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모음
나는 한동안 좌절감과
약간의 우울감을 느꼈다.
기대와 현실 간에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었고
그것이 실현되지 못해
고뇌와 감정적 소모가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감과 좌절감,
우울감의 극복은
언제나 건강한 인간관계를 통해
시작된다.
가까이하면 심신 건강에 좋을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해서 자신의 경험 또한
솔직하게 나와 나눌 수 있는 사람,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각자 나름의 좋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간성을 떠나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그의 행동으로부터 느낄 때가 있다.
직감은 언제나 맞다.
중요한 것은
직감적인 깨달음이 있을 때,
나에게 중요한 것,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
그래서 나의 에너지와 시간이
대체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
이를 바탕으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소모적 관계가
더 이상 내 삶에 들어올 수 없도록
좋은 것들로 삶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끊어내기 또는 단순한 버리기는 아니다.
불에 그을린 냄비를
버리지 않고 세척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어질러진 집안을
환기 후 정리하는 것처럼,
잠시 멈추고
그것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우선
마음이 자꾸 따르게 되는
좋은 친구를 만났고,
오랜만에 가벼운 브런치를 대접했다.
거기에서 웃기는 번호표도 보았다.
이 그림이 대체 뭔가 싶어
한참을 보았는데,
스포츠 생중계 장면에 포착된
부적절한 관계의
어떤 회사 임직원들이란다.
피식 웃게 된다.
다음으로는
나와 오해가 쌓였던 친구 1과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라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안타까운 사정으로 인해
언제나 내가 도움을 줘야만 하는,
함께 무언가를 나누긴 어려운,
그런 사이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바라기만 할 뿐,
도와주지는 못하는
안타까운 관계이다.
식사는 완벽했다.
그리고 빵을 만들어 먹었다.
계란찜 같은 비주얼이긴 하지만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에는
충분히 달콤했다.
나에게 큰 힘이 된 또 다른 한 가지는
의도치 않은 호의와 격려이다.
갑작스럽게 만나
설레고 또 기뻤는데,
거기에 더해 나의 미래,
우리 분야의 미래에 대한 투자 명목으로
용돈을 받았다.
자신감이 떨어져가던 차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가고 있는
인생 선배 같은 사람인데,
나는 그녀에게서
강단과 집중력을
본받으려고 한다.
이어진 새로운 만남에서는
커피와 점심을 대접받았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지,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사람들과 만나
인맥을 쌓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즐겁고 흥미롭다.
좋은 사람,
그리고 그를 소개해준
역시나 고맙고 좋은 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또 다른 날에는 혼자 피자도 먹었다.
아파트 1층에 있는 피자집인데,
한번 먹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먹게 되었다.
4달러 정도의 팁으로
주인장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소스를 왕창 챙겨주어
요리할 때 요긴하겠다.
마지막으로
찬장에 쌓였던 나초를 끝내기 위해
온갖 야채와 채소를 넣어
피자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토마토소스를 왕창 넣어서
맛은 있었는데,
어쩐지 잡탕 같다.
마치 명절 음식을 해치운 기분이랄까!
대대적인 청소와 수리를 했으나
감정적 소모가 따르는
그런 관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잠시 멈추자.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고
나를 존중해 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
어쩌면 우리는 서로
부정적 감정과 경험만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사람도
모두가 서로를 존중할 준비를 할 시간을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