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처방: 그들이 내게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해 주기
- 오, 이번에도 글을 쓰러 오셨군요. 숙제를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전자렌지에 레토르트 라자냐를 데웠는데 너무 뜨거워서요. 식는 동안 할 일이 없어서 노트북을 켰어요.
- 라자냐를 좋아하시나 봐요.
독일 교환학생 갔을 때 레토르트 라자냐를 자주 사 먹었어요. 돈 아끼느라 근사한 식당에서는 한 번도 양식을 못 먹어 봤고. 근데 그 달고 짠.. 신선한 느낌은 하나도 없는 토마토 소스랑 약간 맛없는 밀가루 반죽 맛이, 이상하게 가끔씩 떙겨요.
- 호오, 그래도 좋아하는 게 분명 있긴 하네요.
죽고 싶어지면 라자냐고 나발이고 아무 생각 안 나는 게 문제죠.
- 주제를 빠르게 전환해 봅시다. 저번 대화는 아빠 얘기를 하다가 끝났던 것 같은데.
음, 그랬죠.
- 엄마에 관해서는 어떤 마음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죠. 가끔 그리운 마음이 들면 그런 제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정도로.
- 그럼 아빠는 간단히 정의하면 어떤 존재인가요. 반대의 느낌일 것 같은데.
그렇죠. 유일한 가족이고, 고마운 사람이고, 정말 사랑하는데... 상처를 받아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아빠가 밉다는 마음이 들면 제 자신이 너무, 죄인 같아요. 니가 어떻게 아빠한테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어, 하면서요. 아빠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렇게 힘들게 혼자 키웠는데. 너도 다 알잖아. 그럼 니가 좀 참아야지. 이렇게.
- 미운 사람이 그립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미울 때, 즉 어떤 대상에 대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들면 스스로를 굉장히 고통으로 밀어넣는군요.
맞아요.
- 그럼 먼저, 미운 사람, 즉 엄마가 그리울 때는 어떤 순간인가요.
한국에는 모성애를 강조하는 매체들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아요.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항상 엄마라는 존재를 당연시했죠. 엄마한테 사인 받아와, 엄마한테 말씀드려, 엄마한테 준비물 꼭 사달라고 하렴. 그런 선생님들처럼 애들도 항상 그랬어요. 너네 엄마 운동회에 와? 너네 엄마는 김밥에 뭐 넣어? 너네 엄마는 왜 오늘 안 왔어? 사회적 편견이 상처가 되는 수단 중 하나는 개인적 발화예요. 어린 시절에 그런 말을 들으면 그건, 그냥 흘려보낼 가벼운 말들이 아니예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요. 나만 이상한 기분, 나만 잘못된 기분. 이상하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아무리 알더라도 그 ‘감정’만큼은 오랜 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거죠.
사실 이혼하지 않고 엄마가 옆에 있었다고 해도 제 삶이 딱히 나아지진 않았을 거예요. 엄마랑 아빠가 같이 살 때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전 항상 아빠를 좋아했어요. 아이들은 누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아요. 엄마는 제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요. 티비에 도넛을 직접 만드는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면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도넛을 만들자고 했어요. 책을 읽어달라고도 아빠한테만 말했죠. 그래서 사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내 엄마'가 그리웠던 게 아니에요. 내게 '필요한' 엄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걸 꿈꿨던 거지. 날 낳아준 그 사람의 몫은, 그 사람의 빈자리는 아빠가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았어요. 그 사람이 있었어도 나는 내 상상 속의 엄마를 그리워했을 거예요.
문제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엄마라는 두 글자를 보고 듣기만 하면 그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내 발목을 다시 붙잡는다는 거예요. 상태가 좋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울증이란 게 내내 우울한 것만은 아니라서요. 근데 안 좋은 날이 더 많으니까 문제인 거죠... 어느 날은 대형 마트를 갔는데, 저 멀리에, 여성 속옷 코너에서 엄마랑 어린 딸이 둘러보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잠깐 멀뚱히 서 있었어요. 저는 사춘기 때 아빠가 준 카드를 들고 저 혼자 속옷을 샀거든요. 옆에 모녀 손님이 있으면 괜히 민망해서, 사이즈를 분명 집에서 혼자 재 갔는데도, 이렇게 쟀는데 그럼 이 사이즈가 맞는지 직원한테 꼭 물어봐야지 했는데도, 그냥 대충 맞아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서 빨리 계산하고 오고.
