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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믘제옹 Oct 28. 2023

젊은 공무원에게, 적어도 경제적 부담은 주지 말아주세요

MZ공무원이 바라보는 공무원(4)

연차가 적은 공무원, 젊은 공무원의 의원면직(퇴사)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 원인을 분석할 때, 항상 나오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낮은 임금과 경직된 조직 문화. 왜 MZ공무원들이 불만을 가지고 그만두느냐는 질문에 즉시 답변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언론과 학계에서 항상 언급하는 내용이죠. 낮은 임금에 대해서는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몇십 년 전이든, 지금이든 공무원 하면 박봉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튀어나옵니다. 다만, 과거에 공무원을 박봉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주변의 공무원 출신들이 '공무원 연금'이라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음에 새삼 후회를 한다고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젊은 공무원들은 그 '엄청났던' 혜택이 다 증발했다고 봐도 무방하니, 미래에 후회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게 과거와 지금의 차이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낮은 임금과 엄청났던 혜택의 현재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드렸으므로, 지금부터는 경직된 조직 문화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공무원의 조직 문화가 경직되었다는 점을 설명하려면 많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공무원의 조직 문화라고 하면 말 그대로 사람 간 '문화'의 측면이 있을 것이고, 복지혜택으로부터 생기는 것들, 의사결정과정에서 나오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부분이 융합되어 하나의 조직 문화가 형성된 것이니, 단편적으로 공무원 조직 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사람 간 '문화'의 측면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여느 조직이든 구성원이 되었을 때 '뭐 이런 문화가 다 있어?'라는 의문을 낳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던 경험이 없다면, 그 곳이 어떤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사실입니다. 어느 직장이든 그 곳만의 특이한 문화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들어가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는 게 민간과 공무원 조직의 공통점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유독 공무원 조직의 '악습'들이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너무 말도 안되는 문화이기 때문에 그런걸까요? MZ공무원으로서 직접 경험해 본 , 제가 피부로 느낀 공무원 간의 '그 문화들'에 대해 한말씀 보려고 합니다.




얼마전까지도 논란이 되었던 이슈가 있습니다. MZ공무원들의 통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한 '시보떡 문화'입니다. 공무원은 임용이 될 때 처음부터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6개월, 길게는 1년 간 '시보' 또는 '수습'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일을 합니다. 업무처리, 보수 등 거의 모든 것이 정규직과 동일하지만, 아직 정식 공무원이 된 것은 아니죠. 쉽게 말해 정규직을 보장하는 인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기간동안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정규직이 되지만, 간혹 음주운전, 불법도박, 또는 업무적으로 중과실을 저지를 경우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면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날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절대다수가 정규 임용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제가 문제 일으키지 않도록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으로 같은 과 직원들에게 떡, 간식 따위를 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시보떡'입니다. '떡'이라는 단어를 감안해보면, 이 문화는 최소 십 년 이상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민간에서 인턴-정규직의 관점으로 적용하여 본다면, 결국 본인이 잘 해서 정규 공무원이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근본적인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면 다 정규 임용이 되는데, 왜 저런 뜻으로 무언가를 줘야 하는 걸까? 누가 시켜서 그래?'라는 의문인데, 논란이 크게 생겼던 이유가 바로 '누가 시켜서 그래' 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식 공무원이 되기까지 적응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자발적으로 답례를 하는 건 금액이 비현실적이지 않는 한 문제가 될 수 없죠. 시보떡 준비 안하냐고 은근히 압력을 주거나, 따로 시보떡을 안 돌리면 두고두고 빈정댄다거나 하는 상황에 대해 비로소 문제 제기가 된 겁니다. 시보떡을 안돌리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셈인거죠. 저도 시보떡을 돌렸습니다만, 월급이 200만원도 채 안되는 어린 직원에게는 비용 측면에서 엄청난 부담입니다. 같은 과 직원이 10~15명이면 최소 4~5만원은 드는 셈인데, 황당한 건 같은 과에 동기가 한 명 더 있기라도 한다면 부담이 반으로 줄고 같은 과 직원이 30명이면 그 부담은 두 배가 됩니다. 시보를 곧 뗄 공무원은 정규 임용되기 몇 주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면서도, 어떻게 준비할 지에 대한 정말 비생산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회초년생에게 '우리 과 사람들은 시보떡으로 어떤 걸 드려야 좋아할까?'라는, 안 줘도 될 시련을 주고 있었던 겁니다. '어떤 계장님은 떡을 드렸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았대'라는 소문을 듣고는, 메뉴부터 며칠동안 고민하는 기가 차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건 실제로 뉴스에 나왔었죠.) 이걸 관운의 한 측면으로 보는 희한한 사람들도 간혹 있더랍니다. 결국 '시보떡 문화'는 공론화가 되어 시보떡 문화를 금지하는 공문이 내려왔고,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가 있는데, 바로 '과장님 모시기 문화'입니다. 과장님이라고 하면 작은 규모에서는 5급 사무관, 큰 규모에서는 4급 서기관인데, 주무관이 6급~9급을 통칭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격차가 꽤 있는 자리입니다. 9급에서 4급까지 도달하려면 최소 20년~25년은 일해야 하니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MZ공무원의 입장에서 봐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심지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 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MZ공무원들이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과장님과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과장님 모시는 날'을 팀(계)별로 정하고, 정해진 날에는 과장님과 식사를 해야하는 것에 대해 많은 거부감이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MZ공무원들끼리도 이견이 있습니다. 1~2주일에 한 번 정도는 괜찮다는 입장도 있는 반면에, '일하는 시간에만 직장에 내 인생을 할애한다'는 생각이 확고할수록 이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큽니다. 점심시간은 밥을 먹는 시간이지,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주장이죠. 점심시간만큼은 자유롭게 직장 동기들과 함께 밥과 커피를 하면서 수다도 떨고, 스트레스도 풀고 해야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는 논리를 세우게 됩니다.


