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처방: 칭찬이라는 선물을 거절하지만 맙시다
- 머리 자르셨네요.
막상 자르니까 별로에요.
- 아, 긴 머리를 좋아하셨나 봐요.
그것도 별로긴 했어요.
- 그럼 무슨 머리를..?
사실 저한텐 다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 음, 다른 사람들도 그러던가요?
아니요. 누구는 단발 진짜 잘 어울린다고 하고, 누구는 긴머리가 잘 어울렸으니까 다시 기르라고 하던데요.
- 그럼 어떻게 하든 누군가에게는 잘 어울려 보였던 거 아니예요? 그런데 왜 둘 다 별로라고만 하세요?
그냥 저는.. 좋은 소리 듣는 게 오글거려요.
- 음,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소리를 별로 안 해주시나요?
음.. 해 주기도 하고 안 해 주기도 해요. 저는 MBTI 잘 안 믿어요. 전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거든요. 상대 상황에 따라 팩폭이 필요해 보이면 팩폭을 해 주고, 공감이나 위로가 필요해 보이면 따뜻한 말을 해 줘요. 이거 T인가요?
- 그런가.. 근데 퐁구를 너무 좋아하는 걸 보면 F 같아요. 아니 여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친구에게 좋은 일 있으면 어떻게 칭찬해 주세요?
아, 저 나름 칭찬에 대한 철학이 있어요. 누군가의 성취를 목격했을 때 그 과정을 상상해보곤 해요. 그 과정이 지난했을 것 같을수록 칭찬에 공을 들이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좀 아픈지라 상태가 괜찮을 때 한정이지만요.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그걸 보면서 제작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걸 표현하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했는지 자세히 관찰하려 해요. 단편 영화를 만든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영화를 감상할 때 최대한 꼼꼼히 봐 보려고 노력했었죠. 어떤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그 기저에 깔린 노력의 시간들 속에 그 사람이 그 기간 동안 뭐 때문에 고민이었겠는지 추측하려 하고, 뭐 때문에 힘들다고 했었는지 기억을 되짚어보려고도 하고요. 그리고 결과에 대한 축하와 함께 그 과정에 대한 내 감상을 같이 전달하려 노력해요. 예전에 친구가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의 말을 한참 고심했어요. 시험 결과에 대한 축하는 이미 많이 받았을 것 같기도 했고, 그 친구의 준비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힘들어 보였던 것들을 견뎌낸 게 정말 너무 대단해 보이고 포기하지 않은 게 저는 너무, 제게 뭘 해준 것도 아닌데 고마웠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고맙다는 감정이 들었어요. 제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기라 그 친구가 끝끝내 빛을 본 게 위로, 희망 그런 게 되어서였을까요? 여튼 그래서 그 과정이 너무 멋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냥 축하해, 라는 말만 하는 것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던 건 사실이에요. 누군가는 뭘 이렇게까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근데 아마도 이건 제가 주변인들에 애정을 쏟는 방식인가 봐요. 평소에 쉽게 연락해서 만나자!라고 하는 성격도 아니고, 이런저런 소식을 먼저 묻는 성격도 아니고 해서요.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정은 혼자서라도 잘 간직하고 있으니까. 가끔씩 그런 기회가 찾아올 때 그들을 위해 시간을 쓰는 거죠. 내 정성을 다해. 무언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을 만든 이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게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얻은 만큼 돌려준다고 생각해요.
음, 근데 지금 와서 보니 제 스스로한텐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 아껴 준 적이 없네요.
- 저와의 대화가 좀 효과가 있나 봐요. 이젠 제 차례에 짚어드리지 않아도 바로 먼저 깨달으시네요.
그러게요.
- 스스로 '나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정도도 생각하기 어려운가요?
나름... 나름의 기준이 어느 정도일까요? 누구한테 해를 끼친 적은 정말 없는데요, 아니, 물론 자잘하게 잘못하고 살긴 했죠. 친구 옷에 떡볶이 국물을 튀긴다거나... 근데 막 나쁜 맘을 먹고 해를 끼친 적은 없긴 하거든요. 그럼 괜찮은 사람인가요? 근데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의 잘못이 있으면 어쩌죠? 갑자기 불안하네요. 아니면 제가 모르고 잘못한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 저기... 저랑 대화하는 게 효과가 있었을진 몰라도 아직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아직도 불안이 엄청 많네요. 자기확신도 별로 없고요.