근데 웃긴 건요, 내 엄마는, 곁에 있었더라도 내 속옷 사이즈에 신경을 써 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는 상상 속의, 허구의 엄마를 그리워하는 거예요. 외형만 진짜 내 엄마인. 그게 혐오스러워요.
말이 너무 길었네요. 하다 보니까 이것저것 자꾸 생각이 나서.
- 괜찮아요. 앞으로도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시면 됩니다. 스스로가 뭘 원했는지, 그게 실제 존재하는 엄마와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잘 되어 있네요. 다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었다거나 무언가로 인한 상처를 받았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잖아요. 그에 대해 '내 결핍이 충족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무언가의 부재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가지는 건 당연한데 왜, 그런 자신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걸까요.
그러네요. 음, 뭔가, 제 마음 속에 엄마는 가장 미운 존재라고 각인되어 있으니까, 그걸 그리워하는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 아닐까요.
- 그런데 잘 분리하셨잖아요. 어린 시절에는 혼동이 있었을 수 있죠.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내 엄마'인지, 아니면 특정한 역할을 해 주는 존재인 건지.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두 가지를 구분할 만큼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기엔 미숙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어, 나는 분명 엄마를 미워하는데, 엄마가 그립다고? 난 이상한 사람이야!' 했을 수 있죠. 그런데 지금 와서는 잘 구분하셨잖아요. 내가 바라던 건, '내 엄마'가 내 곁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역할을 해 줄 어떠한 존재를 원했는데 그게 주변을 보기에 보통 '엄마들'이었던 거라고.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착각을 했던 거겠죠. 그러니까 동일한 대상에 대해 모순되는 감정을 갖는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아, 그러네요, 근데 좋은 기억은... 없어요. 진짜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음, 뭔가 하나 더 맘에 걸리는 게, 전 죄책감도 들었어요. 제가 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요.
-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본인에게 해를 끼치는 거라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비싼, 그런 것들이었어요?
아뇨, 그냥 보통의 것들이요. 아까 말한, 속옷을 같이 골라줄 사람이라든가.
- 어떤 죄책감이었나요? 누군가에게 뭘 잘못한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빠한테 미안했던 것 같아요.
- 엄마를 그리워하는 게 아빠를 배신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던 걸까요?
그랬던 것 같고... 엄마와 연결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아빠에게 상처받는 날도 살다 보면 있을 수 있잖아요. 한 번도 안 싸운 가족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근데 그럴 때도, 상처되는 말을 들어도 화를 못 냈어요. 그냥 입술을 앙다문 채로 가만히 있었어요. 눈물 나오면 바로 닦고.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엉엉 울 것 같았거든요. 아빠는 그런 제 모습이 답답한지 할 말이 있으면 하면 되지 왜 그러고 있냐고, 그렇게 답답하게 굴어서 세상살이 하겠냐고 더 화내고. 근데 아빠가 너무 미울수록, 내 스스로가 너무 미웠어요.
- 저번에, '아빠가 날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말을 하셨죠. 그런 맥락일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날 거둬준 하나뿐인 사람인데. 안 그래도 힘들 텐데. 내가 겨우 이것 가지고. 이런 생각이었죠.
- 아빠가 미웠던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 주실 수 있나요.
공개적인 곳이라 못 하겠어요. 아빠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보이는 게 싫어요. 제 시각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까 객관적으로 설명하질 못할 수도 있고.
- 지금 하려는 건 당신의 마음을 돌보기 위한 거지 무슨 역사 기록마냥 사실만 걸러내려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 그럼 아주 사소하게 미웠던 에피소드는 어때요.
음... 좋아요. 당장 떠오르는 게 있거든요.
어릴 때 소풍을 가게 되면 저는 거의 항상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갔어요. 근데 소풍 가 보면 점심시간에 항상, 애들끼리 김밥 비교하거든요. 거의 집에서 싸 오는데 집집마다 재료가 다 다르니까. 누구네는 오이를 안 넣고, 누구네는 큰 소세지를 넣고. 근데 전 그냥 사 왔으니까, 할 말이 없었어요. 그렇게 괜히 맛없게 느껴지는 김밥으로 몇 번 점심을 먹다가, 어느 날은 소풍 전날에 마침 장을 보러 아빠랑 마트를 가게 된 거예요. 카트를 끌고 가는데 김밥 만들기 키트가 있더라고요. 그걸 가리키면서 오늘 같이 만들어서 내일 가져가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아빠의 대답은... 사 먹는 게 더 맛있어. 였죠. 내가 원했던 건 아빠랑 같이 직접 만든 김밥이었지, '맛있는' 김밥이 아니었는데.