이 문화를 옹호하는 입장은 이렇습니다. 우선 과장님 정도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마음놓고 같이 밥을 먹을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단적으로 그 급의 과장님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점심시간에 대한 입장도 다릅니다. 직장에 와 있는 이상 점심시간도 직장생활의 일부이며, 인사권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과장님과 식사하면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시보떡'이야 내부에서도 부담이고, 외부에서도 이해가 안 되는 악습이다보니 바로 없어질 수 있겠으나, '과장님 모시기 문화'는 '시보떡'처럼 바로 없어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시보떡'만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내부에서는 입장 차이가 너무 선명하여 아직도 가타부타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내용 때문에 조직 내에서 세대갈등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확실히 '악습'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과장님과 점심을 먹으면 과장님의 점심값, 커피값을 다 부하직원이 내는 부분입니다. 부서장은 공무원이 받는 여러 수당들 중에서도 부서장이기 때문에 받는 수당이 있습니다. 취지는 본인이 맡은 부서를 운영하는 데 보탬이 되라는 것일 텐데, 직원들 입장에서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 떠나서, 나보다 돈을 많이 벌면서 왜 돈은 내가 내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MZ공무원들은 점심을 눈치보면서 자유롭게 먹지도 못할 뿐더러 과장님의 식사값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결국 직원들에게 점심을 얻어먹는 이 문화도 지금은 좀 조심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최근 '갑질'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시보떡 문화'가 금지되고 '과장님 모시기 문화'도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혹시라도 아직 시보떡을 돌리지 않는다고 면박 주거나 점심을 내놓으라고 하는 과장님이 계시다면, 무조건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군대에서 구타, 폭언, 욕설 등을 악폐습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시보떡 문화, 과장님 모시기 문화는 공직사회의 악폐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만, 목적성, 효과성이 전혀 없는 무의미한 행위이면서도 하급 직원(하지만 엄연한 동료 직원)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너, 나한테 잘 보여야 앞으로 공직사회가 편할거야'라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인상까지 주죠. 그런데 이 논란이 종결되는 과정을 보면,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십 년 이상 이어지던 게 하루아침에 언론보도가 되어 사라진다고?" 입니다. 사실 시보떡 문화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보도가 되니 이 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입장이 발표되고, 없앨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던 것처럼 바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운석이 떨어져 공룡이 한 순간에 멸종했다는 설과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문화라는 게 관성이 크게 작용하여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임에도 말이죠. 결국 이는 문화라고 포장된, 악습에 불과한 행위였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궁금증은 "그럼 그 전까지는 왜 계속 조용하게 유지되어 왔던 건데?" 입니다. 두 가지의 궁금증은 '커뮤니티'라는 단어로 한번에 답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근 조직 내부의 일을 외부로 알릴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MZ공무원들이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일상이나 생각을 공유하는 데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문제를 조직 구성원이 아닌, 인터넷 상에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익명의 다수에게 같이 해결하자고 요청합니다. 과거라면 조직 구성원에게 어떡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고 잘 보이려면 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겠지만, 지금은 커뮤니티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니 신고하라는 답변이 돌아올 수밖에 없겠죠. 아마 기성세대 분들이라면 구태여 그걸 왜 외부에 까발리냐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그러한 방법으로 답을 얻어왔고, 성장해 온 세대입니다. 어떻게 보면 '잘 보이려면 시보떡을 해야 돼'라는 명제를 만든 사람들이나, '불합리한 게 있으면 익명의 다수에게 물어봐서 해결책을 얻어야 해'라는 명제를 만든 사람들이나 나름의 생각이 다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본인들이 겪어온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죠. 확실한 건, 현재는 내부의 불합리한 문화가 외부로 알려지기 쉬운 환경으로 변모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공무원 조직의 '악습' 중 대표적인 사례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제가 공무원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없어져야 할 악습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현재 공무원 조직에서 위 사례들을 비롯해 여러 악습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문화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사라지고 민간보다 문화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하죠. 현직에 있는 저도 공무원 문화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낮은 봉급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배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MZ공무원들의 퇴사를 막고 싶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 있더라도 하급 공무원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문화를 하루빨리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급 공무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MZ세대는 IMF 등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주의가 완전히 자리잡힌 기간에 자라 온 세대이기 때문에, 돈에 너무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들이 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공무원이 됐음에도 퇴사를 결심하는지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없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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