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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Apr 13. 2024

양귀자의 <모순> 필사 부분 단상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그 많은 갈등과 괴로움도 단숨에 압축해 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음식에의 탐욕, 그것뿐이었다.

아버지의 뇌파는 오직 먹는 것에만 싱싱하게 반응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굶어 죽는다고 엄살이었다...

슬픈 일몰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비밀 반쪽을 나에게 나누어주던 아버지는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모순 / 양귀자)


우리는 잠깐 영혼이 몸을 빌린 것 아닐까.

주파수에 반응하는 감지기, 해마나 아몬드나… 뇌의 어디쯤에 감지기가 반응하여 영혼이 나를 조종하고 움직일 뿐, 실체는 다른 곳에 있는 어떤 것이 잠들었을 때는 몸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몸에 들어와 로봇처럼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깊은 무의식의 영혼은 자유로 내 몸을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넘나들며 영혼의 세계와 조우를 즐기다가,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와 하루씩 생을 살고, 호흡을 되풀이하듯이 생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지금 현재도 그러하고 있지 아니한가.

내 손을 움직여 타자를 치고 기록을 남기게 하는 정신의 힘, 이것은 우주정신, 우주의 정신이 내 몸을 통해 일생에 이루고 남기는 일일 뿐. 그래서 나는 정신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친교를 나누고. 죽은 영혼들과 얼마든지…


책, 기록물은 그 영혼들의 혼합물들, 이 세계에 남기는 흔적들이 아닌가.

음악도.

내 손을 통해 정신의 작용이 이루어 놓은 그 모든 것들…

그것을 흡수하며 나의 정신은 아득한 그곳을 넘나들며,

잠시 내 몸을 빌려서 움직이고, 작용하고 있을 뿐.

그런데 치매는… 그 안테나? 영혼의 감지기? 가 고장을 일으켜서 먹고 자고 아프고 동물적인 사람만을 남겨놓고, 영혼에 감응하는 정신의 불은 꺼진 상태가 아닐까.

우울증은 내 정신이 그 우울의 주파수에 반응해 버리는 거고

공황장애도 그 수많은 유령들에게 반응하는 정신이 아닐까.

이산화탄소 등 농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 작용, 반응, 감응이 더 예리해지고, 민감해지면서, 작용하는, 외부에서 온 어떤 신호가 아닌가. 안테나에 감지되어, 울림과 떨림으로, 나에게 작용하는…

죽음에 가까운...  감각에 현혹되지 않은 맑은 영혼에 더 잘 감지되는  어떤 것이 아닐까.

TV 등 주파수등에 현혹되지 않고,

라디오 등 신호들에 현혹되지 않고.

아무 방해물 없이, 사막과 같은 곳에서 교란되는 작용 없이 우주와 직접 교신하고 맞닿을 수 있는 영혼으로,

몸은 생의 충동과 욕구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운, 시체 같은 상태가 되어서야 더 잘 감응하고 반응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이 생의 비밀일까.

그래서 마약은 어느 일부를 죽여서, 우주와 교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연으로부터 온 식물, 선물이 아닌가.

자연에는 비밀이 숨어 있을 테니까.

가위를 눌리는 것

몽유병

몸이, 하지만 미묘해진 몸이... 그 몸이 예민해지고 세심해져서 우주의 정신과 더 잘 교감하는 교신기가 되었기 때문이지 몸 자체로부터 정신이 나오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그 분노가 몸에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몸은 단지 안테나, 감지기일 뿐... 미묘해진 몸은 우주의 신호를 더 잘 감지하고 반응하도록 잘 훈련된 안테나, 감지기가 된 몸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지... 필사든 연주든... 어떤 것에 몰입해서 무아의 상태가 되면 우주의 신호를 더 잘 감지하여 내가 내가 아닌 상태에서 적게 되는 글, 또는 연주... 그런 것들이 나오는 것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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