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에 만난 세잔느 - 리우데자네이루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

살다보면 가끔 행운이 찾아온다. 크건 작건 우연히 찾아온 행운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된다. 특히 여행지에서 찾아온 행운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작은 행운은 이국에 대한 기억을 아름답게 채색해주고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준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것은 새벽녁이었다. 집을 떠난지 근 30시간이 흐른 후에야 지구를 한바퀴 돌아 반대편에 도착한 것이다. 살다살다 이런 출장길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장거리 비행도 멀리 가봐야 14시간 정도이다. 출발 3시간 전에 집에서 나온다하면 최대 17시간 정도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런 최장거리 직항편 중 하나가 미국 애틀란타 대한항공 직항인데 플로리다에서 학교다니던 시절에 무심코 가까운 애틀란타에서 비행기를 탔다가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그 후로는 애틀란타나 뉴욕이 아닌 미국 서부의 엘에이나 샌프란시스코 정도에서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어차피 플로리다는 직항이 없는 동네이니 한번 갈아타야하니 적당한 곳에서 긴 비행시간을 끊어가는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브라질은 그런거 없다. 서쪽으로 돌아가건 동쪽으로 돌아가건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 후 경유지에서 대기하다가 또 1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한다. 남미를 갈 때마다 북미 경유도 해봤고 유럽 경유도 해봤지만 다 도진개진이다.


한 때 북아프리카로 출장을 다닌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그래도 파리나 프랑크푸르트까지만 가면 비행기를 갈아타고 3~4시간 후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래서 경유지에 도착해서 라운지에서 한숨 돌리거나 가끔 시내로 나가 마인 강변에서 맥주와 소시지를 즐기고 돌아오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맥주 한잔에 독일 소시지 하나 먹고 돌아와서 비행기 안에서 한숨만 자면 바로 알제리나 튀니지에 도착하니 말이다.


그런데 리우데자네이루에 갈 때는 경유지에 도착해서 다시 초초함이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대한항공에서 비빔밥과 컵라면을 먹으면서 왔지만 이제는 다시 10시간 넘게 아메리카 에어라인이나 에어프랑스를 타고 버텨야 하는 것이다. 승무원들 용어로 퀵턴이라는게 있다. 단거리 비행을 갈 때 도착지에서 잠시 쉬다 바로 그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일정을 말한다. 그런데 이건 뉴욕이나 파리 퀵턴을 하는 기분이다. 열 몇시간 비행기타고 가서 잠시 쉬다 또 다시 열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니 말이다.


참고로 말하면 브라질의 상파울로까지 대한항공 직항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상파울로행 대한항공 직항은 엄밀히 말해 엘에이 경유편이다. 공식적으로는 경유가 아니라 엘에이에 들러 급유와 정비를 하고 기장과 승무원이 교대를 한다. 그 동안 승객들은 잠시 환승구역에서 대기를 하다가 다시 그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이민법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국에서 이래저래 오래 생활을 한 나도 미국에서는 단지 갈아타는 환승 승객들도 모두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상파울로행 대한항공을 타고 엘에이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몰랐다.


지금은 전자비자 ESTA가 시행되어 그나마 덜해졌지만 미국 입국심사는 어느 경우나 긴 줄에 불편한 시설로 악명이 높다. 더구나 그 공항이 언제나 아시아계와 멕시코계로 붐비는 대형공항인 엘에이 공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내 최종 목적지는 상파울로도 아닌 리우데자네이루였다. 그러니까 엘에이까지 가서 미국 입국심사를 거쳐 다시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로에 도착해 또 브라질 입국심사를 받고는 국내선으로 환승해 리우데자네이루까지 가는 것이다. 단지 상파울로까지 대한항공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여정을 한번 선택한 이후 두번 다시 이 루트를 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택지가 두 가지 정도 남는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가장 먼 직항 중 하나인 애틀란타에서 갈아타는 것이다. 중간에 끊어가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애틀란타로 돌아간 이유는 애틀란타 공항이 엘에이에 비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고 아시아계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환승할 때 입국심사가 그나마 수월하기 때문이다.


주는 다르지만 같은 동남부인지라 심사 때 말이 길어지면 나 UF (플로리다 대학의 약칭)나온 게이터 (악어를 뜻하는 플로리다 대학의 애칭)인데 한마디 해주면 씨익 웃으면서 보내준다. 여권을 돌려주며 Go Bulldog (불독 파이팅, 불독은 애틀란타에 있는 조지아 대학의 애칭)이라고 한마디 던지는 것은 덤이다.


