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과 인생 귀인

by 서농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던 내 주위에 임산부 친구가 없었다. SNS도 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이던 나였지만 대구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임산부 친구 사귀고 싶어요. ○○동 살고 ◇◇병원 다니고 있어요~” 게시글 등록과 동시에 바로 달린 댓글 하나. “저도 ◇◇ 병원 다녀요! □□ 동 살아요!” 닉네임에 태어난 연도를 쓰게 되어 있었기에 우리가 동갑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난생처음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동시에 동갑인 임산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공존했다. 그렇게 P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합이 잘 맞았다. 당시 운전을 못 했지만 여러 가지 정보가 많던 P와 정보는 없었지만 운전이 가능했던 나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함께 산모 교실도 다니고 요리 교실도 다녔다. 맛있는 것도 먹고 병원에서 하던 수업도 함께했다. 독서를 하는 친구라 더 반했다. 나는 주로 책을 사서 읽었지만 P는 도서관을 다니는 친구였다. 그 사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서로 연결된 덕분인지 삶에 대해, 육아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 또한 비슷했다.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P 또한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인데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하며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만났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1개월 차이로 아이를 출산한 우리는 문화센터도 같이 다니고, 좋은 아이템도 나누고, 아이들 눕혀두고 예쁜 사진도 찍으며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다. 내가 울산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말이다. 울산으로 이사 간 후에도 자주 만나긴 힘들었지만, 종종 연락하며 지냈다. 연결이 끊어질 거라 확신했던 P였는데 내가 울산에서 둘째를 낳았을 때 대구에서 선물을 들고 짧은 시간 얼굴 보러 와주기도 했다. 나에게 고마운 친구였다. ‘내가 계속 대구에 살았더라면 P와도 더 친밀해졌을 텐데’ 아쉬움도 컸다.



울산에서는 P 같은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상처만 받게 되어 아이로 연결된 모든 만남을 끊었다. 그들과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족, 친구와 늘 함께하던 나였기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은 나에게 지옥과 같았다. 나에게 무한 애정을 보내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지만, 딩크족에서 갑자기 엄마가 된 상황이 버거워서 그 애정도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싸움 한번 없이 나를 이해해 주던 남편이 있었지만, 그도 내 감정을 받아 줄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 외로웠다.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괴로운 내 상황을 대구에 있는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는 절교했다.



‘아 세상이 나를 버리는구나.’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쩜 이렇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만 존재하는지. 좌절하던 시기에 P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동안의 일을 하소연하는 내 말을 묵묵히 들어준 뒤 P는 말 대신 책 한 권을 권했다. <엄마의 20년>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시스터.

당신은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이른바 ‘경단녀’로서 재취업은 요원하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의 학업에 전념하는 일이

전업맘의 유일한 사회적 진입이 되어버렸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 학부모들, 남편, 부모, 시부모, 회사 사람 말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나의 욕망, 나의 관심, 나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거구나! 내가 좌절한 이유가!! 딩크족이었지만 아이가 생긴 것, 아무 연고 없는 곳으로 이사 오며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경단녀 전업맘이 되고 나니 만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라곤 아이들 엄마들 뿐이었다는 것.' 모두 합쳐 엄마이지만 여전한 내 인생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 길게 내뱉던 하소연은 한 마디로 줄여졌다.



뒤통수 한 대 맞으며 내 머릿속 꼬마전구가 켜졌다.

‘그래! 나는 다시 나로 살겠어!’



좌절만 하던 시기에 P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P가 내 말을 듣고 형식적인 위로만 건넨 채 그냥 지나쳤다면? P가 나에게 몇 번을 곱씹게 될 책을 추천하지 않았다면? 장담컨대 울산으로 이사한 나를 탓하며 그저 그런 전업맘에 머물렀을 거라고 확신한다. 무연고지에서 친구를 만들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가 반전을 맞았다. 삶에 등장한 단 한 사람의 좋은 영향으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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