가 될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말야. 그런데 부쩍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많아. 그 중엔 L, 너도 있고 말야. 내가 롤모델이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으쓱하다기 보단 조금은 안심이 됐어.
아, 그동안 내가 열심히 해온 것들이 헛되지 않구나.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말야. 사실 나는 자신 있기보다는 늘 불안했거든.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기해가며 내리는 나의 결정들이 옳은 것들이었을지.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함 많은 사람이야. 이런 나를 향해 언제나 엄지를 아끼지 않는 너를 보며 그 칭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나를 보고 길을 찾아가고 있을 이들을 위해 무너지지 않으려 애를 써. 지금 이건 나의 두 번째 시작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 곧게 서서, 꾸준히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지. 자, 학교를 마쳤으니 나는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겠어. 내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