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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의 콘텐츠

바비와 밀수

by 마살 Sep 02. 2023

 난 태어나길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줄 알았다. 물 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습도와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온도에 산채로 쪄지다 보면 도저히 그 여름을 좋아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계기도 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있어도 살을 파고드는 더위에 진땀을 흘리는 그 계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록 올여름은 충격적일 정도로 더웠지만 그래도 이제 그 더위를 미워하지 않는다.


 올여름은 영화관을 자주 다녔다. 객관적으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 영화관에 다닌 횟수를 생각하면 잦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긴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바비가 그 시작이었다. 나를 콘텐츠 중독으로 만들어버린 영화. 바비라는 인형이 있을 뿐 원작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먼저 관람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바비가 남자를 죽이기라도 하나? 싶었다. 실망이라는 반응도 많았고 오타쿠인 내 인터넷 친구들이 그다지 반응하지 않기도 했고 해서 나도 큰 기대 없이 렌필드적 재미만 바라고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바비가 나타나면서 여자 아이들이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그들에게 선물이자 숙명처럼 쥐어졌던 '아기 인형'을 박살 낸다. 우습게도 나는 그 장면에서 순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움찔했다. 하지만 곧 다시 생각했다. 기껏해야 인형을 집어던질 뿐인데 안 될 건 뭐란 말임. 영화는 시작부터 내 안의 자기 검열을 박살 냈다.

 가볍게 나의 자기 검열을 깨부순 바비는 정말 모든 것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모두 웃고 있었다. 밤새 계속되는 파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무려 2차 관람까지 감행했다.

  영화에서 나는 좀 더 다양한 바비를 봤다. 대통령, 대법관, 노벨상 수상자 같은 타이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바비, 눈물 흘리는 바비, 웃지 않는 바비, 절망하는 바비들을. 마텔 직원들로부터 도망치던 바비는 마텔의 창립자를 만나서는 차 한 잔을 제대로 못 마시는 자기를 한심하게 여긴다. 차 마시기. 그런 거 못 한다고 삶에 지장도 없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을 일을 말이다.

 불행은 너무 깐깐한 자기 검열로부터 온다. 내가 나를 너무 의식하고 나의 잘못되지 않은 잘못된 점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바꿀 수 없음에 슬퍼하다 보면 나는 웃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비록 내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강요받는 순간이 생기더라도 돌아서면 그 순간을 잊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바비는 훌륭하게 해냈다. 바비뿐만 아니라 켄도 해낸다.

 바비는 결국 바비 세상에 남지 못하고 인간 여자가 되기로 한다. 바비로 남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하루종일 웃으며 셀룰라이트 없는 즐거운 파티를 위한 하루를 살지 않아도 좋다. 고민이 생기면 웃지 않아도 좋고 절망하며 울어도 좋다. 그게 인간이다.


 스펙터클함은 없었지만 장면과 인물의 행동마다 메시지가 없는 게 없어 그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해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가 이제 크레딧을 보여줄 테니 썩 꺼지라고 한다. 물론 지지 않고 엔딩크레딧 끝까지 지켜보고 나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면서는 내내 의심만 했다. 아 나 이런 영화 안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고. 거짓말 안 하고 쉴 틈이 없다는 말이 딱이었다. 이런저런 서사가 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정도로 넘어가고 재밌는 부분만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보여서 웃길 정도였다.


 모든 영화가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본 영화를 통해 어떤 생각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흥미로운 영화를 보며 주제 대신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큰 일을 하기엔 너무 그릇이 작은 나는 영화 시작 부분을 보면서 이 주인공들이 공장과 싸움을 벌일 줄 알았다. 제목이 밀수인데도 불구하고. 사전 정보를 하나도 보지 않고 봤다는 변명으로 나 스스로를 좀 봐주고 넘어가자.

 그래도 내 그릇은 여전히 작아서 그 이후로도 인물들을 계속 의심했다. 갑자기 서로 웃으며 껴안으면 어떡하지? 바보같이 전부 들키면 어떡하지? 여기서 갑자기 저 남자랑 자나? 같이 모든 인물들을 번갈아가며 그간 내가 봐왔던 '이런 영화' 속 여성들에 이들을 대입했다. 그때마다 이 인물들은 보기 좋게 나를 비웃으며 그들의 길을 갔다. 범죄를 저지른단 일에 죄책감은 없이 자기들의 상처와 갈등만 아파하며. 나는 이 부분이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심지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와서야 깨달았다. 바비가 나의 자기 검열을 의식하게 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는 반면 밀수는 나의 그런 의식을 아예 보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또 이 여자들은 책임질 게 너무 많았다. 아이를 길러야 했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고 살아야 했다. 젊음이나 아름다움이 문제가 아닌 여성들이 죽어라고 애쓰는 오락영화가 좋았다. 치열하지만 유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꼭 사회의 약자로서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오로지 너와 나의 우정이 상한 게 너무 화나고 가슴 아플 수 있다. 이걸 모르진 않았지만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권 상사가 가장 매력 있던 장면은 아무래도 자신의 그 악명 높은 과거 이력을 몸소 증명해 보일 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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