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조 방랑기

by 류하해

조합엔 동지가 없다

희생 없인 동지도 없는데

아무도 희생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가 없어 권위에 굴림하고 싶은 권위주의자들만 있다.


조합엔 노동가는 없다

노동의 가치 보다

돈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노가다에 입문해서 난 민주노조, 민주연합, 한국노총 다시 민주노조로 일을 위해서 노조를 갈아탔다.

2019년 봄 2024년1월까지 조합비란 명목으로 투쟁비란 명목으로 누구를 위해서는 사무실임대지원성금?(내면 일을 빨리 알아봐 준다 한다.다 내라 한다.그래서 일은 빨리 못 받는다)지지정당 후원금,팀비,공구연장 사용비,특정정당당원 가입및 당비등 뭘 많이 냈었다.

방랑비였음에 틀림 없다.


갑질하던 사장을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여기도 쓸데없이 사람이 넘쳐나겠군....”


이란 말을 듣고 더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갑질이 심해진 날


“이젠 그만하세요”라고 털고 나왔다.


쓸데없는 사람 나인지 아님 사장 아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일 가능성이 높다. 사장 아들은 처음 군대 제대 전 휴가 때 공장에 출근을 했었다. 제대를 하면 여행 갔다가 다른 곳에 취업을 할 거다 하다 취직이 힘들었는지 그냥 아버지 회사에 나와 일을 하게 되었다.


“이건 나보고 나가라는 소리 같다”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다.


전기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티오도 많고 전기를 배우면 앞으로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 거란 말이 떠올랐다. 일단 일이 잡힐 때까지 있을까 하다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부탁을 했다.

떠난다고 결정한 이상 갑질을 더는 참을 순 없었다.


전기 관련 현장일은 충분히 있을 꺼야라고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전기기술 학원에 3개월을 숙식하면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내 처지로는 그것도 힘들 것 같다는 배려 였다.


당장 쉬면 가계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렇게 할 순 없지라는.....


용역 회사(인력 회사)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갑질 공장에 다닐 때도 가끔 쉬는 날에는 용역회사에 나갔었다. 외벌이가정의 생활비가 없어서였다.


갑질 회사를 나오게 되니 내 주업은 건설용역잡부가 되었다.


아파트 건설현장을 몇 군데 다니다 현장에서 민주노조 형틀 목수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일을 서포트하는 직영으로 몇 개월을 다닐 때였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기술 배우는 게 더 낮지 않아?”라고 말을 들었을 때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우리 팀 티오가 나면 넣어 줄게”


그 팀에는 티오가 나지 않았다.


난 볼 때마다


“언제 넣어주세요?”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일단 노조 사무실로 가서 건설 노조 가입서를 써봐”


난 노조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그때에 알았다.

그 말을 들을 후 같은 인력 사무실에 다녔던 동생하고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 노조에 가입을 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노조를 욕하고 있었지만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할 때 노조로 일을 하는 것이 임금문제 안전문제 대우문제에 있어서 더 낫다는 것을 인식 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건설 현장에서 고학력 자가 많아져서 그런것 같다.


노조 가입은 했지만 노조 일은 없었고 노조로 일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자기를 팀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현장 주소를 알려주며 출근하라고 했다.

2019년3월 초였다.


노조도 직장이다라고 이야기하는 팀장.

팀장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았다. 팀장이 조합원을 제 마음대로 자르는 것도 보았다. 노동운동 하는 노동자인줄 알았는데 조직화되면서 권력화 일부분이 사유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러웠다.


건설노조는 특별 정당만을 지지하도록 강요했다. 우린 선택의자유도 없이 반민주주의 환경에 있었으며 상부 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았다.

"일하기 싫음 관두던가..."

또 선거철이 되면 자발적 지지가 아닌 관계와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앞세워 조합원 관련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게 했고 동의서 성명서를 받아오게 했다. 또한 일면식도 없고 이유도 모르는 사건의 법원 탄원서의 동의도 받아내곤 했다.


다 먹고살려고.....

그런 나 자신이 더 더럽다.


