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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Nov 15. 2020

연필과 할아버지

 드르륵드르륵

 잠들기 전, 집에선 항상 할아버지가 연필을 깎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상을 물리고 난 밤이면, 할아버지는 책가방에서 우리의 필통을 꺼내 연필을 한 자루 한 자루 깎아주곤 하셨다. 드르륵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연필깎이로 깎아주시는 날도 있었고, 손수 칼로 한 자루 한 자루 깎아주실 때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직접 깎은 연필이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인지 연필을 볼 때마다, 연필을 깎을 때마다, 연필 끝을 휴지에 비스듬하게 세우고 흑연을 섬세하게 조각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연필을 깎으실 때면, 늘 그 앞에 앉아서, 떨어져 나가는 나무 조각들을 바라봤다. 어쩌면 저렇게 똑같은 크기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지 감탄하고는 했고, 할아버지는 그런 날 보며 뿌듯해하셨다. 연필 톱밥을 그러모아 휴지통에 털어낼 때면 개운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내게는 연필을 깎는 행위가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더 편하기도 하거니와, 할아버지처럼 정교하게 깎지 못 하는 탓에 주로 연필깎이를 사용하지만, 마음이 어지러울 땐 일부러 칼을 사용해 연필을 깎는다. 사각사각 소리와, 연필에서 떨어져 나가는 나무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떨어져 나가는 나무 톱밥 하나하나에 내 마음속 걱정들이 담겨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면 커다란 철통 안에 미리 오려낸 종이 인형이 가득 차 있었다. 큼지막한 인형 몇 개는 내가 오렸지만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할아버지가 오려주셨다. 내가 오린 건 삐뚤빼뚤했는데, 할아버지가 오린 건 마치 원래 오려져서 나왔던 것 마냥 깔끔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셨고, 그 손재주를 손녀를 위해 쓰셨다.

 만들기 숙제도 늘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작까지 직접 하셨는데, 친구들이 대충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왔던 허접한 숙제들과는 달랐다. 한 번은 수수깡으로 집을 비롯한 건축물을 제작하여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 주셨는데, 누가 봐도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솜씨는 아니었다.

 그때의 난, 할아버지가 필요 이상의 열정을, 능력을 쏟는다고 생각했다. 굳이 저렇게 섬세하게 자르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저렇게 정교하게 마감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할아버지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단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는 일도, 외출하는 일도 없었다. 가끔가다 동네 아저씨와 술을 드시는 일을 제외하고는, 집에 계셨다.

 가끔 TV로 다큐멘터리나 역사, 여행 채널을 보시곤 했는데, 내 눈에는 지루해 보이기만 하는 것 꽤나 집중해서 보셨고, 가끔 이런저런 코멘트를 달기도 하셨다. 사실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때도 있었고, 어디 어디를 가봐야겠다, 어디 어디는 못 살 곳이다, 저기 저 사자가 사냥하는 것 좀 봐라 등등의 이야기였다.

 짚을 엮거나 대나무를 잘라 빗자루를 만들거나, 먹을 갈아 무언가를 쓰기도 하셨다. 지식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좋으셨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었다면, 무언가 그리거나 만드는 일을 하셨을 거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할아버지는 늘 내게 '예술가'가 되라고 하셨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작가가 되라고. 그림을 잘 그리니, 화가가 되라고. 검소했던 할아버지는 책을 산다고 하면 용돈을 아끼지 않으셨고, 내가 그리거나 만든 창작물들을 보며 좋아하셨다. 작은 시골 마을의, 전교생이 채 100명도 안 되는 학교를 다녔던 나는 종종 학교에서 주는 상장을 받아오곤 했는데, 그 작은 상에도 늘 좋아하셨다.






 종종 부러 연필을 직접 깎으며,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연필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흑연을 섬세하게 깎아내던, 그 손길을.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임종을 지키지 못해, 서운하진 않으셨을까? 지금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계실까? 치타를 만났을까? 평화롭고, 행복하시겠지. 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겠지.

 보고 싶은 나의 할아버지. 오늘도 연필을 깎으며,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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