그런가요? 10년 정도를 우울증 기간으로 추측하는데 그게 브런치 글 10편도 안 쓰고 고쳐지면 그것도 이상한 것 같긴 해요.
- 그렇긴 하네요. 그럼 더 많이 글을 쓰도록 하시죠. 여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럼 스스로 나름 사랑스러운 존재다, 라고 여기기는 더더욱 어렵겠네요.
사랑스럽다요? 윽.
- 견디기 힘드신가요?
네, 너무 오글거려요.
- 근데 퐁구는 사랑스러운 존재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은요?
아, 저 빼고 모든 존재는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 왜 본인은 빼는 건가요?
저 스스로한테는 도저히 그런 소리를 못 해주겠어요.
- 스스로를 사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 언제쯤이에요?
음... 이것도 엄마아빠가 갈라선 직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 글 연재를 시작한 초반 즈음에 썼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가볍게 하는 말, 엄마한테 사인 받아 와, 이런 말들도 제겐 상처로 다가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요, 엄마의 부재가 내 스스로를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로 여기게 했다는 거예요. 나는 왜 엄마가 이것저것 해주지 않지? 티비에서 보면, 엄마라는 건 자식을 저렇게 사랑하는 존재라던데 말이야. 주변을 봐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엄마가 존재한다는 걸 당연히 여기는데 말이야. 그게 당연한 건데 나는 엄마의 사랑을 못 받는 걸 보면, 엄마가 떠나간 걸 보면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가 봐.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없나 봐.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 주는데. 내가 더 예뻤으면 우리 엄마도 날 저렇게 사랑해 줬을까. 이런 식으로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가 날 반겨주면, 엄마가 내게 잘해주면, 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걸 증명받을 것 같았어요. 그 때는 이혼 사유를 확실히 잘 알지 못했기도 했고, 아이 스스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사유를 본인 탓으로 돌린다는 것도 어린 저의 단순한 생각, 사고의 오류였다는 걸 지금은 잘 알죠. 근데, 이게 머리로는 아는데, 그 때의 감정이 몸에 박혀 있는 것처럼 가끔씩 불쑥불쑥 올라와요. 난 사랑스럽지 않아, 이게.
- 00씨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기에 모자란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00씨의 엄마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부족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양육자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며, 그 양육자는 누구든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잘 아시잖아요. 자기 스스로도 본인의 양육자가 될 수 있고요. 지금 저와의 대화가 사실은 00씨 스스로가 자기 자신과 하는 대화인 것처럼요.
맞아요. 근데 칭찬만 들으면 알러지 반응처럼 올라오는 게 안 고쳐지네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게 마치 몸에 각인된 것 같아요.
- 00씨는 오지랖이 넓다고 하셨죠?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타인이 00씨에게 칭찬을 했는데, 00씨가 막 거부해요. 그럼 그 사람은 시무룩해하거나,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을까요? 뭐가 되었든 긍정적인 감정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럼 그거, 신경 안 쓰이세요?
헉. 진짜 신경 쓰여요. 진심으로요. 그동안 저 거부반응 많이 일으켰는데 그게 막 다 생각나요.
- 아니, 또 막 그렇게까지 자책하지는 마시고요... 여튼, 칭찬이라는 건 타인의 생각이고 타인의 권한인 거잖아요. 그걸 그대로 존중해 준다고 생각하자고요. 자기 생각을 표현한 게 거절당하면, 그건 존중받은 거랑은 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에헴, 맞아 난 좋은 사람이야,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맙다 정도만 해 보자는 거죠.
오, 그러네요. 좋아요. 감사 표현을 할게요, 거부 반응 대신.
- 그러다 보면 스스로에게도 음, 나 나름 괜찮을지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건 브런치 글 20편은 써야 가능할 것 같아요.
- 그럼 그래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