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병이 그저 게으름인 것 같을 때

오늘의 처방: 10분 안에 하품 세 번 하면 바로 낮잠 자기

by 김해랑

- 좀 피곤해 보이네요.


그런가요? 잘 모르겠어요.


- 방금 하품을 하셨는데요.


근데 저는 피곤함과 게으름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안 졸린데 게을러서 자고 싶은 건지 어떻게 알죠?


- 음, 그 말을 하시면서도 하품을 하셨는데 그럼 좀 주무셔도 되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대화를 친구들과 종종 했었어요. 어느 날에는, 친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너 요새 괜찮아? 묻는 거예요. 근데 전 진짜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응, 괜찮은데? 했는데, 친구가 좀 갸우뚱거리더라고요. 나중에 그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 때 제가 진짜 심하게 피곤해 보였대요. 근데 괜찮다고 말하는 제 표정이, 에이 괜찮아, 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스스로 피곤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일단 제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많이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 피곤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피곤하면 안 되는 건 아닌데... 게으르면 안 되니까요.


- 게으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책을 너무 심하게 해서요. 사실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매일 6시간 자고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나면, 5시간만 잤으면? 4시간만 잤으면? 이렇게 되는 거죠. 어디까지 노력해야 한계까지 노력한 건지, 자책할 필요가 없으려면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 피곤해서 거기까지만 한 거랑, 게을러서 거기까지만 한 거랑은 못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 같은데요. '아,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싶어서 그만둔 거면 10시간씩 자면서 공부해도, '하기 귀찮으니까 안 해야지' 하면서 내내 놀다가 밤새서 공부하느라 몇 시간 못 잔 사람보다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요? 사람마다 건강 상태를 비롯해서, 고려해야 할 상황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거짓말 탐지기도 아니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한 건지 어떻게 알아요? 저는 '아, 더 못 하겠어. 진짜 이제는 쉬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이게 진짜 그 상태인 건지, 아님 스스로를 속이는 목소리인지 분간을 못 하겠어요. 꾀병을 부리는 것 같아요.


-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최고의 결과를 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 결과라, 아뇨. 삶은 연속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결과물에 집중하면 삶에서 연속성을 못 느낄 것 같아요. 징검다리 건너는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끊어지지 않는 선을 주욱 그려나가는 게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결과물 뿐 아니라 그걸 이뤄가는 과정 중에도 내가, 극도로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행복함을 유지하는지, 그걸 봐야 될 것 같고. 결과물도, 그 과정에서의 노력도, 진짜 딱 자기가 만족할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각자에게 한정된 시간을 무엇에 관해 쓸지도 철저히 본인 자유인 것 같아요. 미친 듯이 몰입할 만큼 재밌는, 혹은 잘 하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 사람에게 되게 잘 된 일일 수 있죠.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얕고 넓은 경험으로 본인 삶을 채워나가는 게 너무나도 좋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런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한다, 라는 게 오히려 힘을 최대한 풀고 욕심을 버리고, 충분히 쉬고, 이런 거겠죠.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정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이든 어떤 표현이든 그것들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완전히 본인 자유인 것 같아요.

전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행복의 정의도, 삶을 꾸려가는 방식도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다 자유롭게.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것도, 꿀잠을 위해 고급 수면 안대를 사는 것도 본인이 좋아하는 종류의 행복을 만족할 만한 정도로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하품을 하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건,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가요?


아... 음, 사실 기존의 목표를 좀 포기하기 시작한 지금은 그냥 자도 되긴 하는데요, 그래서 요즘엔 잠이 오면 그냥 냅다 자긴 했어요. 근데 새로운 목표를 정하려니 다시 불안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제가 오랜 시간동안 목표했던 삶의 형태가, 목표했던 특정 직업이, 소위 말하는 '워라밸 없는 삶'이었거든요. 마음가짐이 거기에 적응되어 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 그 직업은 왜 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그 직업을 되게 좋게 보셨어요. 아빠가 많이 힘들 때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들이라. 그 직업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직접 체감하셨던 거죠. 저도 가족으로서 그 과정을 옆에서 봤으니까, 동경이 없지 않았고요. 워라밸은 극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보수 수준이 괜찮다고 하고. 저희 가정이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않고 아빠 건강도 완전히 좋으신 편은 아니라, 제 소원 중 하나가 얼른 아빠가 아무런 일 하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거나 소일거리 정도만 하시면서 쉴 수 있게 해드리는 거였거든요. 경제적으로 좀 여유롭게.


