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처방: 인형에 정 주다 보면 사람에게도 되겠죠
- 글을 쓰실 때마다 인형을 안고 계시네요.
퐁구요?
- 퐁구? 그게 그 강아지 인형 이름인가요?
네. 김퐁구요. 저랑 동갑이에요. 봉구랑 몽구도 있어요. 귀엽죠?
- 셋 다 그렇게 귀엽게 생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귀엽다고 하세요.
- 귀엽네요.
사실 어디 가서 퐁구 자랑하면 못생겼다는 말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한텐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애예요.
- 봉구랑 몽구는요?
사실 걔네는 퐁구 닮아서 좋아하는 거예요. 퐁구가 짱이에요.
- 퐁구중심주의로군요. 좀 너무하네요. 소중한 사람한테 받았나요?
음... 아빠는 소중한 사람이긴 하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에요. 얘는 일종의, 믿는 구석이에요. 최후의 보루 같은 것.
- 무슨 말이죠? 그 인형이 사실 외계인에게서 지구를 구할 최종병기 같은 건가요?
그런 능력은 없는데... 그냥 얘만은 저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좋아요. 제 옆에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그래줄 것 같아요.
- 그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나요?
그럴 수 있죠.
- 그게 두렵나요?
네. 많이요.
- 인연이 멀어지더라도 그간 함께 한 기억이 좋은 추억이나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엄청 꼬인 목걸이 풀어본 적 있으세요? 저는 포기했어요. 매듭은 지어질 때 견고할수록 풀어낼 때 잘라내는 수밖에 없지 않나요. 원래 각자이던 두 줄에 회복할 수 없는 절단의 흔적이 남는 거죠. 상실이 무서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다들 그렇게 ‘잘린 매듭’의 형상이 있을 거예요. 아직 묶여본 적 없는 끈을 조심스레 들고서는 잘리기를 두려워하는 표정과 함께요.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인 거죠.
- 잘라낸 매듭이 있나 보군요.
제가 잘라낸 건 아니고, 잘렸죠. 모녀관계라는 매듭도 잘렸고, 부녀관계라는 매듭은.. 잘릴 듯 말 듯 하다가도 다시 붙고, 또 잘리기 직전까지 가고.
- 어머님이랑은 관계가 단절되었으니 이해가 가는데, 아버님이랑도 몇 번 그 직전까지 가셨나요?
그랬었죠.
- 그럼 가장 처음으로 그런 불안을 느낀 적은 언젠가요. 아버님과의 관계에서요.
엄마와 아빠가 갈라서기 시작한 게 대여섯살 때였고, 이혼소송을 거의 5년 즈음 했는데요. 양육권 문제로 대법원까지 갔었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꽤 옛날이라, 귀책사유가 엄마에게 있더라도, 양육 환경이 아빠가 좀 더 낫더라도, 어린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식으로 1심, 2심 판결이 나왔대요. 근데 대법원에서 바뀐 거죠, 어린 자녀라도 아빠가 더 잘 키울 수도 있다고. 뭐 어쨌든 그 과정 내내 나는 누구랑 살게 되는 거지, 하면서 계속 불안해하긴 했던 것 같고요. 좀 크게 불안을 느낀 적은... 이혼소송 시작한지 1-2년 즈음이 된 시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랑 아빠랑 제가 다 같이 살았는데, 방문 너머로 조부모님이랑 아빠랑 다투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어요. 아마 조부모님이 양육권 포기하라고 했던가, 제 양육을 지원해주기 좀 귀찮아하시는 태도를 보이셨던가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빠가... 그런 말을 하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그럼 00이 그냥 고아원 보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데로 절이든 외국이든 가버리겠다고. 홧김에 한 말이었겠죠. 근데 어릴 때의 제게는 그게 좀, 음... 저를 보호해 주는 유일한 어른으로부터 그런 말이 나오는 게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아,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 그랬겠네요. 아버님은 00씨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아나요.
