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잃어버린, 아니 강탈을 당한 일이 발각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팔 티를 입고 다녀 팔목이 보이는 계절에 애지중지하는 시계가 안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의 집요한 질문에 나는 손을 들었다. 걱정이 많으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린다고 했던가? 그게 아니어도 생각보다는 엄마에게 혼나진 않았다. 엄마는 시계를 잃어버린 것보다 불량배를 만난 것에 더 목소리를 높여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며칠을 밤늦게 싸돌아다니지 못하게 됐고, 조금 공부하는 척 집에서 틀어박혀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초여름을 맞았다. 더위를 식혀줄 것이 선풍기가 전부인 교실에는 초여름이지만 가끔 최루탄 가스로 창문을 닫아야 했고 선생도 우리도 공부하는지, 멍 때리고 있는 것인지 구분도 안 되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사건이 생겼다. 맨 뒷자리에 앉은 녀석의 돈이 없어졌다. 우유 급식비로 낼 돈이었다. 녀석은 옆자리 덩치들을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기에 담임에게 이야기했고, 담임은 수업에 들어와 수업은 하지 않고, 모두 손을 머리에 얹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돈 관리를 못 한 것은 그 녀석인데 왜 모두가 벌서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담임은 우리에게 돈을 가져간 사람은 자수하라고 했다. 살짝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순수하게 돈을 훔친 사람 보고 손을 들라고 하는 것은 너무 초등학교식 발상 아닌가! 담임은 다른 건 다 용서하는데 돈 문제. 특히 남의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서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초등학생도 아닌 중학교에서 발생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돈을 훔치는 것을 본 사람이나 의심이 가는 사람을 제보하라고 하면서 담임은 수업을 진행했고, 점심시간에 나와 경태를 불렀다. 우리는 교무실을 가는 동안 새로 나온 박봉성과 구영탄 만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무실에서 담임은 경태에게 말했다.
"체육 시간에 왜 교실에 들어왔니?"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체육 시간에 나와 경태가 사라졌고, 그래서 나와 경태가 용의선상에 올라왔다. 나는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가 양호실에 갔다 왔었다. 나의 알리바이는 바로 확인되었다. 나는 경태가 교실에 들어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경태는 뒷자리 우석이 자리에 있는 성인잡지를 보기 위해 체육 시간에 교실에 들어왔다고 내게 화장실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경태는 담임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경태도 배가 아파서 약을 먹기 위해 교실에 왔다고 했다. 담임은 말없이 경태를 쳐다봤다. 배가 아프면 양호실을 갈 것이지 왜 교실에 왔냐고 눈짓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너도 우유 급식비를 냈는데 집에서 가져온 거니?"
계속 신청하지 않다가 이번 달에만 신청한 것이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담임도 경태의 가정 상황을 아는 듯 말했다. 집에 확인해 볼 수도 있다고 담임이 강하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집에서 가져왔어요."
경태도 물러나지 않았다.
"진짜 확인해 본다?"
"네."
"거짓말이면 너 알지? 이건 범죄고 경찰서에 갈 수도 있어."
경태는 억울한 듯 영어 시간에 매를 맞은 표정으로 울상이 되어 담임을 쳐다봤다. 나는 경태가 돈을 훔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경태는 모범생은 아녔지만, 돈을 훔칠 정도로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말은 입 밖에 나오진 않았다. 내 시계 때문에 입을 다문 것은 아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고 말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자주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경태도 그렇고.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물론 나도 그를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말없이 경태의 허름한 신발을 쳐다만 봤다. 양말 밴드가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거짓말을 안 했다는 경태를 뒤로하고 담임은 책상 서랍을 당겼다. 쿵 소리와 함께 서랍이 열리고 서류뭉치를 꺼낸 담임은 집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경태를 한 번 쳐다본 후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수화기를 들고 있던 담임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내게 말했다.
"영진아. 너 경태 집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