미국 동남부에서 조지아대와 플로리다대는 풋볼이나 농구에서 늘 한판 붙는 라이벌 대학이다. 한때 한국계 NFL 스타로 유명했던 하인즈 워드는 조지아대학과 플로리다대학에 둘다 붙고는 애틀란타 집에서 가까운 조지아대로 갔다(라고 우리 동문들은 믿고 있다). 특히 플로리다 대학에서 조지아대와 풋볼 경기가 있다고 하면 학교 깃발을 차에 꽂고 모교로 몰려온 머리 허연 영감님들로 캠퍼스 일대가 북새통을 이룬다.


아니면 에어프랑스를 타고 파리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 이 루트의 장점은 돌아오는 길에 주말을 껴서 하루쯤 스탑오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만 묵을 수 있다면 애틀란타나 엘에이보다는 단연 파리가 나은 선택이다. 실제 이 방법으로 파리에 있던 몇몇 후배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푼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루트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환승 수화물 분실로 악명이 높은 드골 공항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드골 공항의 수화물 분실은 단순한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 두번째로 붐비는 공항을 지으면서 프랑스답게 물류의 흐름보다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모양새 (하늘에서 공항 모양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멋지게 만드느라 수화물의 동선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터미널과 탑승동을 추가하면서 가뜩이나 엉망인 물류가 더욱 엉켜버렸다.


아무튼 이런저런 추억에 젖어 파리를 경유하다 짐이 안 따라오는 바람에 도착 후 바로 잡혀있는 브라질 기업과의 미팅에 3일째 입고있던 셔츠와 바지차림으로 가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는 결국 여러모로 익숙한 애틀란타 경유로 최종 낙점을 본 것이다.


그렇게 아침 나절에 도착한 리우데자네이루 공항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눈꼽만 뗀 후 셔츠를 갈아입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미팅 장소로 갔다.


30 시간을 넘게 길거리와 하늘에서 보낸 후에도 브라질에 도착하면 바로 일을 하러 가야했다. 무려 이틀 가까이 길에서 허비한 후 도착한 것이지만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 시각에서 보면 나는 떠난지 이미 이틀이나 지난 것이다. 그 사이 이런저런 메일이 쌓여있을 것이고, 하루 이틀 후면 이미 사나흘 전에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직원이 그 동안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일을 바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을 거치다보면 남미에 아침 일찍 도착하는데 바로 당일 오전부터 업무미팅을 잡아놓고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공항 화장실에서 대충 사람꼴만 만들고는 짐가방을 들고 지금은 파산해 없어져 버린 당시 브라질 최대 민영기업인 EBX그룹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미팅 장소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EBX 그룹의 회장은 포브스 랭킹 기준 세계 8위의 부자이자 남미 수위를 다투는 부자였다. 물론 자원개발 붐이 거셌던 당시 그 여세를 몰아 세계 1위를 하겠다며 매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지금은 사라진 기업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날 내가 만날 사람은 회장의 친동생이었다. 해외사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외교에는 프로토콜이라는게 엄격히 적용이 되어서 카운터파트의 급을 맞추지만 민간기업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상황에 따라 꼭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터무니없는 상대를 만나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이 날은 후자의 경우였다.


물론 천연자원이 주력인 EBX 그룹에서 정보통신 분야는 후순위로 밀린 감이 없지는 않았다. EBX 그룹도 ICT 분야는 신규사업이니 만큼 아직 실체는 없는 준비단계였다. 그러니 우리쪽에서도 가는데만 이틀을 허비하면서 지구반대편으로 날라가 사업 쿠킹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쪽에서야 오너 회장의 친동생이 직접 나서서 추진하는 신사업이니만큼 사업에 쏟는 무게가 달랐다. 내가 도착했을 무렵 회의실에는 EBX 그룹 주요계열사 CEO들이 모두 모여 한국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분위기 매우 안좋았다. 회장 동생은 오너답게 아직 도착을 안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그날 아침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인데 집에 들렀다가 온다는 것이다. 상대편 보스가 없으니 내가 할 이야기는 당사자가 올 때까지 미루고 먼저 상대방 이야기부터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남미 굴지의 그룹에서 주요 계열사 CEO들이 모두 수행 직원 몇명씩 데리고 한데 모여있었다. 그 와중에 새파란 동양인 하나가 여행가방들고 비행기에서 갓 내린 후줄그래한 차림으로 쫄래쫄래 혼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명 앉혀놓고 노년의 CEO들이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 자기 회사와 사업에 대해 쭈욱 설명을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표정들이 안좋을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저 인간은 뭐하는 놈일까 궁금해하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어색한 상황은 보스가 도착하며 곧 종료되었다. 미팅에 한참이나 늦은 주제에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문열고 들어와서는 손짓으로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30대를 보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리는 없었다.


