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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Oct 20. 2024

[단편소설] 치약과 우유 9

   순간 당황한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집을 모른다고 해야 했는데.' 

  경태의 산꼭대기 집을 혼자 걸어가는 내내 거짓말을 하지 못한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거짓말을 할 때는 티가 난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거울을 보고 무표정하게 말하는 연습을 했다. 엄마와 아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지만, 담임의 돌발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못 한 후회보다 다른 걱정이 앞섰다. 경태의 집에서 그의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산동네로 올라가는 계단이 더 멀게 느껴졌다.

  경태에게 우윳값을 줬나요? 어머니가 그걸 왜 묻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학교에서 돈이 없어졌는데 경태가 범인으로 몰려서 확인하러 왔다고 하면 좋아할 부모가 있을까!

  경태의 초록색 대문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낡고 헌 대문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구석부터 녹이 좀 먹고 있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콘크리트와 흙 사이의 경계에서 길게 늘어선 개미들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냈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나면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나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구름은 높게 흘러갔고, 산 아래 터널로 열차는 천천히 흘러가는 너무나 여유로운 6월이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나는 학교를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혀 산동네에 앉아서 먼 풍경만을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나는 다음 지나가는 열차의 객실이 홀수이면 경태의 집에 들어가고 짝수면 그냥 학교로 가기로 마음먹고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기차가 산 중턱 아래 터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객실을 세던 나는 당황했다. 객실이 없어지고 화물칸이 이어졌다. 화물칸은 긴 꼬리를 물며 계속 이어졌다.

기차가 지나가자 산 아래 철길로 돌멩이를 던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 멀리 던졌다. 풀숲이 소리를 먹었다. 다시 던지자 이번에는 돌멩이가 철길에 맞은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초록색 문을 넘어서 딱 한 번 와본 그의 집 방문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계세요?"

  "......"

  "경태야?"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파란색 고무 슬리퍼가 가지런히 문 아래 놓여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르고 학교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인기척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작게 경태야 라고 외치자 미닫이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한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긴 생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왼쪽 귀와 입까지 긴 흉터가 걸려 있었다. 귀 형태는 내가 알고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길에서 마주했다면 절대 쳐다볼 수 없는 흉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친구 집에 나오는 불법 유선 방송으로 본 외국 영화에서 칼에 찔린 남자가 가진 얼굴이었다. 홍콩 영화에서 악당에게 당한 주인공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다. 아니면 악당의 얼굴과도 같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몸을 돌려 집을 나와 전력 질주로 달렸다. 그녀가 말을 걸거나 따라올까 두려웠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계단 아래로 뛰었다. 비탈길에 속력이 붙어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와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콧등이 시큼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디선가 최루탄 가스가 흘러들어왔다. 코와 눈으로 매콤한 가스가 들이닥쳤다. 괴로워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계속 달려갔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하늘을 나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곧 땅에 닿았다. 쿵 소리와 함께 손과 무릎이 쓰렸다. 손바닥이 까졌고, 무릎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통증을 느낄 틈도 없이 눈이 쓰라려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어둠 속에서 눈을 닦는 손바닥에 물기가 느껴졌다. 낮에 길 한복 판에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괜찮으냐고 물어도 나는 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집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빈집을 보고 왔다. 얼굴에 상처가 난 여자는 경태의 어머니가 아니다. 주말에 본 영화 장면과 같은 것이다. 눈을 떠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눈과 코를 막고 달려가기에 바빴다. 주저앉은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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