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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Jul 17. 2024

<시집> 슬퍼도 황제처럼(7)

시 5편 : 인과응보, 종이탑, 도로의 천사, 청렴의 숲, 아버지의 사랑

21.인과응보 - 오봉수


작년에 고양이를 때려 죽인 그는

술에 취하여 욕설을 하면서

길에 담배꽁초를 버렸어요


뒤따르던 고양이가

담배꽁초를 주워

한 대 쭉 빨았어요


그는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갔고

고양이는 살금살금 그를 따라갔죠


잠시 후 그의 집은

원인불상의  화재가 발생했고

그는 인적이 드문 공원 벤치로 쫓겨났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새끼고양이가

손가락을 깨물더니 길바닥에 붉게 썼어요


"인과응보"   



22.종이탑 - 오봉수


탑은

돌로 만들어야 안전하지

폐지로 쌓은 탑이

무너질까 걱정이네


폭염과 장대비를 뚫고

늙고 주름진 할머니가

홀로 리어카에 종이탑을 모시고

온 동네 탁발을 다닌다


칠흑 같은 어둠

무단횡단하는 종이탑

자동차는 경적을 멈추고

전조등으로 길을 밝혀준다


비틀거릴지라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달빛 품은 고독한 종이탑



23.도로의 천사- 오봉수


농사꾼은 아니지만

인정 많은 그는

차 트렁크에 삽과 비닐 포대를 싣고 다닌다


도로에서

동물의 사체를 발견하면

차에 싣고 산으로 달린다


정년퇴직 후의 삶을 위해 마련한

작은 산에 사체를 정성껏 묻는다

그는 항상 말한다

"죽은 몸이지만 차바퀴에 자꾸 깔리면 영혼이 너무 아프잖아요.

그리고 차들이 사체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도 날 수 있고요."



24.청렴의 숲 - 오봉수     


양지바른 언덕에

어린나무를 심자


양심의 흙으로 덮어주고

공정의 물을 주고

상식의 비료를 주자


청탁의 잔뿌리를 제거하고

부패의 가지를 잘라주고

뇌물의 열매를 솎아내자


잘 자란 나무는

청렴의 숲이 되어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25.아버지의 서랍- 오봉수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의 서랍은

항상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혼자 있을 때만 서랍을 열어보고

누구의 접근도 허락지 않고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멸치선단 그물꾼이자 조리사로 

술을 마셨을 때는 항상 사주경계 후

자물쇠를 무장해제하여

서랍 속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리셨다

발목지뢰 같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후

첫사랑 편지처럼 움켜쥐고 있었던

비밀창고는 강제로 개봉되었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조부모님의 사진 한 장과

한국전 훈장이 있었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가장으로

외롭고 지칠 때마다 서랍을 열어보고

가족들을 위해 힘을 내셨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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