미국에서 게임사업을 하다 형의 부름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온 젊은 오너는 스마트시티 분야 합작회사를 설립하자는 아젠다로 출발한 이날 미팅에서 뭔가 청사진이 보이기 시작하자 고무된 표정이었다. 역시나 우리같은 직장인들인 CEO들은 보스의 기분이 좋아지자 바로 표정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다른 미팅 같으면 점심 식사를 하느라 중간에 브레이크가 있었겠지만 늦게 참석한 오너가 필까지 받은 그날 회의는 점심을 훌쩍 건너뛰고 3시 가까이 이어졌다. 환갑이 지난 경영진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다들 점심을 걸렀다. 살면서 중요한게 밥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날 이어진 늦은 점심은 내 기억에 남을 역대급 식사였다.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먹은 정찬은 역시나 슈하스코였다. 브라질 고기부페인 슈하스코는 소고기를 부위별로 꼬치에 구워 들고 다니며 테이블마다 즉석에서 썰어준다.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아르헨티나에는 꼬치 대신 그릴에 구은 아사도라고 하는 고기문화가 있다. 슈하스코나 아사도같은 남미 고기 문화의 원동력은 남미 평원의 드넓은 목초지에 놓아 키운 저렴한 소고기 가격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것도 따지고 보면 재미난 배경이 있다.


다윈과 브라질 소고기


비글호 항해기라는 책은 요즘같으면 종의 기원과 함께 쌍으로 묶여 세트로 판매되었을 책이다.


찰스 다윈은 잘알려진 대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에 있는 핀치의 부리 모양을 보고 진화론을 착안해 종의 기원을 썼는데 이 때 타고간 배의 이름이 바로 비글호였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쓰기 전에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여행기를 먼저 펴냈다.


다윈이 이 배에 타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했다. 당시 비글호의 선장은 불과 25살의 피츠로이라는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기준에서 보면 대학 갓 졸업하고 취준생 노릇할 나이에 큰 배의 선장을 한다는게 이상하지만 이는 당시 유럽 귀족사회의 관행이었다.


이 사람은 훗날 뉴질랜드 총독까지 역임하는 영국의 진퉁 귀족집안 출신인데 당시 귀족집 자제들은 젊은 시절 이런 모험을 하여 리더십을 검증받고 후세에 남길 업적 – 태평양에 있는 외딴 섬을 발견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인다든가 하는 -을 쌓는 과정을 거쳤다. 젊은 피츠로이 역시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면서 발견한 아르헨티나의 산봉우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남미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한번씩 들르는 파타고니아의 명물, 불타는 고구마 - 피츠로이봉이다



석양을 받아 불타는 고구마, 피츠로이봉


이런 소수의 특권층이 패스트트랙을 밟아 지도자가 되는 전통은 유럽 각국에 여전히 남아있다. 많은 유럽의 지도자들은 대개 서른 전후에 국회의원과 장관을 하고 삼십대 중후반이면 국가수반이 된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86년생인데 25살에 국무장관을 거쳐 31살인 2017년에 총리가 되었다. 벨기에 총리인 75년생 샤를 미셸은 25살에 주정부 장관, 32살에 연방정부 장관을 거쳐 39살에 총리가 되었다. 물론 나라가 커질 수록 조금씩 시간이 더 걸려 77년생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37살에야 간신히 장관이 되어서 딱 40살을 채우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젊은 피츠로이는 지구를 한바퀴 도는 탐험을 하기로 결심하고 이 탐험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자연 현상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박물학자를 구했다. 그게 다윈이었다.


다윈에게는 이 배에 탄 것이 행운이었다. 나이도 많고 무엇보다 가방끈이 짧은 선원들 틈에서 수년에 걸쳐 항해를 해야하는 젊은 선장은 그 동안 자신과 말동무가 되어줄 비슷한 또래의 학식있는 박물학자를 원했다. 귀족은 아니지만 의사의 아들로 교육을 꽤 잘 받은 다윈은 마침 피츠로이와 나이가 비슷해 적당한 후보자인 셈이었다.