- 본인의 적성에 맞다거나, 그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맞는 것 같았어요. 물론 모든 일이 재밌기만 하진 않을 거지만, 재밌었다가 힘들었다가를 반복하는 거지만 그래도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잘 버텼을 것 같아요. 근데 저 스스로 아프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 같아요. 그 직업을 얻는 과정도, 그 이후에 일을 하면서도 내내 '강철 체력'으로 버텨야 하는 삶인데 그걸 제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언제부턴가 뜬금없이 헛구역질이 나오고, 사람이 조금만 많아도 토할 것 같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자살충동도 심하고, 가끔씩 눈물이 갑자기 주룩주룩 나오고. 원래도 우울증 약을 먹고는 있었는데 약 종류도 용량도 엄청 늘리고, 공황장애 약까지 먹게 되었어요. 그때쯤 나 이러다 진짜 뭔 일 내겠다, 싶어서 다른 길을 찾아봤어요. 시간을 쏟아야 하는 강도가 덜한 곳으로요. 사실 그 때 좀 충분히 쉬면서 회복하고 나서 그랬어야 했던 것 같은데. 공백기를 가진다는 게 너무 두려워서 일자리를 구하는 대로 바로 출근했어요. 근데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더라고요. 그러다 또 너무 안 좋아져서 이제는 뭐, 진짜 쉬어야겠다고 하고 백수가 된 거죠.


- '쉬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과정 중에 쉬엄쉬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부터, 건강 상태로 인해 아예 휴식기를 가지는 것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면 자책도 큰 편이라고 했으니, 자연스레 '쉬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봐요. 음... 저는요, 제가 가장 아플 때는,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였어요. 나는 무언가를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그 노력을 계속하기가 너무 지치고 버겁다, 다 그만두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말이에요. 아마 아빠는, '엄마 없이 자라서 그렇다'는 식의 말들을 듣게 하지 않으려고 자식을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같은 주변 사람들도 절 키우기를 거의 다 말렸으니까, 더 잘 키워내고 싶었을 수 있고.

아빠가 내게 주는 사랑은 ‘조건부 사랑’ 같다고 느낀 적이 꽤 많았어요. 성취에 따른 조건부 사랑이요. 상을 받아 와도 축하보다는 아쉬운 점에 대한 지적이 앞섰고, 1등을 해도 점수가 좀 낮은 과목이 있으면 이것까지도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대답이 들려왔거든요. 마치 끝 없는 계단을 오르는데, 너무 지치는데, 그래도 칭찬 한 마디 받으면 피곤이 씻길 것 같아서 결과물을 들고 가면요, 잠시 쉬어갈 터가 아니라 오르기 더 힘든 계단을 선물받는 그런 기분이에요. 숨이 턱 막히는.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집에 오랜만에 들어와서 자고 있으면 그걸 좀 많이 싫어하기도 하셨죠. 제가 기숙사에서 잠을 잘 못 자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면 잠만 잤거든요. 기숙사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뒤척거리다 잤어요. 잠이 안 와서 열람실에 가서 책을 펴면 집중이 하나도 안 되는데 또 들어가서 누우면 엄마랑 안 좋았던 기억이 자꾸 되새김질되거나, 울고 싶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그것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증상이었던 것 같다고, 그때부터 치료받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병원에서 그러긴 했는데... 뭐 여튼, 그 땐 그게 병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사람이, 커다란 최종 목표 이전에 중간중간의 성취들에서도 기쁨을 맛봐야 지치더라도 다시 회복해서 마음의 원동력이 지속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근데 저는 그걸... 그걸 못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즈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음, 고등학교 때는요, 내신시험이든 모의고사든 잘 쳤을 때는 다음에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해서 울었고, 못 쳤을 때는 당장의 결과에 속상해서 울었어요. 고3 때는 사설 모의고사와 전국 모의고사를 합쳐 수능 전까지 거의 매달 시험을 봤으니, 달마다 한 번씩은 기숙사 콜렉트콜을 붙잡고 집에 전화를 걸어서 엉엉 울었죠. 물론 아빠가 따뜻한 말씀을 해 주실 때도 있었어요. 그냥 다 괜찮다고도. 쉬라고도. 근데 그게 제가 바라던 거에 비해 좀 너무 가끔이어서 제가 서운해했던 것 같아요. 아빠가 괜찮다고 위로해 줄 때는 정말 좋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조금 더'를 원하시는 반응일 때는 또 너무 아프고 그랬거든요. 불면증은 달고 살았고, 조용한 아침 자습 시간에도 갑자기 압박감이 심해지고 눈물이 차오르면 화장실로 뛰쳐나갔어요. 그렇게 자주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언젠가 무뎌질 법도 한데, 안 되더라고요. 그냥 내내 힘들었어요.