- 그랬군요. 그럼 그 뒤엔 별다른 말 안 했어요? 한번 더 졸라볼 법도 한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저는, 사실 아직까지도 그렇긴 한데, 제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어른들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혼을 둘러싼 상황에서, 이혼 소송이 몇 년이나 걸렸거든요, 그 지난한 싸움에서 아빠, 엄마,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친척들은 늘 날이 서 있었고 제 눈에 '어른들'은 항상 바빠 보였으니까요. 아빠랑 주로 살았고 방학 때마다 잠깐씩 엄마 집에 갔는데, 항상 느끼던 거였어요. 어쨌든, 전 그때 마트에서 그냥, 으응, 그런가,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 그랬군요.
생각해보니까 이건 아빠가 미울 게 아니라 제가 말을 못 한 탓인 거 같아요... 제가 소심한 탓이에요.
- 아니, 그렇게 치면 아빠가 '사 먹는 게 더 맛있어' 말고 '그래? 만들어 보고 싶어? 근데 그 김밥집이 더 안 맛있어? 그래도 만들어 볼래?'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을 수도 있잖아요. 말이라도 그렇게 다르게 하면 덜 서운했겠죠. 어차피 제안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경험이 여러 번 쌓였을 수도 있고.
아, 듣고 보니까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제 탓 같아요. 저는 제 탓 하는 게 편해요.
- 그래서 병 걸리신 것 같은데요. 그건 편한 게 아닌데.
병원이나 심리상담소에서도 그런 말을 듣긴 했어요...
- 그, 아까 처음에 엄마 얘기 할 때도 김밥이 나왔거든요? 너네 엄만 김밥에 뭐 넣어, 이런 말이 상처로 다가왔다면서요. 아빠와의 에피소드 중에도 김밥이 있고. 김밥 한 번 스스로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물론 누군가가 내게 해 주지 않고 내가 스스로 나를 챙겨야 한다는 게 좀 쓸쓸하고, 버거울 수는 있지만요. 바꿔 말하면 난 혼자서도 내가 필요한 걸 챙길 줄 아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한번 김밥 만든 다음에 스스로 혼잣말 해 보는 거죠. 어, 나는 내 김밥에 햄 넣어. 햄이 짱이거든. 우엉은 싫음. 아빠가 같이 안 만들어 줘도 내가 만들 수 있음! 뭐 이렇게요. 혼잣말 하기 좀 민망하면 일기에라도 그렇게 써 봐요.
아, 사실 대학 온 뒤에 처음으로 김밥 한 번 만들어 봤어요. 그때 기분이 좋긴 했어요.
- 오, 언제였나요?
독일에서 교환학생 할 때였는데, 한식을 사 먹기엔 너무 비싼 거예요. 김밥이 문득 떠올랐는데, 김은 아시안 마트에서 구했지만 김밥을 마는 발은 못 구했어요. 속재료는 고민하다 돈까스 김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일식 돈까스를 슈니첼이라고 부르는데, 마트를 둘러보다 보니 비건 슈니첼이 있길래 맛이 궁금해서 사 왔죠. 제가 좋아하는 페퍼로니맛 크림치즈도 넣었어요. 김밥 마는 발이 없으니까 자르는 과정에서 다 터지고 모양이 흐트러지는데, 그냥 재밌었어요. 그때 묘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스스로 되게 주책맞은 것 같아서 울진 않았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왜 울컥했는지 알 것 같아요.
- 왜 그런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의 내게 지금의 내가 주는 선물 같아서요.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게 좋아서... 이제 내 소풍에도 나만의 김밥이 생긴 것 같아서.
- 오늘의 대화는 이 숙제로 마무리하도록 하죠. 어린 시절의 내게 필요했던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것의 부재가 엄마가 그립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였을 수 있고, 아빠가 밉다고 느낀 이유였을 수 있어요. 그럼 그걸 스스로에게 해 줍시다. 큰 것부터 떠올리면 벅차니까, 작고, 쉽고, 하고 싶은 것부터요.
좋아요. 해 볼게요.