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겠어요.

제목: 거짓 자기와 참자기의 싸움:내 안의 ‘진짜 나’를 깨우는 세 가지

by 미담

여러분은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계신가요?


어린 시절 우리는 분명하게, 혹은 막연하게나마 ‘앞으로 커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성인이 된 후, 그 꿈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다행히 그렇게 살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많은 분을 만나다 보니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은 개인의 재능이나 꿈보다는 오직 대학 입시만을 위해 초등학생때부터 내달리게 합니다.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많은 경우 자신이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디에 흥미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오직 시험 점수만을 위해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SNS나 게임에 눈길을 준 채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자신이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하곤 하죠. 이런 경우 점수에 맞추거나 부모의 권유에 따라 학과가 정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인 전공 공부에 돌입하는 2학년이 되어서야 “아,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방황을 시작합니다. 어렵게 취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이런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니더군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며 결혼하고 자식을 가르치며 사오십대에 들어선 분들이 가슴 한편에 회한을 품은 채 상담실을 찾아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부모와 가족의 기대만을 위해 살아왔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며, 폭포수처럼 답답함을 토로하시지요.


“선생님, 제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거든요…… 저는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어요.”


어떤 분은 가수가, 어떤 분은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외부 환경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가면을 ‘거짓자기(False Self)’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건강한 거짓 자기는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반면, ‘참자기(True Self)’는 쉽게 말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반응하고 표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자발적인 생명력’이지요. 문제는 거짓 자기가 너무 비대해져서 참자기를 완전히 감춰버릴 때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담자들의 고백처럼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사는 게 재미가 없고 공허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거짓자기라는 무거운 갑옷을 하나씩 벗고, 숨어있던 참자기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니콧은 세 가지 열쇠를 제시합니다.


첫째, 나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Good-enough Mother)'가 되어주기

어린 시절 부모가 내 자발적인 몸짓에 응답해 주지 못했다면, 이제는 성인이 된 내가 나를 돌봐야 합니다. 완벽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조금 서툴러도 “그 정도면 충분해, 잘하고 있어”라고 나를 다독여주는 마음이 참자기를 깨우는 시작이에요.


둘째, 나만의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 만들기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잣대가 닿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해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온전한 휴식일 수도, 저에게처럼 아무런 계산 없이 써 내려가는 ‘글쓰기’ 일 수도 있어요. 내가 나로서 온전히 수용받는 그 공간에서 참자기는 비로소 기지개를 켭니다.


셋째, '침범(Impingement)'으로부터 거리 두기

우리는 여전히 “더 성공해야 한다”는 세상의 수많은 침범 속에 살고 있지요.

저에게 침범은 “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라는 의구심입니다.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물어봐야 해요. “이것은 세상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나의 진짜 욕구인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할 때, 내면의 ‘자발적 몸짓’은 더 선명해집니다.


그러나 참자기를 찾는 여정은 용기가 필요하고,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상담을 해오면서 수십 년간 입어온 갑옷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을 자주 뵙습니다. 물론 참자기를 찾는다는 것이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위니콧은 말했지요. “참자기는 오직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속에서만 자라난다”라고요.


우리가 잘 아는 작가 헤르만 헤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촉망받는 신학생으로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학교를 뛰쳐나왔고, 그 후 아주 오랫동안 참자기를 찾아 방황했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그의 주옥같은 글들 모두 고독한 방황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그의 대작 《데미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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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순 없겠지만, 가짜 나로 성공하는 것보다 진짜 나로 서투르게 시작하는 길을 저는 응원하고 싶어요. 나의 알을 깨는 행위는 그저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을 지키면서도 마음이 이끄는 작은 시작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분은 퇴근 후 보컬 코칭을 받으며 그 소중한 첫발을 떼기도 하셨지요. 저 또한 돌고 돌아 다시 선 이 글 앞에서 그 용기를 내보는 중입니다. 5년 후, 10년 후, 혹은 죽기 전에 오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이 글이 단 한 분에게라도 자신의 참자기를 만나는 용기가 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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