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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May 03. 2024

나주에 대하여_김화진

좋아하는 이야기, 당신은 지금 좋아하는 것의 곁에 있나요?


 영화 포스터 같은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 <나주에 대하여>. 보통은 단편집의 경우 표제작이 가장 마음에 깊게 남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 취향인 작품들은 오히려 그다음 작품인 <꿈과 요리>, <근육의 모양>이었다.

 단편집은 대체 어떻게 정리하는 게 좋을까? 마음에 드는 작품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 집중하는 편이라 이런 부분이 항상 고민이고 어렵다.







1. 이야기

<새 이야기>

천희는 도쿄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천희는 도쿄로 떠나며 진아에게 대파를 선물로 줬다. 어느 날 그 대파가 말을 걸어온다면?


<나주에 대하여> 

나는 나주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관찰해 왔다. 나는 아마도 너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다.


<꿈과 요리>

꿈을 포기한 솔지, 꿈을 안고 가는 수언.

늘 밝고 발랄한 솔지, 늘 무덤덤한 수언.

아등바등 살아가는 솔지와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수언.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친구의 이야기.


<근육의 모양>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해본 것' 리스트를 만들어 작성하는 재인,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를 하는 '은영'

두 사람이 맺는 새로운 관계.

 

<쉬운 마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현정'의 고백.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2. 생각하기

 '좋아하는 것의 곁에 있는 일. 바라는 건 언제나 그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김화진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소감이다. 이 한 문장이 여덟 편의 작품 속에 다 녹아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첫 작품인 <새 이야기>는 <브로콜리펀치>에 수록된 <빨간 열매>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대파와의 대화라니. 대파가 내가 황치열의 <성인식> 영상을 열 번 넘게 보는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니!

 '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어떻게든 완성이 되는 형태여야 하겠지만. 완성처럼 보이는 미완성이어야 하겠지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어지지 않은 것들은 끊어지지도 않으니까.'(12p) 나는 재치 있고 가벼운 분위기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문장의 깊이가 좋다. 언제나 완성된 것을 좋아하는 나도 가끔은 미완성이 좋다.


 이어서 표제작 <나주에 대하여>. 나주는 '나'(화자)의 남자친구 규희의 전 여자친구이다. 나주를 추적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 솔직히 께름칙하다. 스토커 같기도 하고 음습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다. 나는 나주를 사랑하며 동시에 미워한다.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으므로.'(61p) 다른 이야기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했다면 그 솔직함이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 불편한 감정을 더 극대화시켰다. 결말까지 이 찝찝함을 가져간다.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작품.


 가장 좋았던 작품. <꿈과 요리>는 서로 많이 다른, 어쩌면 정 반대라고 느끼는 수언과 솔지 두 친구의 이야기다. '수언은 속으로 혀를 찼다.'(95p), '나는 너를 언제나 부러워했고 좋아했는데'(111p) 친구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질투심, 자격지심과 같이 드러내기 부끄럽고 미묘한 감정들이 잘 드러나 있다.

 서로 다른 점을 좋아하고 부러워하지만, 그래서 질투하고 한심해한다. 두 친구는 각자의 못난 마음을 숨긴 채 지내오지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정말 몰랐을 리는 없다. 그저 모른 척했을 뿐.


  '수언은 항상 솔지의 설익은 상태를 목격해 왔으나 영영 설익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늘 가고 싶은 쪽으로 가 있었다. (중략) 솔지의 요리는 이제 수언에게 항상 맛있었다.'(114p) 나날이 발전하는 솔지의 요리실력은 수언의 '척'을 한 겹 깨게 만든다. 비로소 솔직해진다.   

 누군가 좋았고, 마음에 들고 싶었고,  부러웠으며, 이해하지 못했고, 답답했으며, 한심한 적이 있는가?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132p) 

 <근육의 모양> 속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은영이 회사를 그만두며 말이다.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은영에게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재인의 삶의 방식이 신기했고, 그 방식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은영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은영에게 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더 좋아졌다.


'예은은 은영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서브텍스트가 없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 말했고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중략) 예은은 행간을 읽어내는 데 지쳐 있던 은영에게 유일한 숨 쉴 곳이었다.' (134p) 

 '알잘딱깔센', '눈치 챙겨' 한국인들은 서브텍스트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붙이는 은영. 상처받고 힘들어하더라도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는 그 마음이 예뻤다.


<쉬운 마음>은 '로맨스 소설'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야기.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이렇게 털어놓고 싶어져요.' (240p)

 현정은 당당하고 솔직하고 살짝은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다. 현정도 매력 있었지만 '나'의 친구인 세선도 너무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내용자체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아쉬웠다. 샤넬백을 들고 다니는 현정, 혼자 내세울만한 경력 없이 입사해서 주눅 들어 있는 나. 헤어지고 현정의 욕을 하는 전 남자 친구,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나. 그리고 사실은 레즈비언이었던 현정과 나의 로맨스.

 (퀴어 장르의 단편이 연달아 몇 편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아쉬웠다. 퀴어라서가 아니다. 퀴어가 수단으로 사용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 많은 말을 하기엔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한 번씩 꼭 티를 내고 마는 사람.' 나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아니 우리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유 없이 좋아졌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들이 못난 마음을 담고 있어서, 그래서 좋다.





3. 물음표

당신은 짝사랑하는 것이 있나요?
내가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것은?
나의 감추고 싶은 못난 모습은?














나는 짝사랑이 좋았고 완성하지 않은 여러 짝사랑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짝사랑하는 만화를 그렸다. 매듭지어지지 않는 사랑. 키스하지 않는 주인공.
진아도 잘 커. 파이팅.     <새 이야기>


 솔지는 걱정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고민을 이야기하는 데 너무 많은 말을 할애했다. 진짜 고민이라기보다 고민을 말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중략) 답이 없거나 분명히 있는 고민을 작은 병아리처럼 들고 끊임없이 어루만지고 생각하기.      <꿈과 요리>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사춘기적 마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짓을 해서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 같은 것.
어느 순간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해본 것' 리스트를 적는 일만큼 재인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마음으로 모르는 것을 선택할수는 없으므로.
 <근육의 모양>


내 눈물을 닦아주던 세선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너 울어? 하고 물었을 때 세선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었다. 네가 울지.     <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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