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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r 26. 2024

토니오 크뢰거

이성과 감성의 대립, 이원성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그전에도 몰랐을 리가 없고 교과서적으로 배우거나 주입되어 상투적으로 알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토마스 만을 읽으며 그 부분에 강하게 공감했던 이유는 마치 나의 고민인 것처럼... 오랫동안 방황하며 풀려나지 못해 안개처럼 머릿속에서만 머물던 것들을 명확히 언어로 설명해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그동안 삶을 통과하며 막연하게 고민해 왔던 두 세계의 갈등을 언어로 인식하게 해 주었던 작가라... 토마스 만에게 한참 동안 심취했던 것 같다.

토니오 크뢰거를 읽으며 토마스 만의 문제의식에 대해 특히 공감했었는데... 토마스 만이 그 후로 찾아내었을 결론에 같이 이르고 싶어,  다른 책들까지 탐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야 토니오 크뢰거를 다시 읽으니...

그 답까지도 사실은 이 책에 있었구나 싶다. 토마스 만을 괴롭혔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어떤 결론에 이르렀고, 리자베타에게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편지하게 된 생각의 발전을 다른 책이 아니라 바로 이 책에서 보여줬던 거였다.

그런데... 내 생각이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전 읽었을 때는 문제의식까지만 인식했던 것 같다.


난 잠이 오는데 넌 춤을 춰야겠다는구나 (p29, p102)


사랑하고 있는데 춤을 춰야 하는 굴욕적인 모순 (p29)


아가씨, 이젠 춤을 그만 추시는 게 좋겠군요.(p103) - 토니오 크뢰거 / 민음사


예전에 읽었을 때는 전혀 인식되지 않았던 한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토니오가 동경하던 한스와 잉에...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편에, 토니오 자신을 동경하고 바라보는 막달레나 페어메렌같은 소녀... 언제나 넘어지는 막달레나 페어메렌...

마지막에 무도회에서 토니오 크뢰거 앞에서 엎어지는 여인이 막달레나로 추측이 되는데... 토니오 크뢰거가 한스와 잉에를 바라보듯, 크뢰거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잠이 오는데 춤을 추어야 하는 춤... 몸에 맞지 않는 죽어 있는 춤이 아니라... 무당이 추는 춤 같이... 갇혀 있는 것들을 해방시키고, 사랑으로부터 유래한 생동하는 춤을 추겠다는 방향 전환... 마법을 걸어 자기들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손짓에 대한 반응...

그래서 아가씨, 춤은 이제 그만 추시는 게 좋겠군요라고 말하는 충고는... 자신의 본질에 맞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고 사랑이 없고, 죽어있는 그런 춤은 더 이상 추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소녀였던 시절에 언제나 넘어지던 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넘어지는... 그런 춤이 아니라 그 소녀도 자신이 진정으로 이끌리는 '삶의 길', '시의 길', '사랑의 길', '인간의 길'을 따라갈 것을 조언하는 것 같다.


시민성이 삶에 대한 사랑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깨달음(p106)...

결벽증적인 이원성에서, 더 이상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이원성 문제로 보지 않고, 통합해서 보는 시각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읊어왔던 시구... 난 잠이 오는데 넌 춤을 춰야겠다는구나... (p102)와 같았던 그동안의 모습에서 삶이 제거되고 병든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p104)

마지막에는 삶의 길과 다르지 않은 예술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다.(p106).

병약한 아가씨에게... 이젠 춤을 그만 추시는 게 좋겠군요(p103)...라고 말한 부분은 그래서 의미심장한듯하다.  예술적 수준이 높은 냉혹한 열광으로 인하여 마모되고 속이 퀭하게 비도록 기진맥진하게 된 자기 자신의 모습(p104~105)을 그녀에게서 보는 게 싫어서 시선을 돌려버렸던 것 같은데, (p100) 마지막에 그녀에게 하는 조언은 자신에게 건네는 말 같다.  그리고 진정한 시인은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p107)을 깨닫고 더 나은 어떤 것을 만들어보겠다는 약속(p107)을 하는 방향으로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변화가 이제야 읽힌다.


한편으로... 한스와 잉에로 대표되는 북유럽 사람들... 금발의 푸른 눈에 대한 동경은... 그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적 관점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기는 하다.

남국의 피가 섞인 자신, 크뢰거라는 이름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막달레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번 넘어지는 소녀는 유대인일 것 같은데 책을 통해 북유럽인들이 우수한 인종이라는 편견이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입되었을 것 같다는 의심...

출간 연도가 1903년이라... 토마스 만이 히틀러의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내던 시기는 그로부터 한참 후이고... 히틀러라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참 전의 시기이니... 이 시대에 영향력 있던 사상인 우생학에 젊은 날의 토마스 만도 충분히 영향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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