- 대학 때도 힘들었나요?


네. 1,2학년 때도 압박감을 계속 느끼다가... 대학교 3학년 때였나, 무섭게 달리는 오토바이가 바로 옆을 지나쳐도 무심했을 때, 내가 정말 어딘가 고장났구나 싶었어요. 그 즈음이었는데,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각종 아쉬움을 표하며 답하는 이들의 영상을 우연히 보면서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던 적도 있고요. 삶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이 전혀 없었어요. 발을 잘못 헛디디면 위험할 것 같은 장소에서도,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자기생존을 위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냥 무덤덤한 제가... 사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이 드는 스스로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그간 흘려보냈던 증상들을 되돌아봤죠.

저는 근육통도 스트레스성으로 생길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호르몬이 정상보다 부족하면 행복감을 물리적으로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요. 전 엄청나게 기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최소한 몇 년 간은요. 대학 때 팀으로 상을 탔는데요, 되게 열심히 했고 어려웠던 대회라 팀원들이 엄청 기뻐하는데 저는 뭐, 좋긴 한데, 그냥 그 정도였고요.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으로 여행을 갔는데, 같이 간 친구든 모르는 관광객들이든 전부 감탄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들이 신기했어요. 저렇게까지 반응을 할 수가 있다고? 부럽고 이질적이었죠.

호르몬 체계가 어느 순간부터 제 기능을 균형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상신호를 저는 그저 꾀병인 줄 알았고, 그걸 '게으름'이라고 이해했던 것 같아요. 정작 내가 속고 있던 것은 "난 괜찮고 그래야만 한다"는 이유 모를 강박이었음에도. 어떠한 감정을 느껴 볼 시간보다는, 그것을 억누르고 무언가 일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어요. 피로를 인지하고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그것을 무시하고 더 바쁜 스케줄을 만들어 피곤을 덮는 게 익숙했고요.


-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사랑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부 다.


네,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다른 사람에게,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에게 사랑받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같은 말이 저한테는 아직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 제 생각에는 지금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화하면서, 작은 실천 방안들을 하나씩 마련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것들은 내가 사랑'받는' 방법들이라기보다, 내가 세상을, 그리고 내 삶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것들을 해 보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면 자연스레 마음이 옮겨갈 것 같아요.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러니까 저는 지금 당장 '스스로를 사랑하세요!'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요. 작은 것부터 쪼개서 해 보는 걸로 해요. 음, 혹시 우울증 약은 어떤 계기로 먹게 되었나요. 피곤함도 자각하기 힘들어하는데, 아프다는 건 어떻게 자각한 건지 궁금하네요. 그걸 알면 피곤함을 자각하는 방법으로도 적용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제가 그 즈음에 휴학이나 교환학생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휴학을 하면 재학 중인 대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줄 알고, 휴학 직전에 검사나 한 번 받아 보자 싶었어요. 검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사실 저는, 결과가 너무 멀쩡한 상태로 나와서 민망해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집에 돌아갔는데요. 근데 며칠 뒤에 결과가 나왔대서 가 보니까... 중증도로 따지면 상위 5% 안에 드니 상담이든 약이든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꽤 심각한 결과가 나온 거예요. 당황스러웠죠. 근데 사실 짐작하고 있었는데 외면하고 있던... 것 같기도 해요. 결과지가 내 눈앞에 있으니 더이상은 외면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를 시작했죠.


- 음,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단'이 있어야 하는 거군요.


그런가봐요. 스스로를 의심하는 게 너무 습관화되어서.


- 그럼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때요. 10분 안에 하품을 세 번 이상 하면 나는 이걸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규정한다, 그럼 당장 30분 후로 알람을 맞추고 낮잠을 잔다. 이런 식의 규칙을 세워두는 거예요.


오... 근데 제가 하품이 쉽게 나오는 스타일이면 어쩌죠? 사실은 더 버틸 수 있는데 하품이 그냥 나와버리는 거죠.


- 또 본인 의심하고 계시는데요. 그냥 제 말을 좀 들으세요.


네.


- 좋아요, 규칙을 또 너무 여러 개 만들어 버리면 까먹거나 못 지킨 것에 자책할 것 같으니 며칠간은 하품이랑 낮잠 부분만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럴게요. 하품 두 번 했을 때 커피 마셔서 참는 건 되나요?


-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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