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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Nov 10. 2020

비료 포대로 만든 썰매

 아이가 있는 친구의 인스타 피드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놀거리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부지런히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을 보다 보면 친구가 아닌 아이가 부러워진다. 나도 공룡 랜드 가고 싶다. 수영장 가고 싶다! 키즈 카페에서 놀고 싶다!(물론 코로나 이전의 모습이다)

  특히 키즈 카페라는 곳이 신기했다. 미끄럼틀이나 트램펄린 같은 놀이기구부터 디지털을 이용한 특이한 촉감 놀이까지... 어른인 나도 당장 뛰어들어가 놀고 싶은, 신기한 공간이었다. 나도 거기 데려다주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른은 가면 안 되나요......


 그렇게 요즘 애들의 놀이를 쭉 보다가 문득 '나는 대체 어렸을 때 뭘 하고 놀았더라'까지 생각이 미쳤다.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엄마 아빠는 도시에서 각자 돈을 버느라 바빴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농사를 짓느라 바쁘셨다. 놀 거리가 있기는 했었나. 심심한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더라.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나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내 또래 보다도 좀 더 옛날 방식으로 놀았다. 학교가 끝나면 집 앞에 모여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열 발 뛰기를 했고, 지금은 예능에서나 볼 수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숨바꼭질도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집 앞 골목에 모여 다 같이 놀았고, 학원차를 이용해 등하교를 했던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놀다가 헤어졌다. 친구들이 떠나던 시간은 해가 지고, 저녁밥을 먹을 시간 때쯤이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에 공기, 오목, 구슬 치기, 딱지 치기를 했다. 오목은 오목판이 있었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노트에 오목판을 직접 그려서 뒀다. 체스나 장기를 두는 친구들도 있었고, 책받침으로 하는 보드 게임도 재미있었다. 당시 책받침 뒤에는 항상 보드 게임들이 있었다. 연예인의 사진으로 된 책받침 보다고 귀한 것으로, 대부분 윷놀이 형식의 간단한 게임이었으나 그마저도 재미있었다.

 학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탔고, 친구와 산에 올라가고 갯벌에 가서 조개를 캤다. 내가 졸업할 때쯤엔 콘크리트로 막혀버리고 만 개울가에서 다슬기를 잡기도 했다.


 가끔 동네에 방방(트램펄린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이나 장난감 말, 자동차 등의 놀이 기구를 트럭에 실은 아저씨가 오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로, 할머니는 항상 얼른 가서 놀라고, 돈을 쥐어주곤 하셨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친척 오빠와 만나는 날이면 나의 놀이는 좀 더 버라이어티 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락실을 가봤고(그 이전에는 그 시골마을에 오락실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었다.), 친척 오빠의 여자 친구와 함께 놀기도 했다. 슈퍼에서 처음 컵라면을 먹어본 것도, 얼린 쿨피스를 처음 먹어본 것도 친척 오빠와 함께였다.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탈 수 있다는 것도 친척 오빠 덕에 처음 알았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추억 중 하나이다.


 썰매 때문에 그 추운  겨울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썰매로 타기 적당해 보이는 비료 포대를 항상 여분으로 챙겨두셨고, 겨울이면 우리는 그 포대를 질질 끌고 동네 산으로, 언덕 위에 있던 교회로 갔다.

 처음엔 눈이 너무 쌓여 있어서 썰매가 더디게 내려갔고, 몇 번 발로 끌며 길을 만들고 나서야 썰매는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우리가 썰매를 타고 내려간 자리가 미끄러운 얼음길이 된 탓에 교회에서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다행히도 바로 옆에 작은 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에서 이어서 썰매를 탔다. 산길은 울퉁불퉁하고 돌이 많아 엉덩이가 너무 아팠지만, 그 스릴이 더 컸다.

 산에서 굴러다닌 탓에 지저분하게 젖은 꼴로 집에 돌아갔고, 꾸중을 들었지만 그래도 썰매를 끊을 순 없었다.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었다. 만약 내가 도시에서, 문화의 혜택을 좀 더 받고 자랐다면... 좀 더 풍성한 인간이 되었을까? 더 멀리 보고, 더 깨닫고, 더 담아내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때 그렇게 웃고 울며 뛰다가 넘어지다가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키워준 그 시골의 공기를, 흙을, 사랑한다.


 지금도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오면, 비료 포대를 끌고 산에 올라가 썰매를 탔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산에 올라가 썰매는커녕, 눈이 내리는 것조차도... 눈이 쌓이는 건 더더욱 볼 수가 없기에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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