국가지도자가 되기 위한 업적이 필요했던 피츠로이와 달리 다윈은 종의 기원같이 기념비적인 책을 쓰려는 큰 꿈을 안고 이 배에 탔던 것은 아니었다. 젊은 다윈에게는 앞길이 창창한 또래 귀족과 함께 수년간 지구를 일주하는 모험이 아주 매력적인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는 젊어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이 사교계의 총아로 데뷔하는 데에 큰 버프로 작용했다. 5년 만에 항해에서 돌아온 다윈이 종의 기원이고 뭐고 만사 제쳐놓고 비글호 항해기부터 출판한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 다윈은 긴 항해 중에도 수시로 원고를 런던으로 보내 신문에 칼럼으로 기고하면서 사교계에 데뷔할 밑밥을 지속적으로 깔아놓기도 했다.


이들은 새로운 땅이 나올때마다 배를 정박해두고 아주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니 피츠로이와 다윈이 지구 한바퀴 도는 데에 5년씩 걸린 것이다. 한 번 정박하면 몇 달씩 탐험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중간중간에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면 배는 먼저 출발하고 다윈은 보고 싶은 것 마저 다 둘러보고 다음 항구까지는 육로로 이동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다윈과 피츠로이의 젊은 날의 즐거운 탐험은 종국에는 비극으로 끝났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사교계에 데뷔해서 이국적인 탐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젊은 귀족아가씨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탐험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에서 관찰한 피치들의 부리 모양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는 뒤늦게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피츠로이는 이 책이 가져온 창조와 진화에 대한 논쟁을 보며 자신의 탐험이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진화론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에 평생 괴로워하다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 비글호 항해기를 보면 남미의 목동인 가우초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우초들은 하루에 소를 한마리씩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되는 중국식 과장 – 항우는 하루에 술을 몇말을 마시고 등등 – 처럼 들리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실제 있는 일이었다. 노동력이 부족한 남미에서 광활한 토지를 소유한 대농장주들은 자연스레 사람손이 많이 가는 농사대신 빈 땅에 소를 방목하는 목축업을 택했다. 그러자 사람 수보다 많은 이 소떼를 관리하는 직업이 생겨났다. 바로 가우초의 등장이다.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주인공 니콜 키드먼이 죽은 남편의 농장에서 방목한 소떼를 몰고 항구로 가는 여정이 나온다. 내륙의 초지에서 키운 소를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항구로 몰고 가야 한다. 숙련된 가우초의 역할은 이 때 소떼를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몰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비글호 항해기에서 다윈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때는 가우초가 갑이다. 농장주가 가우초 눈치를 보는 것이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소떼를 몰고 가야 할 카우보이가 초짜 농장주를 상대로 곤조를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다윈의 항해기에 따르면 한 때 이 가우초의 곤조가 극에 달해 소떼를 몰고 항구로 가는 동안 매일 소를 한 마리씩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이 최소한 수백마리의 소떼를 몰고 며칠에 걸쳐 항구까지 가다보면 어차피 낙오하거나 죽는 소가 나온다. 생산공정으로 따지면 필연적으로 로스분이 나오는 것인데 이 로스분이 불가항력적인 것인지 가우초가 잡아먹었는지를 따져보기가 애매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농장주들은 이 수율을 높이기 위해 가우초에게 인센티브도 주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애초에 인구가 적은 브라질에서 솜씨좋은 가우초가 늘 부족했던 것이 갑질의 원인이었던지라 큰 도움은 안되었다. 더구나 그 즈음에는 가우초의 콧대가 높아져서 ‘우린 어제 잡은 소고기는 안먹어’가 이들의 직업적인 프라이드가 되었다. 여기다 대고 드라이에이징이 어쩌고 숙성을 시키면 아미노산의 사슬이 끊어지면서 감칠맛이 어쩌고 해봐야 아무 의미없는 소리가 된다.


슈하스코가 등장한 배경은 이런 것이었다. 목동 두엇이서 하루 한마리씩 잡아먹을 정도로 흔했던 것이 소고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질기고 냄새나는 고기를 양념에 재워서 구워먹는 식문화는 나올 수가 없었다. 이들은 어차피 몇 점 못먹고 버리는 고기니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만 골라먹었고, 결국 제일 맛좋은 부위에 소금만 슬쩍 뿌려 꼬치에 꿰서 불에 구워먹는 슈하스코라는 요리법이 나오게 되었다.


