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에게
Y에게
나는 원래 내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어. 너무 남자 이름 같아서, 이름만 듣고 남자아인 줄 알았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으며 자랐거든. 과외 선생님이 오시면 꼭 그런 말들을 한 마디씩 하셨어.
‘어머, 이름만 듣고 남자앤 줄 알았는데, 예쁜 여자애였네요!’
뒷말은 귀에 들리지 않고, 나는 자꾸만 남자앤 줄 알았다는 그 말만이 마음에 남아서, 그래서 정이 안 갔을까, 아니면 이렇게 될 줄 알고 진즉 정을 안 붙인 걸까. 아무튼 진작부터 그건 이름으로서 나와의 인연이 아니었던 게 분명해.
그래서 나는 너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늘 다른 이름으로 불렸어. 그래서 내게는 이름이랄 것들이 참 많았었지. 뭐라고 불리면 어때. 결국 그것들은 모두가 나를 부르기 위함이었으니 난 늘 듣기 좋기만 했어.
그리고 결국은 나의 오랜, 그러나 가장 적게 불렸던 그 이름을 버리게 되는 순간이 왔던 거야. 새로운 이름으로는 어떤 것이 좋을지 제법 긴 시간을 고민해야 했어.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하면서 말야. 죽 끓듯 바뀌는 나의 변덕에 내 주변 사람도 새 이름 외워준다고 고생 많았어. 특히 매번 바뀌는 나의 새 이름을 투덜거림 한번 없이 순순히 불러준 너에게 참 감사해.
그렇게 정착한 지금의 새 이름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그동안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꼭꼭 눌러 담아 놓은 것 같은 이름이잖아. 이제야 내 진짜 이름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어. 그전에는 이름이란 건 그저 호칭일 뿐이었는데, 불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도 같고 말야.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런 게 있잖아. ‘아, 이 사람은 반드시 만나고 말았어야 할 사람이구나’ 는 기분이 드는 사람 말야. 나는 어떤 사물이든,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이름까지도 그런 인연이 이어져 있다는 걸 느껴. 우리 삶에는 어떠한 인연을 만나지 않고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리라 생각해. 끝내는 끊어질 인연일지라도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들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걸 다 전해주는 순간 헤어지게 되는 인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나는 그와 나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 붉은 실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알까. 오래된 이야기에, 인연인 사람 간에는 새끼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묶여 연결되어 있대. 우리 모든 존재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이어져 있는 인과 연의 존재라고.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일 거야. 조금 아픈 만남일지라도 배워야 했던 것이 있던 거지. 결국 만나야만 했던 인연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조금 아프고 아려도, 너는 내가 만나야만 했던 소중한 인연이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