조합원들은 불만이 쌓여 갔고 민노를 탈퇴해 한국노총의 건설 노조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자리를 옮기게 되면 조합원 영구제명 또는 상당기간 안에 민주노조 조합원 가입이 불가하게 조치를 취했다.


일을 하다가 팀장의 횡포로 조합원이 그냥 잘려 나가는 것을 묵인한 탓이었을까?

나도 그 대상이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기 입맛에 맞게 계속해서 새로운 팀을 꾸리는 팀장이었고 계속 그렇게 새로운 팀을 꾸리는 이유는 자기의 깜냥이 팀장이 아닌 것을 팀원들이 계속 알아서이고 불만이 쌓여서였다.


“넌 나랑 그리고 팀이랑 색깔이 안 맞고, 너 가르처서 써먹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올 것이 왔구나..


“팀장님 갈 곳도 알아보지 않고 어떻게 당장 나갈 수 있겠습니까?”


“시간을 좀 주십시오”


퇴근을 하다 전에 팀장과 불화로 팀을 나간 형님께 전화를 했다.


“야 당장 나와”


형님은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왔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힘들고 잠깐 다른 팀에 있다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


“꼭 민노 탈퇴하고 나와라”


민노를 탈퇴하고 탈퇴 이유에 팀장이 그만두고 나가라고 했다고 썼다. 있는 그대로. 나가는 마당에 미화하거나 개인 사정이라고는 이야기하기 싫었다.


형님이 소개해 준 현장은 민주연합이라는 건설 노조였다.

민주연합은 민노와 한노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세운 노동조합..

조끼도 있지만 사무실에서 조끼를 입지 않고 일하는 조건으로 일을 시켜주었던 것이었다.


그 현장에서 민노 집회에서 알게 된 조합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전 사실을 이야기하자 팀장 마음대로 팀원 자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알아보고 다닐걸....


민주연합 팀장은 나 보다 어렸지만 노동조합 간부급 인사였고 교섭위원이라나 조합원의 권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출근했다가 반장에게 일을 맡기고 건설 현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아 맞다 이것 아는가? 건설노조는 일용직노조이다. 일반 노조와는 상황이 다르다. 건설일용직 노조가 지금의 건설노조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려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일로 생계를 꾸리는 일용직 노조다. 그래서 그런가 집회엔 자주 동원된다.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민주연합은 힘이 없었다.

하지만 노조는 노조라 사무실에서는 우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체 임금 협약이 있어서. 하지만 힘이 없어 바쁠 때 쓰다가 버려지는 일용직 노동자. 민주연합일은 3개월 정도 했다 끝이 나고 다른 현장이 안 잡혀서 팀이 깨졌다.


다시 용역회사에 몇 개월을 다니다 처음 민노 나왔을 때 민주연합 팀을 소개해준 형님이 있는 현장으로 일을 나가게되었다. 이곳도 마찬가지 민주연합 팀이었다.


팀장은 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고, 민노에서 똥 때기하고 뒷 돈 받는 팀장들 하고 사이가 안 좋았던 팀장이었는데 자기들 눈에 가시가 될 것 같아서 몇몇 팀장들을 엮어서 민주 노조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참 힘은 없기는 했다. 이 현장도 일이 끝나기 전에 팀을 내보내기로 해서 명절 전에 쫓겨 나왔으니.. 명절 상여를 주기 싫어서 명절 전에 많이 쫓아낸다.


또 현장을 기다리며 다시 인력 사무소에 나갔다.

여러 군데에서 직영 제의도 받았지만 건설노조 일당이 일반 현장보다 많았고 일 시간도 정확히 지켜져서 용역 사무소를 나가면서 노조 일이 있을 때까지 참기로 했다.


어느 날 마지막으로 깨진 팀에서 연락이 왔고 한국노총로 가입해서 현장에 들어간다고 했다.


현장에 들어가는 어느 날 우린 경찰들과 함께 현장에 들어갔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타 노조 현장 출입 금지란 지시에 현장을 막고 섰었기 때문이다.