말 못했어요. 진짜 그렇게 될까봐요. 응, 그래, 사실 아빠가 많이 힘들다, 거기서 커라, 진짜 이렇게 될까봐. 고등학교 때 되어서야 서운한 걸 막 얘기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죠. 근데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잘못 들었을 거라고... 물론 저도 알아요. 아빠가 저를 조금이라도 놓고 싶었으면 대법원까지 가면서 그 고생을 안 했겠죠. 근데 어린 아이 입장에선 머리로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해도 마음이, 불안이 사그러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어릴 때의 그 충격이 다른 일들로 아버님과 사이가 멀어졌을 때도 좀 영향을 끼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일지라도 영영 멀어질 수 있어, 라는 생각을요. 가족의 해체를 경혐하지 않은 사람이 동일한 갈등을 겪었을 때는 그 정도의 불안이나 허털함까지 안 겪더라도 00씨는 그 수준의 감정까지, 아빠와 갈등을 겪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느꼈을 것 같아요. 엄마도 그랬고, 조부모님도 날 신경쓰지 않았고, 아빠도 그런 말을 했고. 그런 상황을 어릴 때 체험했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빨리 풀었으면 좋았을 걸. 제가 제 발목을 잡는 꼴인 것 같아요.
- 이 글을 쓸 때만이라도 내가 이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접어두면 좋겠어요. 그런 자책은 이미 많이 했으니까요. 퐁구는 언제 아버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거예요?
진짜 어릴 때요. 신생아 때. 제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해서 처음 집에 왔는데 그날 아빠는 하필 야근을 했던 거예요. 그래도 회사 퇴근길에 기념으로 애기 선물을 사가고 싶었는데 야근이 끝난 뒤였으니까, 아기용품 가게들은 당연히 다 문을 닫았더래요. 그래서 문 닫기 직전인 대형마트에 가서 장난감 코너를 간 거에요. 당연히 신생아용 장난감은 없고 인형, 로봇, 뭐 그런 것들만 있더래요. 그런데도 뭐 하나는 사 가고 싶어서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당시엔 나름 신기술이던, 건전지 넣으면 멍멍 소리도 나고, 걷기도 하는 강아지 인형을 하나 사온 거죠. 애가 좀 크면 갖고 놀겠지, 일단 사 가자! 했겠죠. 집에 와서 건전지를 넣어서 작동시켜 봤는데 제가 놀랐는지 엉엉 울어서 바로 껐대요. 그 뒤로 그 강아지인형은 그냥 구석에 박혀 있다가....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제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니까 어느 날 그 인형 옆에서 기웃거리고 있더래요. 그때 다시 한 번 건전지를 넣고 작동시켜 주니까 그때부턴 제가, 신기했던지 그 강아지인형을 되게 좋아했다는 거예요.
어릴 때는 진짜 맨날 데리고 다녔어요. 언제 한 번은 어릴 때 사진을 보는데 롯데월드 마스코트들이랑 한 다섯살짜리의 저랑 사진을 찍는데 거기서도 제가 퐁구를 안고 있더라고요. 아빠가 저 어릴 때부터 항상 하던 말이 걔 좀 그만 갖고 놀라고 비슷한 거 새로 하나 사준다는 거였는데 그때마다 절대 못 버린다고 버텼어요. 아빠가 걔 너무 더럽다고 박박 세게 한번 빨아야 한다고 그럴 때도 제가 직접.. 하도 살살.. 씻기느라 하루동일 화장실 들락날락거려서... 하도 살살 헹궜더니 세제거품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근데 차마 털 빠질까봐 세게 문지를 수가 없어서 결국 진짜 살살 여러 번 헹궜어요. 여기저기 낡아서 해지고 고장난지 오래 돼서 이젠 건전지를 넣어도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형인데 저한텐 얘가 최고예요. 얘한테 정든 것도 있지만 사실 아빠가 그날 나에 대해 느꼈던 사랑, 자기 자식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뭐 그런 것들이 너무 잘 상상되고 느껴져서 얘를 계속 간직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아, 그 이후로 어린 시절의 제가 퐁구랑 닮은 인형이면 무조건 수집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렇게 우리 집에 온 녀석들이 봉구랑 몽구예요. 사실 진짜 어릴 때는 그냥 퐁구는 멍멍이, 봉구는 큰 멍멍이, 몽구는 카우보이멍멍이로 불렀는데요, 몽구가 원래 카우보이 모자가 달려 있는 강아지 인형이었거든요. 지금은 모자 어디 갔는지도 모르긴 하는데... 언젠가부터 크기 순서대로 첫째멍멍이, 둘째멍멍이, 막내멍멍이로 부르다가 또 언젠가부터 김봉구 김몽구 김퐁구로 불렀어요.
