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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일방통행

by 정희승

엄마는 내게 엄마였다.


내 우주, 내 전부, 내 모든 사랑은 엄마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엄마는 엄마이면서 아픈 손가락 같은 딸처럼 느껴졌다.


보호해야 할 엄마, 가여운 엄마, 외로운 엄마, 지켜줘야 할 엄마.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복 없는 나를 네가 지켜야 한다고.


친구 없는 나를 네가 함께 해야 한다고.


외로운 나를 네가 보살펴야 한다고.


당연하다 생각했다.


딸은 그래야 한다고.


그런데 그 안에 나를 돌보는 엄마는 없었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일방통행이었다.


엄마에게만 향하는 길.


돌고 돌아도 나에게는 없는 길.



투정 부리고 응석 부리는 딸이 우리 사이에서는 엄마였다.


나쁜 남자와 사는 엄마를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건 언제나 딸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주던 딸이 이번에는 달랐다.


사위를 트집 잡는 엄마 언행까지 받아줄 수 없었다.


일방통행도 막다른 길이 있다는 걸 엄마는 몰랐다.


엄마는 사과를 해본 적이 없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딸이 먼저였다.


그래서 엄마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배우고 싶지 않았나 보다.


어색한 사과는 할 수 없지만 딸이 필요할 때 엄마가 쓰는 방법은 반찬이다.


파김치를 담거나 밑반찬을 만들어 전화한다.


가져가라고.


그렇게 딸을 부르고 딸이 먼저 말하게 유도하는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허리 아픈데 파김치 했다.

언제 올 수 있냐?"



전화하면 바로 와서 가져가야 하는 것도 엄마 방식이다.


늦거나 미루면 안 된다.


당장, 바로 전해야 한다.


엄마 정성을 무시받는 것 같아서, 늦게 받아가면 또 엄마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엄마가 요구하는 일은 무엇이든 바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사위 눈깔이 마음에 안 든다는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피해의식에 갇혀 있는 엄마 말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병원 다녀오는 길에 아빠가 차에서 내게 말을 건넨다.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네가 좀 참고 먼저 말을 해라.

엄마랑 싸워서 뭐가 좋냐."



"아니요.

부모도 잘 못하면 사과해야 하는 거예요.

자식이라고 부모를 무조건 받아주는 건 아니에요."



단호한 대답에 아빠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엄마와 대화가 단절되니 아빠는 더 자주 내게 전화한다.


치매 약 처방받으러 가는 신경외과, 뇌경색 약 처방받으러 가는 서울대 병원.


가슴이 뛰어서 검사해야 한다고 신장내과, 갑상선 검사로 내분비내과.


다니는 병원 두 곳의 진료 예약도 다르고 때마다 불러대는 호출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멀리 사는 오빠들 불러서 뭐 하냐고, 아들은 편하지 않다고, 수고스러워도 딸이 하길 바라는 아빠를 보며 생각한다.



'정말 당신은 과거를 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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