반면 평생 농사를 짓느라 근육만 남은 늙은 소 한마리를 어쩌다 잡게 된 우리 선조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뜰살뜰 발라내 마지막 남은 콜라겐 한방울까지 싹 긁어먹어야했다. 그래서 씹지 못할만큼 질긴 고기라도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식칼 손잡이로 고기를 다져 만든 떡갈비가 등장했고, 급기야는 질기고 냄새나는 고기를 최대한 얇게 저며 양념반 설탕반 국물에 담가먹는 불고기가 한민족의 대표요리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슈하스코를 원조인 브라질에서 그것도 돈이라면 온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집안의 둘째아들과 먹으러 갔다. 얼마나 환상적인 맛이었을까?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에 위치한 그 슈하스코집은 얼마나 유명한 곳이었던지 세시가 넘은 시간에도 빈자리 하나 없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계산을 안했으니 단가는 모르겠지만 고기부페집에 온통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역대급 식사였다고 말하는 것이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그게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식사 시간 내내 나 혼자 십여 명을 상대해야 했다. 그날 분위기가 좋았던지라 이 사람들은 궁금한 것도 많았다. 우리 회사에 대해서도, 내가 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아니 나에 대해서도, 한국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얼마 후 이들 모두가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으니 더욱 알고 싶은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우리 편이 단 두명만 있었어도 번갈아가면서 밥은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30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마치고 눈도 못붙이고 참석한 미팅이 한나절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두 시간이 넘는 식사 시간 동안 호기심천국 브라질 사람들에 둘러쌓여 간간히 포크로 고기를 집어 삼키다시피 하며 대화를 이어간 것이다. 한 사람과 대화가 끝나면 바로 옆사람과, 또 그 옆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끊임없이 맥주가 돌았고 이 사람 밥 좀 먹게 그만 놔두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정말 좋은 장소에서 좋은 음식을 먹긴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먹었는지, 아니 내가 밥을 먹기는 한건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자리였다. 오죽 정신이 없었는지 그 식당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헬리콥터를 타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 인근의 한 사설 비행장을 찾았다. 철강석과 원유를 수출하는 EBX 그룹은 리우데자네이루 북쪽에 남미 최대의 항구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곳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일단 가보긴 해야 하는데 철도나 도로가 없는 곳이라 거기까지 갈 방법이 헬리콥터 밖에 없었다.


이런 오지에 항구를 짓는 이유는 브라질 동부연안에 EBX그룹이 계획하는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만큼 수심이 깊은 해안이 그 곳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비행장에 도착해 이것저것 수속을 하는 동안 이제는 어느정도 편해진 한 직원에게별 생각없이 한마디 던졌다. 아니 나 지구반대편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왔는데 그 유명한 예수상을 한 번도 못가봤다고 말이다. 지난 번에도 못가봤고 이번에도 가볼 시간이 없다고, 여기 오면 일만 하다 간다고 지나가는 말로 불평을 했다.


그런데 헬리콥터가 이륙하고 그 직원이 파일럿과 포루투갈어로 뭔가를 한참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헬리콥터가 큰 반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직원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카메라 준비해 Get your camera ready’라는 말을 던졌다. 그 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분위기 파악을 못했던 나는 그냥 하늘에서 풍경을 찍으라는 말인가보다 하고 별 생각없이 앉아있었다.


갑자기 이 친구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헬리콥터가 예수상에 접근하고 있었다. 와 이 무슨…나도 모르게 입이 반쯤 벌어지면서 감탄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 앉은 직원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 팔을 툭 치더니 자신도 휴대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허긴 서울에 살면서도 헬리콥터를 타고 남산타워를 한바퀴 돌 일은 없지 않은가.


헬리콥터는 그렇게 예수상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예수상에 오른 관광객들은 멀찍이서 선회하는 헬리콥터를 보고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저 아래로 두 팔을 활짝 벌린 예수님의 모습과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이 보였다. 슈가로프 – 설탕덩어리라는 별칭을 가진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의 명물 언덕도 함께 보였다.


두어 바퀴 선회를 마친 파일럿은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나도 함박웃음과 함께 양손 엄지척을 날리며 이렇게 외쳤다.

따봉!



리우데자네이로의 예수상과 설탕덩어리산 Sugar Loaf Mountain, V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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