- 추억 그 자체의 존재네요. 퐁구 못생겼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여튼, 그럼 혹시 엄마로부터의 사랑을 느껴 본 기억은 없나요? 퐁구처럼 어떤 추억이 있는 게 있다든지.
없어요. 인간의 생애란 결핍을 자각하고 그로 인한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는 것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기에 인류 문명도 끊임없이 발전한 것 같고요. 그러나 결핍이라 명명된 것중에는 평생을 헤메어도 가질 수 없는 신기루도 있는 법이라고 봐요.
제게는 모성애가 그런 거였어요. 백 세 시대라는데, 그럼 거의 내 생의 초입에서 흩날려 사라진 사랑인 거잖아요. 그런데도 그 부분의 결핍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아요.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내가 둔 채로 가만히 있는,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무생물일 뿐인 강아지 인형 한 마리에 크나큰 사랑을 쏟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시공간에 있지 않았던, 이미 내 곁을 떠나 버린, 생물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인 어머니라는 존재에 저주와 원망을 퍼붓는 밤들이 너무 많았어요.
엄마와 아빠도 그, 사랑이란 걸 하지 않았을까요. 근데 손을 잡으면 언젠가 놓기 마련이니까.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천국을 맛본 뒤 감옥으로 다시 들어오는 기분을 느끼느니 영원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요. 에리히 프롬이었나, 분리에 대한 불안이 인간들 간의 결합을 추동한다고 이야기하던데, 그 불안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결합 자체를 안 하려고도 하는 것 같아요.
- 퐁구에 대해 부정적인 어휘도 쓰시네요. 무생물일 '뿐인' 이라고 하셨는데.
늘 양가감정이 있었어요. 항상 곁에 두고 싶으면서도, 언젠가는 떼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모든 인간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는 불신 속에 살았기 때문에, 홀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생물이어서 내 곁을 절대 먼저 떠나지 않는 존재인 퐁구를, 그리고 봉구와 몽구를 아주 사랑했던 건데요. 그러면서도 내게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 친구들은 그런 것을 할 줄 모르는 무생물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면 한없이 공허해졌어요. 유럽 여행을 갈 때도 지구 반대편까지 데려간, 심지어 위탁수하물로 맡기면 혹여 분실될까봐 기내 수하물용 작은 가방에 꾹꾹 세 마리를 우겨넣어 들고 온 강아지 인형들의 플라스틱 눈 속에는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만큼의 따스함이 없는 듯해서요.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과 애정을 교류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큰 허무함이었어요. '인연'이라 하기에는 '인'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들에 쏟는 애정의 허무함을 알면서도 그 애착을 끊어낼 수 없는 내가, 그만큼 '인연'에 대한 불신으로만 가득 찬 것 같아서 스스로가 안쓰러웠고요. 그럼에도 제게는 플라스틱 코를 쓰다듬는 것과 자라지 않는 털을 만지작거리는 것만큼 '사라져버리지 않는 인연'의 안정감을 느낄 일이 없었어요.
- 단점 말고요, 그 친구들의 장점에 집중해 봅시다. 00씨에게 중요한 안정감을 주는 건 '아주 긴 시간동안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켜주는 존재'인 거고, 이 친구들은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잖아요. 그 외에 애정의 양방향적 교류 같은 다른 역할은 지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그러니까 인간 친구들 말이에요, 그들과 해도 되는 거고요. 한 존재에게서 모든 역할을 바랄 수 없다면 분산해서 기대해 보자구요.
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퐁구가 더 귀여워 보이네요.
- 봉구랑 몽구도 좀 챙겨 주세요.
퐁구가 조금 더 귀엽긴 한 것 같아요.
- 뭐, 여튼, 그냥 그 친구들을 힘껏 사랑해 주세요. 사랑하고 싶은 만큼요.
좋아요. 겨울이 오기 전에 얘네한테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싶은데, 당근마켓에 작은 강아지 옷 안 파는지 봐야겠어요. 아님 뜨개질에 도전해 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