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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아니어도 충분한 삶

무대의 조연과 관객, 그리고 묵묵히 쟁기를 끄는 말에 대하여

by 제로 Mar 25. 2025

나는 최근 여러 권의 책을 잇달아 읽으며 ‘처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리해볼 기회를 가졌다. 세종서적에서 2020년에 발행된 이지훈 교수님의 『더 메시지』, 토네이도 출판사에서 2024년에 출간된 팀 페리스 작가의 『타이탄의 도구들』, 부키 출판사가 2015년에 선보인 데이비드 브룩스 작가의 『인간의 품격』, 그리고 위즈덤하우스에서 2016년에 나온 란즈커 작가의 『참모의 진심, 살아남은 자의 비밀』이 그것이다. 한 권 한 권 읽어갈 때마다, 굳이 무대 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나 역할에 충실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무대 위를 빛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말, 즉 ‘쇼에 나가는 말’이 리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말, 이른바 ‘쟁기 끄는 말’이 오히려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줄 때가 많다. 화려함으로 한순간에 주목을 끄는 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감을 지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이야말로 팀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란함보다 지루할지라도 튼튼한 발걸음으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쟁기 끄는 말’ 같은 존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인을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것을 얻는다’는 메시지도 깊이 다가왔다. 섬김과 순종이라는 말은 자칫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정작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인을 도우면서도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스스로 원하는 순간에 지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내공을 쌓는다. 언젠가 무대 위에 올라서야 할 기회가 온다면, 그동안 쌓아온 헌신과 겸손이 훨씬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란즈커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무대 위 주인공’이 되기보다 ‘조연’ 혹은 ‘무대 아래 관객’의 자리에서 오히려 생명과 명예를 지킨 인물들을 조명한다. 과연 언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혜롭게 꾸려나가는 비결이라고 일깨운다. 자칫 욕심에 휩쓸려 내 능력 이상으로 튀어나가다 보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승부사는 자신의 기회가 아닐 때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고, 그때는 한걸음 물러서 조용히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이와 맥이 닿아 있는 것이 데이비드 브룩스 작가가 말하는 ‘인간의 품격’이다. 굳이 커다란 무대의 한복판에 서지 않아도, 우리가 몸담은 사회나 조직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 값진 삶이라는 통찰을 준다. 자꾸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주인공 자리를 탐하기보다,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단단한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 된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몇몇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권력을 얻는 것에 인생을 건다. 물론 그것들도 나름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은 누구에게나 곧잘 허무하게 사라지거나 뜻대로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운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잠시 손에 쥐었다가도, 어느 순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그렇기에 그 유한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본 사람이라면, 결국 담백함이 최선의 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나친 욕망은 쉽게 불필요한 갈등을 부르고, 결국 스스로를 해칠 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과욕을 부리지 않는 태도는 삶을 훨씬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네 권의 책에서 통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굳이 무대 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대 뒤든, 조연 자리든, 관객이든,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성실히 책임을 다할 때 삶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물러날 때인가, 나아갈 때인가”를 스스로 분명하게 구분해내는 지혜까지 갖춘다면, 비록 화려해 보이진 않아도 결코 빛바래지 않는 명예와 품격을 지켜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묵묵히 ‘쟁기를 끄는 말’처럼 끝까지 버티는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이미 앞다투어 ‘쇼에 나가는 말’이 되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묵묵히 힘을 모아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이들이 있어야만, 그 무대가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누구보다 깊이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대 바깥을 기꺼이 선택하며,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도덕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생명과 명예를 지켜가는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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