참 노조가 참.....

민노나 민주연합이나 한노나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안 하면 불이익당하는...


우리 노동자의 투쟁 대상은 자본이 아닌 같은 일 하는 다른 노동조합 노동자

그렇게 우리를 만든 사람은 자본일까? 아님 노동조합들?아니면 우리 자신...


한국노총일은 마들역 근처에서 8개월 일을 했었다. 그리고 일이 또 없다가 성수에서 한 6개월

중간중간 일은 없었지만 이 팀의 일을 꽤 오래 했었다.

한국노총 건설노조 내부 분열과 부패로 무너지기 전까지..

뭐든지 돈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팀과의 마지막은 쫓겨나 겨우 일하게 된 어느 오피스텔현장 이었다.단차가 큰 계단이 많았고 승강기와 승강기 탑승입구 사이에 무릎 높이 보다 조금 높은 안전발판이 세워진 승강기. 발판은 발로 올리고 내리고.승강기는 한대라 누가 사용하면 계단으로 자재를 올리고 내려야 했다.


오른쪽 어깨에 무거운 자재를 올리고 한 발로 그 높이를 넘어 다니게 된 어느 날 다리 한쪽에 힘이 완전히 빠져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병원에 갔다 골반과 허리가 휘어져서 신경을 눌러 다리의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난 치료(시술)를 받기로 했는데.. 팀장이 당장 시술받지 말고 나오라고 했다.바쁘다는 이유였다.


이런 아파도 못 쉬는구나... 그리고 팀장은 내가 잘 못 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내가 요령 있게 못해서 약해서 아픈 것이다.


한 동짜리 오피스텔건설은 공정상 대마가 많다. 후공정이 끝날 때까지는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현장 소장 외국인 식구들이 우리 쉬는 날에도 우리 일을 조금씩 조금씩 해버려서 우리 일이 많이 줄어들고 있었다.


장모님의 환갑이 있는 어느 해 환갑으로 가족전체 여행이 잡혀 있는 날.. 전후로 대마가 일주일 나게 됐다.


그래 이 팀과도 여기서 안녕이다. 난 다시 용역회사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족여행을 제주도에서 보내고 있을 무렵 왜 안 나오냐고 전화를 받았는데 더 이상 일 못할 것 같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나 없을 때 그렇게도 내 험담을 해대던 반장의 전화였다.


"뭐 얼굴은 죽상을 해가지고.. 말만 하면 무뚝뚝... 싸가지도 없고 예의도 없고 뭐 달라면 저기 있어요라고 말만하고..."

그 반장은 자기 앞에 꼭 자재를 가져다 줘야 했다.


이전의 장모님의 자살 기도 사건 그리고 어머니 치매...난 참..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시기였다.


꾹 참을 수 없어서일까? 연기를 못해서였을까? 연기를 했음 헐리우드에 가 있겠지...!

그냥 입 닫고 일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내가 없을 때 나를 씹어대던 소리를 무거운 자재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발바닥에 불 날것 같으면서도 허리가 아파도 꾸역꾸역 참고 일 했던 난.

... 참..... 병신.....

난 이 팀과 이렇게 혜어졌다.


생각해 보니 노조는 다 똑같았다.


노동운동?노조활동?

꿈꾸는 이상과 현실... 참 멀기만 했다.

임금이 많다?원가계산으로 임금35만원 37만원 잡는데 임금이 25만원 이면 10만원 12만원은 누가 가져가는 것인가?

노조 다 필요 없다?

그럼 법은 왜 필요한데?

그래도 노조가 있어서 안전벨트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든다.없었으면 진작 더 많이 터지고 더 많이 죽고 더 힘들고 그랬을 것이다.


어쩜 난 좋았을 수도 있다.

험한 일이었지만 같이 일 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참 다행이었다.


방랑비는 방랑을 끝내면 그만

방랑비가 멈추었다.

가뭄이 시작 될 것 같기도 했다.삶의 무서움과 무거움이 나에게 왔던 곳으로 빨리 가라고 손짓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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