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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Feb 27. 2024

‘앗, 차가워!’

커다란 눈덩이가 하필이면 목덜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밤새 내리던 눈이 아침에 일어나니 멎어 있었다. 눈이 쌓여 하얗게 변한 나무 가지들을 창밖으로 보고 있자니, 따듯한 시나몬 번과 커피 한 잔이 생각나서 출근 시간의 인파를 헤치고 지옥의 9호선을 타고 아침 8시부터 문을 여는 서래마을의 한 베이커리 카페로 갔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시나몬을 아끼지 않고 넣은 빵과 진한 커피, 빈 카페에 크게 울리는 프랑스 노래, 통창으로 보이는 눈 덮인 작은 정원. 하얀 나무들 뒤로 보이는 오래된 하얀색 연립은 원근감이 사라져 현대미술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길 건너편에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빵집이 있다. 주인이 막 문을 열고 불을 밝혀 장사 준비를 시작한다. 하얀색의 작은 차가 골목길로 들어서려고 한다. 흰머리를 성글게 묶은 할머니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길목을 가로막은 주차금지 고깔을 옆으로 치우고 골목 안에 차를 댄다. 차를 대고는 다시 차에서 내려 고깔을 원 위치 시켜 놓고 어디론가 총총 걸어간다.

   

가게에 잘 차려입은 중년의 남녀가 두 번째 손님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손님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 사이 새로 구워진 뺑 오 스위스와 크루아상이 매대에 채워지고 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와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고 있는데, 자꾸 눈이 날린다. 이상하다, 눈은 그친 줄 알았는데. 집을 나설 때부터 그러더니 점점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전선주에 쌓인 눈이 떨어지고 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 내린다. 마치 눈이 다시 오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눈은 아직 다 내리지 않았다. 저 위에 쌓여있는 눈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에서부터 시작한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낙하를 시작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뭇가지와 전선이 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을지 잠시 쉬게 해 준 안식처였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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