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까?
공교롭게도 전역을 실감하고 진짜 결정하게 된 날이 전역까지 1년 남짓 남았을 때였다. 전역을 결심한 그날 작성한 일기의 일부를 통해서 당시의 심정과 그때 내가 했던 의미 있는 뻘짓(?)에 대해 나눠보려 한다.
" 계속 이 길(직업군인)을 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오늘 마무리하려 한다. 장교란 언제든 책임지고 그만둘 각오한 리더라며 겉멋들은 말로 자신감 있게 복무해 왔지만, 전역의 시기가 막상 1년밖에 남지 않았다니 현실의 벽과 함께 마음이 약해진다.
다만, 직업군인 외의 길은 내게 너무나 막막하고 또 막막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군 생활을 끝내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람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기며 쌓아온 인맥을 모두 두고 나와야 하고, 크고 작은 업무 기술도 이제는 무용지물이 될까 싶은 아쉬운 마음이다.
다만, 이 조직에는 내가 찾는 게 없다는 생각이 연차가 쌓일수록 더해져 간다. 나는 물질적인 가치를 좋아하고,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업하는 게 좋다. 군은 결국 그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
불안함과 동시에 기대감이 찾아왔다.
전역에 대한 기대감은 내 적성을 찾기 위한 길을 견인해 줬다. 명예로운 군인을 목표로 살아온 7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 통계로 12,000가지의 직업이 있다고 하고, 비공식적으로 전 세계의 60,000여 가지의 직업이 존재한다. '어떤 회사'를 찾기보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어떤 일'에 집중하며 흥미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탐구하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집중해서 가졌다.
구체적으로 매체를 언급하자면 다큐(「극한직업」 등), 서적(「세상의 모든 직업」 등), 유튜브(「직업의 모든 것」등), 블로그('모든 직업 리스트' 검색 등) 닥치는 대로 찾고 기록하고 검색하며 마음에 드는 '일'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재밌어 보이거나 생소한 직업은 조금 더 서칭 해보고 관련 기사나 블로그를 찾아보는 식으로 조금씩 깊이감 있게 파고들었다. (이 밖에도 코멘토, 블라인드, 커피챗, 잡코리아 직무인터뷰 등을 활용했다.)
의외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려하지 못했던 직업들에 강하게 끌리곤 했다. 건축가, 반려동물 재활치료사, 프로젝트 관리자(PM), 노인 상담사, B2B 영업사원, 기자 등이 그러하다.
* 각각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거나(어르신들을 잘 대하고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해서 '노인 상담사'랄지), 성향(모든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반려동물 재활치료사'랄지), 능력(전체 프로젝트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고 사람을 연결하는 게 좋아서 'PM'이랄지), 습관(글을 읽고 쓰는 게 좋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직업 탐구 시간 후 비로소 본격적인 '전역(전직)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나의 직업을 택하면, 그 필드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부터 찾아갔다. 때로는 자격증이, 학위가, 관련 경력이 자격요건이 됐고, 나의 구체적인 계획은 여기서 시작됐다.
여기서 전역예정자에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중요한 포인트다.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단순히 토익, 한국어, 컴활 등의 일반적인 자격증을 무작정 먼저 도전하면서 시간을 죽이기보다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끌리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에 취업해도 1년 이내 퇴사자가 무더기로 나오는 요즘, '싫어도 다니는 회사'는 옛말이다. 누가 봐도(심지어 본인이 생각해도) 천성이 회사원인데 창업을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 나는 혹시 모르니 적성에 맞는 희망 직종을 2개 정도(하나는 보험용) 찾아서 동시에 준비했다.
스스로 이런 직업탐구 시간을 못 갖겠거나 여유가 없다면 국방전직교육원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듣는 걸 추천한다.(교육 잘 받으라고 인사명령도 내준다) 또는 워크넷 등에서 '직업성향테스트(또는 직업선호도검사)'를 통해 본인의 성향부터 알아가길 바란다.
목표를 향해 직진만 해도 부족한 우리 인생에 지그재그 또는 S자 형태로 빙 둘러가는 건 비효율적이며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역을 고민한 그 순간, 어떤 삶을 그려나갈지 방향을 잡는데 공을 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